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문화] 새해를 항아리에 담는 법
누구에게나 평등하게 가 닿아
각자 해를 담는 방법은 기다림뿐
기적은 모두에게 찾아오기 마련
몇 해 전 1월1일 새벽에 파주의 심학산으로 일출을 보러 갔다. 높이가 194m인 나지막한 산이지만 정상에서 멀리 임진강이 보인다. 이름이 심학(尋鶴), ‘학을 찾는 산’이라는 뜻인데, 조선 숙종이 궁궐에서 아끼며 키우던 학 두 마리를 놓쳤는데 이곳에서 찾았기에 지어진 이름이라 한다. 일출을 보기 위해 동해까지 가긴 너무 멀고, 가족이 함께 움직이는 데 좀 편할 거 같아서 선택한 곳이다. 그런데 같은 마음을 가진 사람이 참 많았다. 전날 내린 눈으로 길은 미끄러웠는데, 인파가 몰리면서 사람들의 까만 뒷머리만 보였다. 우리는 학을 찾는 게 아니라 신년 카드에 그 학의 배경이 될 붉은 해를 기다렸다.
동양의 태양 숭배 사상은 천문(天文)에 종교적 의미를 부여하고 숭배하면서 시작되었다. 우리 민족도 태양을 하느님으로 인식하고 우리가 이 하느님의 자손이라 믿었다. 인디언과 인디오들도 태양을 창조신으로 숭배했다. 태양의 윗가장자리가 지평선이나 수평선에 접하는 이 순간을 간절히 기다리는 것은 우리 무의식에 이런 원형이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겠다. 이렇듯 해맞이는 한 해의 소원을 고하면서 스스로를 향해 다짐할 수 있는 시간이다. 해돋이의 첫 순간이 그날의 날씨와 잘 맞아떨어지면 유독 큰 해를 맞이할 수 있다. 새해 첫날의 기상에 관심을 가지는 것도 이 때문이다. 태양은 성난 동물의 송곳니처럼 깨진 몸의 한 조각부터 들어 보여주다가 마침내 세상에서 가장 둥글고 가장 뜨겁고 가장 최초의 것인 양 가볍게 떠오르는 것이다. 그 해는 누구에게나 오직 하나의 해가 되어 이 지상의 모든 어둠을 가볍게 내리누른다.
“아침을 담는 항아리는/ 천 개의 색을 모으는 중이다/ 무채색 주둥이까지 포함하니까/ 구부리고 번지는 밀물까지 돌과 함께 물렁해져서/ 어딘가 스며들어야 하는 해안선이 되었다” 해를 기다리는 마음은 사람의 일만은 아닌 듯이 보인다. 송재학 시인의 ‘아침이 부탁했다, 결혼식을’이라는 이 시의 첫 구절에도 해를 기다리는 항아리가 있다. 바다 저 멀리서 해가 떠오르고 그 찬란한 빛살이 해변의 작은 오두막집 항아리에 와닿는다. 마침내 그 눈부신 아침 햇빛은 무채색의 항아리에 부딪혀 천 개의 색으로 쪼개지고 그 빛은 구부려지고 번져서 이 세계의 윤곽을 확정한다. 얼마나 숭고한 일출의 시간인가.
빨리 뜨거워지려는 우리 마음이 1월1일의 해를 간절히 기다리게 하지만, 그 해는 누구에게나 평등하게 가닿는다. 각자의 해를 항아리에 담는 방법은 오직 기다림이다. 열정에 달궈진 날이 좀 더뎌 오더라도 기적은 우리 모두에게 찾아오기 마련이므로 우직한 바위의 마음으로 새해를 맞아본다. “황새는 날아서/ 말은 뛰어서/ 거북이는 걸어서/ 달팽이는 기어서/ 굼벵이는 굴렀는데/ 한날한시 새해 첫날에 도착했다// 바위는 앉은 채로 도착해 있었다”(반칠환의 시 ‘새해 첫 기적’ 전문)
천수호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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