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U, 탈중앙형 새 SNS ‘페디버스’ 통해 탈미국 노려

2022. 12. 31. 0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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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경의 ‘호이, 채메’
독일 개발자 오이겐 로흐코가 설립한 ‘무료 오픈소스 탈중앙형 소셜미디어’인 마스토돈(mastodon). 기존 소셜미디어들과는 달리 다양한 주체가 자체 서버를 이용할 수 있다. [AP=연합뉴스]
얼마 전 작지만 중요한 변화가 하나 있었다. 지난 10월 24일 유럽의회가 충전기표준화 법안을 최종 승인한 것이다. 지금은 휴대전화, 무선 헤드폰, 태블릿 PC 등의 충전기 크기가 제각각이지만, 이 법안이 승인됨에 따라 2024년 12월 28일까지 유럽 내 모든 전자 기기의 충전 방식이 USB-C로 통일된다. 기기별로 다른 충전기를 쓸 필요도 없으니 편리하고 경제적인 데다, 매년 1만1000t씩 나오는 충전기 쓰레기도 크게 줄어들 전망이다. 유럽의 이 같은 결정에 당장 직접적인 타격을 받는 것은 애플이다. 늦어도 2024년 이후 출시되는 아이폰부터는 충전 방식을 바꿔야 한다.

유럽에서 최근 생긴 또 다른 변화를 보자. 지난 11월 1일 발효된 디지털시장법(Digital Markets Act, DMA)이 그것이다. 이 법안은 기존의 메신저들이 소규모 신규 메신저들과 상호 운용돼야 한다는 내용이다. 현재 메신저 시장을 대부분 점유하고 있는 왓츠앱, 페이스북 메신저 등은 자체 플랫폼 안에서만 작동한다. 왓츠앱 사용자와 페이스북 메신저 사용자가 서로 소통할 수 없다. 그런데 이 방식을 바꿔서 어떤 앱을 쓰건 서로 자유롭게 메시지, 파일 등을 주고받을 수 있게 하라는 거다. 기술적으로는 전혀 어려운 일이 아니다. e메일을 떠올리면 된다.

트위터 정치적 쏠림 우려 이탈자 늘어나

네이버메일, G메일 등 다른 계정을 써도 e메일을 주고받는 데는 문제가 없다. 메신저 기업들이 그렇게 하지 않았던 것은 신규 업체의 진입을 막고 시장을 폐쇄적으로 유지하기 위해서였다. 유럽의회는 이 법안의 의도가 ‘정원을 둘러싼 벽을 무너뜨리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디지털시장법은 시행 단계를 거쳐 2023년 5월 2일부터 실제 적용된다. 법을 위반하는 기업에는 글로벌 연매출의 10%에 해당하는 벌금이 부과되고 반복 위반 시 20%로 벌금이 늘어난다.

충전기표준화 법안과 디지털시장법에는 공통점이 있다. 표준화(standardization)를 통한 탈중앙화(decentralization)다. 상호 운용이 가능한 표준을 정함으로써 하나의 상품이나 서비스에 지나치게 의존하지 않도록 하려는 목적이다. 의존하지 않겠다, 즉 독립하겠다는 문장 앞에는 대상이 생략돼 있다. 미국이다. 디지털 상품이나 서비스로 세계 시장을 지배하는 미국의 힘으로부터 벗어나려는 의도가 위 두 법안에 담겨 있다.

유럽 내 모든 전자 기기의 충전방식으로 통일 된 USB-C타입. [사진 트위터 캡처]
표준화를 통해 탈중앙화(정확히는 탈미국화)하겠다는 유럽의 움직임이 현재 가장 극명하게 드러나는 영역은 소셜미디어다. 변화의 직접적인 계기가 된 트위터 상황부터 볼 필요가 있다. 트위터는 지난 10월 말 440억 달러(약 62조원)에 일론 머스크에 인수된 뒤 논쟁의 중심에 놓였다. 혐오 발언과 인종주의 조장 등으로 영구 정지됐던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의 계정이 회복됐고, 기다렸다는 듯 각국 극우 정치인들의 팔로워 수가 증가했다. 스위스 일간 NZZ가 머스크의 트위터 인수 이후 스위스 정치인들의 팔로워 수 변화를 분석해 보도했는데, 이에 따르면 극우 정당인 스위스국민당(SVP) 의원들의 팔로워 수가 적게는 100여명, 많게는 1000여명 정도 늘어났다. 독일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극우 정당인 ‘독일을위한대안(AfD)’ 의원들의 팔로워 수가 머스크의 인수 직후 증가했다. 이 기간 팔로워가 2000명 이상 늘어난 AfD 의원 슈테판 브란트너는 ‘일론 머스크에 의한 트위터 해방 이후 내 팔로워가 폭발했다’는 트윗을 올리기도 했다.

이 같은 정치적 쏠림 현상을 우려한 트위터 이용자들이 옮겨 가고 있는 플랫폼 마스토돈은 독일 개발자 오이겐 로흐코가 설립한 ‘무료 오픈소스 탈중앙형 소셜미디어’다. 마스토돈은 트위터뿐 아니라 기존의 주요 소셜미디어와 매우 다른 특징을 갖고 있다. 페이스북, 트위터, 틱톡 등이 ‘벽으로 둘러싸인 정원’이라면, 마스토돈은 ‘다리로 연결된 바다 위의 섬들’이라고 할 수 있다. 기존 소셜미디어들은 하나의 단일 기업에 의해 운영, 관리되는 중앙형 서비스다. 이와 달리 마스토돈은 다양한 주체가 자체 서버(마스토돈 용어로는 인스턴스)를 이용한다. 원하는 사람 누구나 서버를 만들어 운영할 수 있고, 서버별 프라이버시 보호나 콘텐츠 모더레이션 규정이 모두 다르다. 자신이 속한 서버의 혐오발언 규정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다른 서버로 계정을 옮겨 계속 마스토돈을 이용할 수 있다. 12월 말 현재 마스토돈 측은 이런 서버가 1만2000개 이상이라고 밝히고 있다.

