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영옥의 말과 글] [284] 꽃길과 사막
첫 소설 ‘스타일’을 썼을 때 나는 대형 코치를 타고 미국, 캐나다, 뉴질랜드, 호주 등 9국 청년들과 함께 유럽을 취재 여행 중이었다. 다양한 국적의 청년들을 취재하며 이틀에 한 번 국경을 넘는 일정은 쉽지 않았다. ‘론리 플래닛’에서 일한 베테랑 여행 기자가 퇴사하면 가장 하고 싶은 게 ‘여행’이라고 했던 말이 떠올랐다.
호텔에 들어오면 서툰 영어 때문에 구겨진 마음을 한글로 쓰며 풀었다. 그렇게 매일 소설을 썼고, 3주가 지나 여행이 끝날 무렵 장편이 완성됐다. 나로선 전무후무한 일이었다. 일과가 끝난 9시 이후 호텔 탁자에 앉아 새벽 2~3시까지 시간에 쫓겨 쓴 소설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때 ‘규칙이 엄격할수록 게임은 재밌어진다’는 말의 의미를 깨달았다. 부족한 시간의 밀도를 최대치로 높여 일에 몰입했기 때문이다.
이나 손발이 없는 식물은 외부의 공격을 받을 때 자신을 지키기 위해 수많은 독성 물질을 내뿜는다. 인간은 예부터 이 성분들을 다양한 치료 약제로 활용했다. 다만 독성이라는 ‘해로움’이 ‘약효’로 작용하는 건 전적으로 ‘복용량’에 달려 있다. 가령 우리 몸은 일정 정도 스트레스를 가했을 때 더 강해지는 경향이 있다. 근육을 자극해 강화하는 근력 운동처럼 말이다. 문제는 운동 강도와 시간이다. 쉬지 않고 지나치면 몸을 해치기 때문이다.
빛이 환하면 그림자가 짙다. 입에 쓴 약이 효과가 큰 것처럼 말이다. 마감이나 발표 날짜가 여유로우면 더 좋은 결과를 낼까. 그렇지 않다. 시간, 인원, 날씨, 비용 같은 제약이 오히려 창의성을 촉발할 때도 많다. 별수 없이 우회로를 찾다가 이전에 보지 못했던 뜻밖의 출구를 찾기 때문이다. 타노스 없는 어벤저스를 상상할 수 있을까. 조커 없는 배트맨은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를 죽이지 못하는 건 우리를 더 강하게 한다는 니체의 말을 세심히 헤아려야 한다. 사계절 내내 피어 있는 꽃은 없다. 꽃길만 걷자는 말은 판타지다. 삶에 비가 오지 않는 맑은 날만 이어지면 땅은 사막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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