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감수성 진화, 종이책 완독보다 전자책 ‘발췌독’ 대세

2022. 12. 31. 0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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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딩 휴머니즘
전자책 대세
독서 인구가 점차 감소하고 있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건 전자책 수요가 계속 증가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문화체육관광부가 19세 이상 성인 6000명과 초등학생·중고등학생 3320명을 대상으로 ‘2021년 독서실태조사’를 한 결과, 성인들의 독서율은 47.5%로 2019년에 비해 8.2%포인트 감소했다. 반면 19~24세 청년층의 독서율은 78.1%로 2019년에 비해 소폭(0.3%포인트) 상승했다.

큰 상승은 아니더라도 그나마 상승한 이유는 전자책 독서율의 증가가 청년층에서 두드러지기 때문이다. 20대의 전자책 독서율은 2017년 34,7%에서 2019년 39%, 지난해엔 50.5%로 크게 뛰었다. 20대를 아우르는 성인 독서율의 경우, 2017년 종이책 59.9%, 전자책 14.1%에서 2019년 종이책 52.1%로 감소했지만 전자책은 16.5%로 상승했다. 지난해 조사에서도 종이책 독서율은 40.7%로 크게 줄었지만, 전자책은 19%로 올랐다.

16세기 인쇄책 이전엔 손으로 쓴 책 유행

여러 조사를 통해 독서를 하기 어려운 이유를 물어보면 ‘일 때문에 시간이 없다’는 응답이 가장 많았다. 시간이 없는 것도 문제지만, 독서를 하는 습관이 그렇게 쉬운 일도 아니다. “인류는 책을 읽도록 태어나지 않았다.” 인지신경학자인 매리언 울프의 말이다. 인류는 원래부터 읽는 능력이 탁월한 것은 아니기 때문에 독서가 쉬운 일은 아니다. 독서는 인간의 뇌가 새로운 것을 배우고 재편성하는 과정에서 아주 오랜 후에 만들어진 기적적인 발명과 같다. 호모 사피엔스의 탄생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를 24시간으로 비유하자면 독서가 대중화된 것은 밤 11시 53분경에 발생한 최근의 기적인 셈이다.

독서가 인간의 후천적인 노력으로 형성된 고차원적 능력인 만큼 갈고 닦아야 하겠지만, 알다시피 요즘엔 모두가 독서의 위기를 말하고 있다. 올해 실시했던 설문조사에 따르면 1년에 책을 한 권이라도 읽는 사람이 10명 중 5명도 되지 않는다고 한다. 물론 여기엔 종이책이 아니면 독서에 포함되지 않는 통계라는 점도 한몫하고 있다. 그런데 독서는 꼭 종이책으로 해야 하는 걸까?

물론 종이책만이 주는 특별함은 있다. 종이에서 느껴지는 질감, 고유의 책 냄새, 편집 형태와 표지가 주는 시각적 체험은 전자책으로 경험할 수 없는 고유한 독서 경험을 제공한다. 무엇보다 전자책이 대신할 수 없는 아날로그적 손맛이 있다.

디지털 전환이라는 거대한 흐름 속에서도 아직 종이책이냐 전자책이냐는 논란은 계속되고 있는데, 사실 이러한 논란은 역사적으로 자주 반복된 일이다. 예를 들어, 지금의 종이책이 옛날에도 자연스러운 독서 경험을 제공해 주었을까? 사실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현재와 같은 종이책이 처음 등장한 것은 16세기였다. 당시 구텐베르크의 인쇄 혁명이 일어났고 금속활자를 이용한 인쇄술이 발달하기 시작했다. 인쇄술은 위대한 문명의 이기(利器)였다. 덕분에 책의 대량 생산이 가능해 지면서 보편화하였고 인류의 지성을 한 차원 끌어올릴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바야흐로 ‘독서의 르네상스 시대’가 펼쳐지게 되었다.

하지만 당시 사람들에게 인쇄기로 만든 책은 매우 낯선 물건이었다. 당시에는 글자를 인쇄하는 것이 아니라 필경사가 손으로 직접 써서 만든 책이 주류를 이루고 있었기 때문이다. 인쇄기로 만든 책이란 인간적인 손맛을 전혀 느낄 수 없는 책이었다. 그것은 필경사가 한 자씩 쓸 때마다 글씨체가 달라지는 자연스러움이 없었다. 그런 글씨는 독서 경험의 질을 떨어뜨리는 것이었으며, 당시의 시대적 감수성으로는 받아들이기 힘든 문명의 이기심같은 것이었다.