서로 다른 서버를 이용하더라도 소통은 가능하다. 이 서버들이 모두 액티비티 펍(activity pub)이라는 표준화된 프로토콜을 이용하기 때문이다. 액티비티 펍의 놀라운 점은, 이것이 마스토돈 내의 다양한 서버들만 연결하는 것이 아니라 마스토돈 외부의 다른 소셜미디어들과의 연결 고리도 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보자. 피어튜브(Peertube)라는 소셜미디어가 있다. 유튜브처럼 영상을 공유하는 미디어다. 피어튜브도 마스토돈처럼 액티비티 펍을 이용한다. 따라서 피어튜브 이용자가 새 영상을 올리면, 그를 팔로우하는 마스토돈 이용자의 피드에 그 영상이 뜬다. 사용하는 플랫폼이 달라도 넓은 의미의 네트워크에 함께 속하는 것이다. 트위터 이용자가 유튜브 이용자와 소통하는 건 불가능하지만, 마스토돈 이용자는 피어튜브 이용자와 소통할 수 있다. 액티비티 펍의 힘이다.

미국 장악 소셜미디어 판도 바뀔지 관심

유럽위원회가 마스토돈에 가입한 4월 28일에 올린 트윗. “이제 EU 관련 소식을 프라이버시가 강화된 환경에서 읽을 수 있다”는 메시지를 담았다. [사진 트위터 캡처]
액티비티 펍을 이용하는 소셜미디어는 점점 늘고 있다. 단문 메시지를 공유하는 마스토돈이나 프렌디카(Friendica), 영상을 공유하는 피어튜브나 펑크웨일(Funkwhale), 이미지를 공유하는 픽셀페드(Pixelfed) 등이 그것이다. 이들이 바다 위에 떠 있는 각각의 섬이라면, 이 섬들은 액티비티 펍이라는 다리로 이어져 있는 셈이다. 이 많은 섬의 네트워크를 페디버스(Fediverse)라고 부른다. ‘연방(federal)’과 ‘우주(universe)’의 합성어다. 페디버스는 공통의 프로토콜로 연결되어 소통이 가능하면서도(표준화) 각각의 특성을 유지하는(탈중앙화) 새로운 소셜미디어 세계다.

그동안 중앙집중화된 미국 기업의 소셜미디어를 이용했던 유럽연합(EU) 산하 기구들은 페디버스의 등장에 열광하고 있다. 마스토돈이 본격적으로 대세가 되기도 전인 지난 4월 28일, 유럽위원회는 마스토돈에 합류하기 위한 자체 서버를 구축하고 ‘EU Voice’라는 계정을 만들었다. 동시에 피어튜브에도 ‘EU Video’라는 계정을 열었다. 페디버스에 둥지를 튼 EU 기구들이 강조하는 것은 개인정보 보호다. 이제 이용자들의 개인 정보를 유럽 밖으로 보내지 않아도 된다는 거다. 유럽위원회는 페디버스에 합류하던 날 기자회견문에서 이렇게 밝혔다. “마스토돈과 피어튜브는 페디버스의 일부분이다. 페디버스는 프라이버시 보호에 집중한 환경에서 이용자들을 이어 준다. 광고도 없고, 이용자 데이터도 수집하지 않는다. 모든 데이터는 EU 내에서 처리된다. 이 플랫폼을 이용해 우리는 이용자들의 통합과 EU 내 의사소통의 회복을 추구할 것이다.”

페디버스의 중심축을 담당하는 마스토돈의 설립자가 독일인, 즉 유럽인이라는 점도 플러스 요인이다. 마스토돈 설립자 오이겐 로흐코는 독일 중부 튀링겐주에 있는 예나 프리드리히 실러 대학 출신이다. 졸업 후인 2016년 마스토돈을 설립했다. 캘리포니아 어느 집 차고에서 대학을 중퇴한 미국인 몇몇이 모여 회사를 만들었다는 식의 거대 테크 기업 설립자 신화에 익숙한 유럽인들에게, 독일 시인 프리드리히 실러가 교수로 있었던 대학 출신의 청년이 만들었다는 탈중앙형 소셜미디어는 매력적일 수밖에 없다. EU 전문 매체인 EU옵저버는 “마스토돈이 번창하면 새로운 유러피안 테크 플레이어가 될 것”이라고 보도하기도 했다. 미국이 장악한 소셜미디어 시장에서 유럽이 판도를 바꿀 기회를 잡았다고 장담하긴 아직 이르다. 현재 주로 기부금에 의존하는 서버 비용 등은 풀어야 할 과제다. 페디버스는 대안이 될 수 있을까.

김진경 스위스 거주 작가. 한국에서 일간지 기자로 일했다. 스페인 남자와 결혼해 스위스 취리히로 이주한 뒤 한국과 스위스의 매체에 글을 기고해 왔다. 저서로 『오래된 유럽』이 있다. 현재 취리히대학에서 인터넷 플랫폼과 그것을 둘러싼 사회의 변화에 대해 공부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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