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흡기 질환 달고 살고, 쉴 곳도 시간도 부족해 과로·과적…현 운임체계서 적정시간만 일해선 생계 유지 힘들어” [화물연대 파업 그 후, 현장서 만난 트럭기사 3인]

원동욱 2022. 12. 31. 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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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ECIAL REPORT

화물연대 총파업 나흘째던 지난달 27일 서울 서부트럭터미널에 화물차들이 멈춰서 있다. 화물연대는 여론 악화와 정부의 강경대응에 16일에 걸친 파업을 종료하고 지난 9일 업무에 복귀했다. [연합뉴스]
“콜록콜록.”
- 정유 탱크로리 모는 정문수씨

지난 6일 오전 2시 경기도 파주. 정문수(55)씨의 밭은기침. 그는 영하 9도의 차가운 공기를 뚫고 바삐 한 화물차 전용 주차장으로 향했다. 동행한 기자의 코끝이 얼얼했다. 정씨는 영업용 탱크로리 트럭을 몬다. 인천 물류센터 등에서 휘발유·등유·경유를 실어나른다. “서울 찍고 인천으로 돌아와 다시 기름 채우고 또 수도권 돌고 인천으로 돌아오고… 이런 식으로 ‘3세트’를 되풀이하면 하루가 지난다”며 그는 트럭에 올랐다. 하루 몇 ㎞를 운전하느냐는 물음에 그는 “거참, 언제 그런 걸 계산하고 사느냐”라고만 답했다.

400㎞. 화물 운전사들의 하루 평균 운전 거리다. 직선거리로 서울에서 부산을 찍고 다시 대구까지 가는 거리다. 이들은 화물을 대당 평균 4.2t을 짊어지고 전국 구석구석까지 누빈다. 화물운송업을 가히 ‘산업계의 핏줄’이라 부르는 이유다. 지난 여름과 이번 겨울 화물연대 총파업으로 물류가 막혔다. 대기업이 운영하는 자동차·철강·건설업부터 소상공인이 꾸리는 편의점·음식점까지 숨이 멎을 지경이었다. 이번 총파업에 국민은 냉담했다. 중앙SUNDAY는 화물 노동자의 삶을 들여다봤다. 노조라는 집단 논리로 왜곡될 수도 있는 한 사람, 한 사람의 일터를 찾아갔다. 왜냐하면, 화물 노동자도 대한민국 국민이기 때문이다.

다시 6일 새벽 경기도 파주. 정씨가 또 쿨럭거렸다. 만성 호흡기 질환이란다. 그는 “탱크로리 뚜껑을 열고 정유를 들이붓다 보니 유증기에 노출된다”며 “차단장치를 구비하면 되는데, 돈이 만만치 않아 나처럼 호흡기 질환을 아예 달고 사는 기사들이 많다”고 말했다. 그는 “정유사나 운송사에서 어떤 지원도 해주지 않아 개인적으로 유증기 차단 마스크를 구매해서 쓸 뿐”이라고 덧붙였다. 정씨는 산업재해에 해당하지 않을까.

화물차주(기사)들은 현장에서 뛰는 노동자이기도 하고, 개인 트럭으로 영업하는 사장님이기도 하다. 그래서 화물차주는 특수형태근로자로 부른다. 산재보험을 받기가 어려웠다. 2020년 7월 산업재해보상보험법 개정으로 산재보험에 가입하지 않은 상태에서 사고가 나더라도 보험금을 받을 수 있도록 법이 개정됐다. 하지만 정씨에게는 이미 늦은 법 개정이었다. 소급해서 보상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국토교통 통계누리에 따르면 국내에 등록된 영업용 화물차수는 43만8331대(2021년 12월 기준). 한달 중 평균 운행 일수는 22.7일, 횟수는 48.7회에 달한다. 하루에 2회 이상 운행한다는 것이다. 하루 평균 근로시간은 12시간으로 나와있다. 하지만 현장에서 만난 많은 화물차주는 “운행 전 적재와 운행 후 하역(상하차 작업) 시간, 대기 시간 등 제대로 쉴 수 없는 시간을 포함하면 족히 15~16시간은 될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콜록콜록.” 마른기침 소리가 고요하고도 차가운 차 안을 메운다. 호흡기에 더 안 좋다며 히터는 ‘오프(off)’ 상태. 오전 6시, 집에서 싸온 사과 두 쪽과 주먹밥으로 차 안에서 간단하게 끼니를 해결한 정씨는 다시 인천의 센터로 돌아갔다. 그는 “오전 2시부터 일하고 오후 6시쯤 집에 돌아가면 아이들은 학원에 가 있거나 잠들어 있다”며 “쉬는 날은 그동안 못 잔 잠을 자거나 허리와 기관지 치료를 위해 병원에 가야 하니 가족과 시간을 보내기가 어렵다”고 말했다. 이제 오늘 1세트 끝. 아직 2세트가 남았다. 시간은 12시간, 거리도 280㎞ 남았다.