그러나 6세기가 지난 지금, 구텐베르크 시대의 인쇄된 종이책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독서 경험이 되었다. 오히려 필경사란 직업이 사라졌다. 오늘날 필경사가 직접 쓴 인간적인 손맛을 찾는 사람은 전혀 없으며 인쇄된 종이 질감에서 느껴지는 아날로그적 손맛이 그 시대적 감수성을 대신하게 되었다.

서울시가 신천동 유수지 창고를 재생해 만든 ‘서울책보고’. 국내 첫 공공 헌책방이다. 김현동 기자
감수성이란 그 시대 정서를 반영할 따름이다. 시대 정서란 그 시대를 배경으로 한 사람들에게 통하는 보편적 감수성인데 결국 시대가 바뀌면 감수성도 바뀌게 될 뿐이다. 지금이야 전자책이 어색하다고 하지만 먼 훗날엔 아날로그적 손맛을 대체할 ‘터치스크린의 손맛’이 새로운 감수성으로 바뀔 수도 있다.

그렇다면 필경사가 직접 쓴 종이책도 거부했던 시대가 있지 않을까? 16세기보다 더 옛날로 거슬러 올라가면 있다. 역사란 이상하게 반복되는 구석이 있기 마련이다. 그것은 기원전 5세기였고 그 시대의 가장 대표적인 인물은 소크라테스였다. 그는 독서 경험 자체를 비판했다. 문자를 읽어 지식을 습득하는 행위 즉, 독서라는 행위 자체를 비판했을 뿐만 아니라 필경사가 책을 쓰는 행위마저 비판했다.

쉽게 말해서, 소크라테스는 읽기와 쓰기를 가능케 해주는 문자 기록을 거부했다. 소크라테스는 이렇게 말했다. “사람들이 글로 기록하면 배운 것에 대해 너무 안일하게 생각한다고, 글을 읽고 나면 마치 그것을 전부 안다고 믿지만 사실은 읽은 것을 깊이 생각하거나 질문을 던지지 않는다”고.

소크라테스의 복음을 기록한 ‘파이드로스’에 보면 이렇게 표현하기도 했다. “글을 읽어 아는 자는 진정으로 지혜로운 자가 아니라 겉보기에 지혜로운 자일뿐이오(파이드로스, 275장 b절).” “문자는 그것을 쓰는 사람들로 하여금 기억에 무관심하게 해서 그들의 영혼 속에 망각을 낳을 것이니, 그들은 글쓰기에 대한 믿음 탓에 바깥에서 오는 낯선 흔적에만 의존할 뿐, 안으로부터 자기 자신의 힘을 빌려 상기하지 않게 될 것이오(파이드로스, 275장 a절).”

우리는 책을 읽고 나면 그것을 안다고 믿지만 사실은 읽은 것을 전부 소화하지 못하며 깊은 사고를 하지 않을 수도 있다. 소크라테스와 같이 대화를 중요시하는 ‘구술 문화 시대’의 사람들은 그렇지 않았다. 그들은 대화와 토론을 통해 지식을 습득하고 습득한 지식을 내면화하기 위해 암기하고 그것을 완전히 자신의 것으로 수용하거나 질문을 하는 과정에서 깊은 고찰을 유도했다. 무엇보다 소크라테스는 질문을 던지는 행위가 가장 중요하다고 믿었다. 그러나 독서는 내용을 내면화하고 암기하며 질문을 하는 행위 자체가 얼마든지 생략될 수 있다. 그런 관점은 2500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시사하는 바가 있다.

문자 수용 플라톤, 스승 말씀 몰래 기록

책이란 외형에 불과하다. 본질은 그 안에 담고 있는 내용이다. 책은 시대 변화에 따라 점토판이거나 죽간이거나 파피루스이기도 했다. 그리고 지금은 전자책이 되었다. 우리는 책의 외형을 꾸준히 바꿔 왔지만 정작 책의 내용을 습득하는 행위는 인간 의지에 맡겨 둘 수밖에 없었다.

