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겨질 엄마가 걱정이 돼서, 언니는 포기하지 않기로 했다

2022. 12. 30. 2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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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 "절대 잊지 말아주세요" … 10.29 이태원 참사 2차 시민추모제 유가족 발언

[한예섭 기자(ghin2800@pressian.com)]
30일 저녁, 서울 용산구 전쟁기념관 앞에서 '10.29 이태원 참사 2차 시민추모제'가 열렸다. 참사 희생자 유가족들이 추모제 무대에 직접 올라 발언을 남겼다. 떠나간 희생자들과, 진상규명이라는 과제를, 그리고 자신들의 이야기를 "절대 잊지 말아 달라"고 그들은 당부했다. 이름을 밝히지 않고 무대에 오른 한 유가족의 발언 전문을 옮긴다.

안녕하세요. 저는 이번 10.29 참사에서 동생을 잃은 언니입니다.

두 달이 지났는데 저는 여전히 그날에 머물러 있습니다. 사람들은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질 것이다', '동생 몫까지 값지게 열심히 살아야 한다' 하는데, 하나도 위로가 되지 않습니다. 한 순간에 사라진 동생의 부재가 아직도 실감이 나지 않습니다. 잠에서 깨면 모든 게 꿈인 것 같아 동생 방을 다시 한 번 들여다봅니다. 저의 시간은 10월 29일 그날에 여전히 멈춰있는데, 어떻게 미래를 보고 살아갈 수 있을까요.

모두 포기하고 싶은 마음은, 혼자 남겨질 엄마가 걱정돼 수십 번 눈물과 함께 삼켰습니다. 동생을 떠나보낸 뒤 얼마 되지 않아, 걱정돼 열어본 엄마의 휴대폰엔 "굶어죽으면 자살이 아니냐" 묻는 검색 기록이 있었습니다.

'스스로 목숨을 끊으면 동생을 만나지 못할까', '굶어죽으면 다를까' 생각했던 엄마를 보고, 자식을 잃은 슬픔을 감히 제가 어떻게 가늠하겠냐마는, 인생에 오직 가족이 전부였던 저는, 죽기 전 동생의 억울함을 조금이라도 알리고 풀고 싶은 마음으로 말 한 마디라도 외쳐보고자 이 자리에 섰습니다.

▲30일 저녁 서울 용산구 전쟁기념관 앞에서 열린 '10.29 이태원 참사 2차 시민추모제'. 무대에 오른 유가족이 발언하고 있다. 기사는 해당 발언의 전문을 옮겼다. ⓒ프레시안(한예섭)

기대를 가지고 참여했던 국정조사 기간보고를 보고 어이가 없었습니다. 이 참사를 예견하지 못했다고 핑계만 댈 뿐, 아무도 책임지려 하지 않고, 인정하지 않고, 네 탓 쟤 탓, 책임을 떠넘기는 모습을 보고, 조금이나마 기대를 했던 제 자신에 화가 났습니다. 그럴 거면 국정조사를 왜 하나요.

10.29 참사는 막을 수 있었습니다.

(경찰은) 매년 인파 관련 보고서를 작성하고 통제를 했습니다. 심지어 '2020년 핼러윈데이 종합치안대책보고서'의 '안전사고 예방조치 사항'에는 "인구밀집으로 인한 압사"라는 구체적인 단어까지 언급을 했습니다. 허나 왜 올해만 (통제를) 등한시 했는지, 철저히 조사하여야 할 것입니다.

유족 명단을 아직까지 안 갖고 있다는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의) 말은 어불성설입니다.

그럼 유가족을 일대 일로 면담하겠다고 집으로 찾아온 행안부 장관은 대체 어떤 명단을 가지고 (유가족에게) 연락을 하신 겁니까? 왜 전체 유가족이 아닌 개인적으로 접촉하려 하셨습니까? 제가 들은 것만 해도 세 건이 넘습니다. 녹취록, 문자, 증거 다 있습니다. 왜 국정조사에서까지 거짓 증언을 하고 책임을 회피하십니까.