“운행 14년간 맘 편히 쉬었던 날은 손에 꼽네요.” 여명 속으로 그가 멀어진다.

“아버지가 반대했는데, 이렇게 열악할 줄 몰랐죠.”
- 수출입 컨테이너 운반 백성현씨

지난 7일 오전 6시. 또 다른 화물차 기사 백성현(28)씨의 하루가 시작됐다. 백씨는 부산에서 광주·전주 등까지 수출입 컨테이너를 운송한다. 화물차주 평균 나이보다 30여 살이나 어린 22살부터 화물차 운전을 시작했다. 화물자동차 운전자의 평균 연령은 2019년 52.3세에서 2021년 53.7세로 점점 높아지는데 운행여건은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백씨는 “부산까지 물건을 운반하고 돌아오면 다음날 오전 1시가 훌쩍 넘어가는 일이 부지기수”라며 “한번 나가면 보통 16~17시간 정도 걸린다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백씨는 “운전하는 시간도 길지만 대기하고 (상하차) 작업하는 시간이 길다”고 말했다. 백씨의 하루 평균 운전 거리는 800㎞. 경부고속도로를 이용해 서울과 부산을 왕복하는 거리보다 10㎞가량 길다. 무박 2일짜리 부산 왕복을 ‘1탕’이라고 부른다. 한달에 13탕은 뛰어야 유지가 가능하다.

대기 시간을 빼고 순수하게 운전하는 시간만 10시간이 넘지만 끼니를 전혀 찾아먹지 못할 때도 잦다. 큰 차를 세워놓을 곳이 마땅치도 않고, 여유있게 밥을 먹을 시간도 부족하기 때문이다. 그는 “음식을 집에서 싸 오지 않으면 그나마 주차장이 잘 갖춰진 휴게소에서 끼니를 해결해야 하는데 아무래도 밥값이 다른 식당들보다 비싸다”며 “또 휴게소에 정차할 곳이 없으면 아무리 배가 고프거나 졸려도 다시 돌아 나와야 한다”고 말했다.

백씨에게 잠은 사치에 가깝다. 그는 “잠을 자면 그만큼 퇴근 시간이 늦어지고, 자다가 차 막히는 타이밍에 걸리면 또 그만큼 손해가 생길 수 있으니 뺨을 때리고 허벅지를 꼬집으면서 어떻게든 버틴다”고 말했다. 화물 운전자들은 2시간 연속운전 후 15분 이상 휴식을 취해야 하는 게 의무화돼 있지만, 이를 지키는 경우는 거의 없다는 게 백씨의 설명이다. 그는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공간도, 시간도 부족하다”며 “제도는 선진국을 따라가려 하지만 그런 인프라는 매우 부족하다고 느낀다”고 말했다.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한국도로공사 자료에 따르면, 2016~2020년 5년 동안 고속도로 교통사고 사망자 1035명 중 화물차 교통사고 사망자는 절반인 522명(50.4%)에 달했다. 원인은 졸음운전, 적재량 초과, 속도를 높이기 위한 차량 개조, 차량 노후화 등이 꼽힌다. 일부 개인의 문제일 수도 있지만, 구조적인 ‘낮은 운임’으로 인해 불가피하게 발생하는 과로·과적이라는 시각도 존재한다. 오늘(12월 31일)을 마지막으로 3년 시한 일몰 예정인 안전운임제가 문재인 정부 때 시행된 이유이기도 하다.

백씨는 “안전운임제를 시멘트·컨테이너 기사들에게만 시행하니 다른 종목의 기사분들이 다들 시멘트랑 컨테이너로 넘어와서 이쪽은 현재 포화상태”라면서 “그러다 보니 단가는 떨어지고 일감을 잡는 것도 점점 어려워지는 것 것 같다”고 말했다. 백씨는 “안전운임제가 있으면 과로나 과적으로 인한 문제들이 줄어들 것”이라고 말했다. 운송품의 주인인 화주(기업·공장)와 운수사업자(운송사·주선사)가 일방적으로 운임을 정하는 현 운임체계 내에서는 적정 시간만을 일해서는 차량 할부를 감당하며 생계를 유지할 수 없다는 것이다.