소크라테스의 문자 비판은 독서가 가진 치명적인 약점을 지적했다고 할 수 있다. 단, 한 가지 주목할 점은 소크라테스는 구술 문화 시대의 사람이라는 점이다. 우리는 소크라테스 시대와 그 이후 시대를 ‘구술 문화 시대’와 ‘문자 문화 시대’로 구분하고 있다. 앞서 말했듯이, 한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감수성은 그 시대 정서에 매몰되기에 십상이다.

다음 세대는 그 이전 세대와 다른 정서로, 또 다른 감수성으로 진화해 나간다. 소크라테스는 문자를 비판했기에 그 어떤 저서도 남기지 않았다. 그러나 우리는 그가 무슨 말을 했는지 ‘크리톤’, ‘파이돈’, ‘향연’, ‘파이드로스’와 같은 책들을 통해서 익히 알고 있다. 매우 이상한 일이다. 그렇다면 그 책들은 누가 쓴 것일까? 그것은 소크라테스의 제자였던 플라톤이었다. 그는 스승 몰래 스승의 말씀을 기록하였는데, 요즘 말로 하자면 ‘컨닝페이퍼’였던 셈이다. 좀 더 좋은 의도로 말하자면, 그는 스승과 달리 문자 문명을 받아들였다. 그 덕분에 그와 같은 유산을 여러 권의 책으로 후세에 남겨줄 수 있었다. 만약 플라톤이 스승의 말씀을 몰래 기록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우리는 소크라테스를 기억할 수 있었을까?

지난해 성인 독서 인구는 47.5%. 이들의 독서량은 평균 4.5권. 2년 전보다 각각 8.2%포인트, 3권이 줄었다. 이 통계만 보면 독서인구는 꾸준히 감소하는 추세다. 특이한 점은 성인들이 책을 읽기 어려운 이유로 ‘다른 매체 콘텐트 이용(26.2%)’이 증가했다는 점이다. 이런 영향 때문인지 전자책 독서율은 오히려 2.5%포인트가 증가했다고 한다. 일례로 전자책을 서비스하는 ‘밀리의 서재’는 어느덧 500만 회원을 돌파했고 매출은 꾸준히 상승해 올해는 기업공개(IPO)에 도전하고 있다.

앞서 독서 통계와 다르게, 우리나라 공공도서관 수는 매년 증가 추세다. 가장 최근 통계인 2020년 기준 우리나라 공공도서관 수는 1172개 관(지자체 도서관 914개 관, 교육청 도서관 235개 관, 사립도서관 23개 관)으로 전년 대비 3.4% 증가했다.

공공도서관들은 시대 변화에 맞춰 종이책만 고집하지 않고 전자책을 꾸준히 늘리고 있다. 갈수록 전자책의 수요가 무섭게 증가하고 있고, 태블릿PC 보급으로 최근 전자책 시장이 급성장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서울의 한 공공도서관에서 종이책과 전자책 이용에 대한 설문조사를 한 결과 ‘이용의 편리성’으로 전자책에 대한 인지도와 만족도가 매우 높은 수준(97%)을 나타냈다.

종이책 사고방식으로는 완독해야 독서량으로 집계하는 인식도 있는 것 같다. 요즘처럼 검색과 전자책이 보편화하면 ‘완독’보다는 ‘발췌독’이 보편적인 현상이 된다. 발췌독이란, 책에서 필요한 부분 또는 알고 싶은 부분만 발췌하여 읽는 독서법을 말한다. 이런 독서 방법은 독서량 집계에서 제외되거나 반영되기가 어렵다. 종이책만으로 독서 인구를 판단할 수 없다. 한편으로 정보를 습득하는 과정에서 ‘독서’보다는 ‘검색’이 보편화 된 세상에서 독서를 고집하고 종이책을 고집하는 것이 현시대 상황과 맞는 것인지 의문이 든다. 어쩌면 우리는 독서에 대한 시대적 감수성에 집착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기존에 우리가 가진 독서 경험에 대한 고정관념이 바뀌어야 한다.

오민수 멀티캠퍼스 프로 minsuu.oh@multicampus.com 정보산업공학을 전공했고 코딩을 배웠으나 글쓰기를 더 좋아한다. 멀티캠퍼스에 입사 후 삼성그룹 파워블로거, 미디어삼성 기자를 병행하면서 ‘디지털 전환’과 관련한 글쓰기를 시작했다. 현재는 ‘멀티캠퍼스’에서 IT 생태계의 저변을 넓히는 일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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