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인간승리’ 뿐일까…문화 읽는 다른 시선

홍지유 2022. 12. 31. 0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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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 눈을 심어라
거기 눈을 심어라
리오나 고댕 지음
오숙은 옮김
반비

버스정류장에 서 있는 시각장애인에게 행인이 다가와 이렇게 묻는다. “지금 제 심장 박동 소리가 들립니까?” 시각장애인은 초능력 수준의 청력을 가지고 있을 것이라고 믿은 나머지 이런 질문을 하게 된 것이다. 시각장애인 작가이자 이 책의 저자 리오나 고댕은 초능력을 보여주지 못해 머쓱했던 자신의 경험과 문화 콘텐트 속 시각장애인 캐릭터의 전형성을 설명하며 비장애인이 시각장애인을 바라보는 시선에 메스를 들이댄다.

고댕에 따르면 역사상 가장 위대한 시각장애인으로 기억되는 헬렌 켈러조차 ‘영감(inspiration) 포르노’의 희생양이다. 오로지 역경을 딛고 인간승리를 일궈낸 장애인으로만 기억되며 소비된다는 게 그 이유다. 실제 켈러는 생전에 “내가 세금이나 환경 문제, 드레퓌스 사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아무도 관심이 없다”고 토로하기도 했다. 사람들이 시각장애 작가에게 기대하는 것은 오로지 “역경을 극복하는 개인적 서사”다. 헬렌 켈러는 87세까지 살았지만, 성인 이후의 삶은 상대적으로 주목받지 못했다.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켈러는 촉감으로 물(water)이라는 글자를 배운 일곱 살 소녀일 뿐이다.

소설과 영화가 시각장애인을 다루는 방법도 전형적이다. 픽션에 등장하는 시각장애인은 대부분 영적인 존재, 예언자 또는 초능력자로 묘사된다. 시각을 상실한 데 대한 보상으로 다른 초인적 능력을 갖추게 됐다는 유구한 선입견 때문이다. 반면 문학이나 드라마에서 직장인, 전업주부와 같은 평범한 시각장애인은 찾아보기 어렵다. 섹슈얼리티도 마찬가지다. 시각장애인은 인간승리의 주인공(헬렌 켈러)이거나, 악을 처단하는 슈퍼히어로(데어데블)는 될 수 있어도 욕정의 주체나 객체는 될 수 없다.

이 책 『거기 눈을 심어라』(원제 There Plant Eyes)는 시각장애에 대한 ‘개인적이고 문화적인 탐구’다. 작가는 비장애인의 시선으로 바라본 시각장애인의 모습을 여러 각도에서 해체한다. 때로는 자신의 경험을, 때로는 예술 작품을 곁들인다. 극작가이자 공연예술가인 고댕의 개인사는 문학사와 어우러져 흥미를 더한다. 빈곤한 상상력에 균열을 내는 작가의 여정을 따라가다 보면 우리는 모두 잠재적 환자이자 장애인이라는 사실을 덤덤히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

홍지유 기자 hong.jiy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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