12시간이 넘어서 가족을 찾은 유가족에게 "일단 시신 없이 장례를 치르면 발인 전에 인도를 해주겠다", "부검을 해야만 장례를 치를 수 있다"라고 하며 장례조차 제대로 할 수 없게 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렇게 찾은 시신의 얼굴만 확인하게 하고 몸은 확인하게 하지 못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이 모든 말들은 제가 유가족에게 직접 들은 얘기입니다.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을 겪은 현장 목격자들을, 유가족인데도 국정조사 증인으로 채택해 주지 않고 있다고 합니다. 진상을 규명한다면서, 왜 진실을 막으십니까?

참사 이후, 국가는 유가족·생존자의 트라우마 치료를 책임지겠다면서 한 달이 다되도록 연락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병원을 제 발로 찾아갔습니다. 장례비 신청을 안 하자 장례비 신청을 빨리 하라고 몇 날 며칠 몇 번이고 연락을 해대면서, 다른 유가족들에게 제 연락처를 제발 좀 공유해 달라는 말은 왜 무시하신 겁니까. 두 달이 지난 오늘까지 여전히요. 아직까지 트라우마 치료 관련해 한 번도 연락을 받지 못한 사람도 있습니다. 저는 그날도 지금도 국가의 부재를 실감합니다.

지금이라도 국정조사를 제대로 실시하십시오. 국정조사는 정치적으로 서로를 공격하기 위한 자리가 아닙니다. 진심을 가지고 대하십시오.

또한 여태껏 허비해 버린 국정조사 기간을 반드시 연장해 주시기 바랍니다.

책임 회피, 떠넘기기, 거짓 허위 위증이 아니라, 다시는 이런 참사가 일어나지 않도록 온 진심을 다해 책임자 규명에 힘쓰십시오. 아무도 물러나지 않고 책임지지 않는 상황에서 어떻게 재발을 방지하겠다는 겁니까.

▲30일 '10.29 이태원 참사 2차 시민추모제'에서 희생자 유가족들이 촛불을 들고 묵념하고 있다. ⓒ프레시안(한예섭)

이 참사는 남의 일이 아닙니다. 제 동생은 대한민국을 일상과 함께 살아가던 평범한 청년이자, 한 가정의 막내딸이자, 어딜 가나 사랑을 받는 사랑스러운 아이였습니다.

희생자 중엔 나름의 삶과 목표를 가지고 살아가던 청년들뿐만 아니라, 어린 자녀를 둔 어머니, 소중한 가정을 이끌어가던 아버지가 있습니다. 내 친구가, 내 동료가, 내 부모가 자식이 친척이 그리고 나 자신이 그 참사의 희생자가 되었을 수도 있습니다. 저는 희생자들 한 분 한 분의 인생을 보고 들었습니다. 어느 하나 소중하지 않은 삶이 없었습니다.

2차 가해를 주도하고 있는 사람들을 방치하지 마십시오. 이 상황을 진심으로 대해주십시오. 진실로써 대하십시오. 마음 놓고 안전하게 살아갈 일상을 만드십시오. 아이를 낳으라고만 하지 말고, 사랑하는 아이들을 사랑하는 아이들을 청년들을, 그리고 국민들의 안전을 먼저 생각하십시오.

살면서 한 번도 꿈에 나오지 않던 동생이 그날 이후로는 매일 나와 울고 있습니다. 어린 동생은 영문도 모를 사고에 희생된 것이 얼마나 황당하고 억울할지, 조금도 가늠이 되지 않습니다.

동생이 두려움 속에 그렇게도 쉬고 싶어 했던 그 숨을, 저는 지금 너무나도 당연하게 쉬고 있기 때문에 하루하루를 죄책감에 살아갑니다.

동생을 지켜주지 못한 언니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는 현실이 너무 힘들지만, 제 동생과 같은 억울한 죽음이 다시는 되풀이 되지 않도록 끝까지 외칠 것입니다.

기억해 주세요. 절대 잊지 말아주세요. 함께해 주세요.

그리고 마지막으로 제 동생 휴대폰을 가져가신 분께 한 마디 올리겠습니다. 핑크색 바탕에 흰색 토끼 캐릭터가 그려진 아이폰, 주워서 다시 연락해주시겠다고 했으면서 왜 전화를 끊으시고 전화기를 꺼놓고 있나요.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제 동생 휴대폰, 꼭 돌려주시기 바랍니다.

지금까지 제 말을 간청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한예섭 기자(ghin2800@press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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