[화물연대 파업 그 후, 노동개혁 찬반 지상토론] 친시장주의적 규제 완화안…근로자 희생·피해 부를 우려

2022. 12. 31. 0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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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ECIAL REPORT
안전운임제 확대를 요구하며 벌어졌던 화물연대의 파업은 16일만인 지난 9일 별다른 성과 없이 막을 내렸다. 업무개시명령까지 발동한 정부의 강경 대응에 싸늘한 민심이 겹친 결과였다. 정부는 안전운임제 3년 연장 합의를 파기하고 원점에서 재논의하겠다고 밝혔다. 이와 함께 고용 유연성을 높이고 법치주의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노동개혁의 본격적인 추진 의지를 천명했다. 화물연대 파업이 불러온 노동개혁은 현시점에서 꼭 필요한 것인지, 방향은 맞는 것인지 전문가들의 의견을 들어봤다.

노동개혁 문제 있다는 권오성 교수

지난 20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노동·교육·연금 등 3대 개혁을 주제로 간담회를 하고 있다. 윤 대통령은 3대 개혁 중 노동개혁이 최우선 추진 과제라고 강조했다. [사진 대통령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20일 청년들과의 대화에서 ‘노동개혁’의 4대 원칙으로 노동제도의 유연성, 노사 협상의 공정성, 노동자의 안전과 노사 법치주의를 언급했다. 이러한 내용은 새로운 것이 아니라 윤석열 정부 110대 국정과제 중 노동과 관련된 과제의 근저에 흐르고 있는 생각을 요약한 것으로 생각된다. 한편, 이에 앞서 고용노동부가 발족한 전문가 포럼인 ‘미래노동시장연구회’는 지난 12일 근로시간과 임금체계 중심의 권고문을 발표했다.

다만, 동 연구회는 근로시간과 임금체계 이외에 최저임금 차등 적용, 파견법 확대, 노조법 개편 등의 과제도 추가로 제시했다. 본책(本冊)보다 부록에 힘을 쏟는 잡지처럼 권고문의 말미에 추가된 과제들은 모두 경영계의 숙원(宿願)이라 할만한 것들이다. 이러한 점에서 현 정부의 노동개혁 과제를 ‘노동개혁이라는 그릇에 시장주의를 담아낸 양두구육’이라고 평가해도 과하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사실 노동개혁이라는 이름으로 친시장주의적 규제 완화를 추진한 것은 이번 정부만의 일이 아니다. 멀게는 20세기 후반 유럽 각국에서 진행된 노동개혁이란 이름의 노동시장 유연화, 가깝게는 정규직 과보호론으로 대표되는 박근혜 정부 시절의 노동개혁도 마찬가지였다. 이러한 지경에 이르게 되니, 노동개혁이라는 말만 들어도 심기가 불편해진다.

미래노동시장연구회의 권고문은 우리 사회가 마주한 노동시장의 이중구조, 저출산 고령화, 낮은 고용률 등의 여러 문제의 근저에 근로시간 규제와 장시간 근로 관행, 연공형 임금체계가 내재하고 있다는 인식하에 이들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노동시장의 활력을 제고하고 ‘자유롭고 건강한 노동’을 위한 과제라고 보고 있는 듯하다. 명망 있는 연구자들이 참여한 연구회가 발표한 권고문인지라, 이런 진단에는 수긍되는 바가 크다.

이처럼 누구나 수긍할 수밖에 없는 문제를 내걸었으면, 그러한 문제가 발생한 지점을 찾아 문제에 합당한 해결책을 제시하는 것이 온당한 개혁방안일 것이다. 그런데, 연구회가 제시한 세부과제를 보면, 연구회 스스로 제시한 문제의 해결방법이라고 볼만한 것들은 별로 없다. 특히, 노동시장의 이중구조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초기업 교섭의 촉진과 단체협약 적용 범위 확대 등을 먼저 고려해야 할 것인바, 연구회의 권고에는 이러한 사항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급이 없다.

이러한 상황은 연구회의 권고가 전문가의 입을 빌려 현 정부의 국정과제 추진의 정당성을 설득하기 위한 것이라는 의심을 갖게 한다. 사실 현 정부가 노사당사자는 배제한 연구회를 통하여 노동개혁 과제를 도출한 점은 전문가주의(professionalism)의 득세와 사회적 대화의 약세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지난 정부의 경우 경사노위나 다른 사회적 대화 기구를 통하여 택배, 화물연대 등의 현안에 관하여 포괄적인 사회적 합의를 통한 갈등의 조정을 모색했던 데 비해, 현 정부는 노동정책의 설계과정에서 노사 당사자의 참여를 배제했다. 이러한 경향성이 계속될 경우 정부에 의한 사회적 갈등의 조정기능 자체가 기능부전에 빠질 우려가 있다.

노동시장 이중구조의 해결은 법과 원칙을 강조하는 것만으로는 해결하기 어렵다. 사실 우리나라의 노동시장이 마주한 외부환경은 그리 만만하지 않다. 디지털화로 촉발된 일하는 방식의 변화나 기후위기에 대응하기 위한 산업전환 등 멀리 보고 해결책을 마련해야 할 과제가 산적해 있다. 이러한 환경변화에 대응하기 위하여 법과 제도를 포함한 총체적인 노동체제를 정비할 필요가 있다. 적어도 노동개혁이라는 말이 그 이름에 걸맞은 내용을 담기 위해서는 이러한 과제에 대한 거시적인 대응방안이 담겨야 할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노동체제의 근본적인 변혁이 일부 전문가의 머릿속의 그림에 따라 진행될 리는 만무할 것이다. 이러한 변혁을 위해서는 소위 사회적 파트너라고 불리는 제반 이해관계자를 설득하고, 조율하고, 합의하는 어찌 보면 번거롭고 수고로운 작업이 필요한 일이다. 특히, 이러한 개혁 과정에서 일정한 범주의 근로자들에게 경제적·사회적 희생이나 피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면밀하게 제도를 설계하고, 나아가 제도설계 과정에서 이해관계자의 여론을 충분히 수렴하여 반영할 필요가 있다.

이 과정에서 정부가 담당해야 할 일은 제반 이해관계자가 합의한 노동체제의 변혁에 걸림돌이 되는 법 제도가 있는가를 검토하고, 국회를 통하여 법 제도의 개선을 모색하는 일이어야 할 것이다. 이러한 과정을 모두 생략하고 전문가 몇 명의 의견을 모아 “이것이 노동개혁이다”라고 외쳐 본들, 2020년대의 대한민국에서 그러한 권위주의 정부 방식의 개혁이 성공할 리 만무하지 않겠는가?

권오성 성신여대 법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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