다만 조금 다른 의견을 내는 전문가들도 있다. 박지순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개인사업자에게 특정 가격을 강제하는 것은 시장 경제 원칙에 어긋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박 교수는 “안전 운임제를 시행하기보다 협회 차원에서 ‘운입 협정’을 체결하고, 당사자들이 합의하지 못했을 경우 이를 기준으로 약정을 체결할 수 있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오전 1시, 백씨는 퇴근 후 집에 와서 끼니를 해결한다. 백씨는 “다들 화물차 운전을 하면 돈을 많이 번다고 알고 있는데 남는 게 얼마 안 된다”라며 “한 달 1500만~1600만원 정도 벌지만, 고정 비용이 차량 할부금 400만원, 기름값 800만원, 유지비 100만원, 도로비 60만원, 요소수 40만원 등 1400만원 정도가 나간다”고 말했다.

물론 모든 운전사들이 백씨처럼 어려운 상황인 것은 아니다. 경기가 좋을때 한달에 15~16탕을 뛰며 적지 않은 돈을 모은 운전자도 많다. 경력이 오래된 고령 운전자 중에는 트럭 할부금을 다 갚고 아이도 다 키운 뒤 무리하지 않고 운행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백씨 역시 젊은 차주들과 경력이 오래된 차주들 간의 상황 차이를 지적했다. 부산이나 여수까지 한번 편도 운송을 하고 나면 콜을 받고 올라와야 기름값이라도 메울 수 있다. 백씨는 “할부가 끝난 경력이 오래된 차주분들 같은 경우에는 얼마 안 되는 가격도 용돈 번다 생각하고 받아들이는 경우가 많은데, 나처럼 할부도 안 끝나고 경력도 얼마 되지 않은 운전사는 그 정도 가격으로 올라가면 남는 게 없어서 울며 겨자 먹기로 받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말했다.

“아버지가 몰던 큰 차가 멋져서 시작했는데….”라며 말끝을 흐리는 백씨는, 자신의 흐린 미래를 보는 듯했다.

민주노총이 지난 5월 1일 서울 숭례문 일대에서 ‘2022년 세계 노동절 대회’를 진행하고 있다. 민주노총은 이날 서울을 비롯한 대구, 부산, 광주 등 전국 16개 지역에서 해당 집회를 진행했다. [뉴스1]
“수입은 좀 감소했지만 스트레스 줄어 만족.”
- 법인차로 주류 배달하는 주재윤씨

지난 8일 오전 9시, 피로에 쫓긴 화물차 기사 주재윤(52)씨가 고양 휴게소를 찾았다. 약 15년을 개인 사업자로 일하던 주씨는 현재는 식료품 도소매와 주류 중개를 하는 회사에 소속되어 주류를 운반하는 과장이다. 주씨는 “개인 화물차로 일할 때 정말 죽고 싶었던 적이 한 두 번이 아니다”며 “몸은 아픈데 돈은 계속 나가니 일을 쉴 수는 없고, 정말 악순환의 반복”이라고 말했다. 주씨는 “도저히 그런 불규칙하고 매일매일 스트레스받는 삶을 견딜 수 없어서 지금은 법인에 소속되어 일을 하고 있다”며 “수입은 좀 줄었지만 출퇴근 시간이 비교적 일정한데다 영업과 차량 유지 관련 스트레스도 줄어 만족”이라고 말했다. 주씨처럼 법인 기사로 일하기는 쉽지 않다. 채용이 적은 데다가, 안정적인 만큼 입사 경쟁도 치열하다.

주씨는 ‘죽고 싶었다’고 말한 이유 중 하나로 ‘돈이 계속 나간다’는 것을 들었다. ‘지입제도’를 말한 것이다. 국내의 화물 운송업 소유 주체에 따라 개인과 일반(지입)으로 나뉜다. 개인이 화물운송 면허를 사려면 차종별로 2000만~4000만원이 필요하다. 지입은 차량만 본인이 사고 면허는 운수회사의 영업용번호판(노란색)을 임대하여 화물운송을 하는 일이다.

