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전부’였던 어릴 적 그 소녀
신준봉 2022. 12. 31. 00:33
이재무 지음
열림원
시가 어떻게 써지는지는 시인들도 잘 모른다. “시가 벼락처럼 쏟아졌다”는 식의 모호한 진술들은 시 쓰는 데 있어서 ‘자유자재’는 지극히 어렵다는 경험담일 것이다. 어떻게 시인이 됐고, 시를 쓰게 된 기원이 무엇인지는 보다 분명히 이야기할 수 있는 것 같다. 이는 기억이나 성찰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이재무 시인의 최근 시집 『한 사람이 있었다』 는 그렇게 시의 근원을 투명하게 밝힌 책이다. 사랑 때문에 시를 쓰게 됐다는 것이다. 신작 시와 기존 시집에서 일부를 가져와 82편을 묶은 연시(戀詩)집이다. 어릴 적 이웃 마을 숙이라는 이름의 소녀가 시집 제목의 ‘한 사람’이다. 단 한 사람이었던 숙이로 인해 아프고 행복했고, 그는 자신의 시의 베아트리체였으며 세계의 전부였다는 것이다.
여기서 ‘아프고 행복했다’는 모순어법에 주목하자. 신파를 두려워하지 않는 시인은 ‘장기수’라는 시에서 자신을 “그리움의 장기수”로 표현했다. 그런데 이 수감은 자청한 일이다. “너라는 감옥”이 “황홀한 재앙”이기 때문에 “스스로 걸어 들어”갔다는 것이다.
스스로 자초한 형벌은 고통과 쾌감을 동일시하는 착란에 그치지 않는다. “삶이 모순”이라는 이치를 “섬광처럼 깨”닫게 된다. (‘모순’)
신준봉 기자 infor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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