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경란의얇은소설] 아침에 15분, 밤에 15분
살아있음을 느끼는 시간 만들어보길
제프리 유제니디스, <고음악>(‘불평꾼들’에 수록, 서창렬 옮김, 현대문학)
이들의 집에는 “조그맣고 형태가 비뚤어진 방”이 하나 있다. 난방비를 아끼느라 추운 그 방에는 바닥에 클라비코드가 놓여 있다. 로드니만이 ‘음악실’이라고 부르는 성역. 소설이 시작되는 이 날, 퇴근 후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로드니가 음악실로 들어가려 하는데 집에서 봉제 인형 쥐를 만들어 파는 아내 리베카가 말한다. 전화가 오면 받지 말라고. 벌이가 거의 없이 살았던 삼 년 전 로드니의 마흔 살 생일에 리베카는 클라비코드를 구매한 계약금 영수증을 남편에게 선물로 주었다. 한때 같이 음악을 전공했던 아내는 더 잘 알았다. 자신의 아프고 의욕 없는 남편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삶은 뜻대로 흘러가지 않고 매달 클라비코드 할부금을 내는 건 어려운 일이 돼버렸다. 게다가 이자율도 너무 올라버린 지금 그들은 미수금 대행사 직원들의 독촉과 협박 전화에 시달리는 중이다. 언제 누가 나타나 클라비코드를 회수해 가버릴지 알 수 없는 상황.
“로드니는 계속해서 클라비코드를 아침에 15분, 밤에 15분 동안 연주했다.” 오늘은 더 열심히 했다. 그는 자신이 성실하기는 하지만 평범한 수준의 연주자일 뿐이며 이렇게 아침과 저녁에 시간을 쪼개 연습한다고 해도 더 나아지지 않을 거라는 사실을 안다. 그러면서도 아내에게는 자신이 믿는 말을 한다. 연습하면 완벽해진다고. 아이들이 잠든 깊은 밤, 아내는 침실 뒤쪽의 공간에서 전자레인지에 돌리면 향긋한 냄새가 나는 봉제 쥐 인형을 만들고 로드니는 어떤 음을 냈는지 몰라 인생처럼 느껴지는 원곡의 소리를 재현하려 애쓰며 클라비코드를 연주한다. 그리고 그는 얼결에 전화를 받고 만다.
지금도 문득문득 나는 로드니가 클라비코드를 소유하고 있기를, 매일 아침과 밤에 15분씩만이라도 그 악기를 연주하며 살아가고 있기를 바란다. 리베카의 봉제 쥐 인형은 좋은 냄새를 풍기며 쉴 새 없이 팔려나가기도. 그에게는 정신적 생계(生計)를 위해 자신만의 방에서 클라비코드를 연주할 수 있는 15분씩의 시간이 필요할 테니까. 내가 ‘고음악’을 자주 떠올리는 이유는 어쩌면 이 아침과 밤의 15분 때문일지도 모른다. 생계는 막연하고 꾸리기 어려워 때로 생계를 이어가기 위해서는 대안의 시간이 필요하기도 하다. 원치 않는 일로 생계를 꾸리고 있다면 더 그렇지 않을까. 그게 아니더라도 날마다 아침과 밤에 15분씩 정말로 좋아해서 노력하고 싶은 일, 더 연습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새해 첫날을 앞둔 오늘 바로 그러한, 진짜 살아 있다고 느낄 수 있으며 스스로가 만들 수 있는 15분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 본다.
조경란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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