주씨는 “절반이 넘는 지입 업체가 화물운송 물량은 확보하지 않고 무작정 차량만 임대하고 지입료만으로 먹고산다”며 “운송주선업체들은 4~10%의 금액을 알선수수료 등의 명목으로 챙기고 다단계식 거래를 통해 많게는 40%에 이르는 운임이 거래비용으로 중간에서 사라진다”고 말했다. 그는 “7~8년을 주야장천 일해서 번호하나 받으려고 발버둥 치다보니 졸음운전, 과적 등등 부작용이 생긴다”며 “차라리 나라에서 번호를 임대하고 관리해주고 지입료를 걷으면 좋겠다”고 주장했다.

오후 9시, 퇴근해서 뉴스를 보던 주씨는 화물연대와 정부의 갈등 소식을 듣고 분통을 터트렸다. 그는 화물연대를 비롯한 민주노총과 정치권에 다툼에 신물이 난다고 했다. 주씨는 “화물연대가 모든 화물차 운전사들을 대변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근본적인 처우 개선은 나 몰라라 하고 노동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부분들이 너무 많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달 파업 때 주류 운송 중 화물연대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피해를 보기도 했다”고도 했다.

화물연대는 2002년 10월 출범한 뒤 민주노총에 가입했다. 2006년 11월에는 내부 투표를 통해 전국운수산업노동조합 화물운송특수고용직연대본부로 조직을 개편했다. 단체 명칭에 ‘노동조합’이 아니라 ‘화물연대’라는 표현이 들어간 이유는 차주 겸 기사인 화물노동자들이 노동법상 ‘노동자’가 아니라 특수형태근로종사자로 분류되기 때문이다. 고용계약을 체결하지 않고 업무위탁계약 등에 의해 노동을 제공하고, 수수료 등의 형태로 대가를 받는 사람을 말한다. 이들은 노동3권과 같은 제도적 보호를 받지 못한다.

주씨는 “일선에서 잠 쪼개가며 정말 힘들게 일하고 있는 화물 기사들의 목소리를 들어야 하는데, 힘 있는 노조 목소리만 들으려 하니 어쩌나”라며 긴 한숨을 쉬었다. 그는 ‘노조 목소리만 들으려 한다’는 주체가 누구인지는 말하지 않았다.

세밑인 지난 29일 오전 2시 정씨가 콜록거리며 다시 경기도 파주의 화물차 주차장으로 향한다. 오전 6시 백씨가 경부고속도로에서 호남고속도로 갈아타며 잠을 쫓으려고 허벅지를 꼬집는다. 오전 9시 주씨는 다시 피로에 쫓겨 고양 휴게소에 쓰러질 듯 들어섰다. 만물이 화물차에 실려, 한국 경제는 오늘도 이들처럼 있는 힘이라도 쥐어짜며 돌아간다.

■ 안전운임제 폐지, 일몰제 연장안 본회의 상정 못 해

「 화물연대 파업의 쟁점이었던 ‘화물차 안전운임제(안전운임제)’가 올해 말로 폐지된다. 30일 국회에 따르면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은 지난 28일 본회의에서 일몰법안을 처리하기로 했지만 끝내 이견을 좁히지 못했다. 안전운임제는 화물차주에게 적정 운임을 보장해 화물운송 종사자들이 과로와 과적, 과속 위험으로 내몰리는 것을 막고자 2018년 법제화됐다. 2020년 1월부터 2년간 시행됐고 연말 일몰을 앞두고 있다.

정부 여당은 3년간 연장한 다음 제도 개선을 논의하기로 지난 6월 화물연대와 합의했지만 지난달 말 화물연대가 ‘일몰제 폐지(상시화)와 품목 확대’를 요구하며 총파업에 돌입하자 안전운임제를 폐지하고 원점에서 재검토하는 쪽으로 입장을 선회했다. 정부와 화물연대 간 가장 큰 쟁점이 되는 건 안전운임제의 교통안전 개선 효과 여부이다. 원희룡 국토부 장관은 “안전운임제를 한시적으로 시행해본 결과 제도의 목적이었던 교통안전 효과는 불분명하다”고 밝혔다. 다만 화물연대는 사고 감소 등 유의미한 효과가 있는 것으로 입증됐는데도 정부가 폐지를 밀어붙이고 있다고 반박하며 단식 농성에 들어갔다. 지난 29일 이봉주 화물연대본부 위원장이 건강 악화로 단식을 중단했지만, 공공운수노조의 박해철 수석부위원장이 단식을 이어가고 있다.

원동욱 기자 won.dongwo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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