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방해양중국은 애국주의 중화가 아닌 다국적 상인·이민노동자들이 만들어냈다[김유익의 광저우 책갈피]

기자 2022. 12. 30. 2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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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인 개구리’가 본 중국 문화
<조석도(潮汐圖)>
린자오(林棹)

홍콩의 오래된 거리 셩완(上環)에는 지금도 샥스핀이나 제비집 같은 물건을 거래하는 약재상과 건어물 가게가 많다. 예전 화인 무역상들이 남북의 물건을 교역하던 ‘남박홍/난베이항(南北行)’의 흔적이다. 여기서 북은 광둥성 북쪽의 중국을 의미하고, 남은 동남아시아를 칭하는 난양(南洋) 등을 의미한다. 장강이나 화이허(淮河)를 경계로 하는 대륙의 “남북방 개념”은 푸젠, 광둥, 광시, 하이난, 타이완의 항구들을 점으로 이으며 남진하고 서진하는 ‘남방해양중국’과는 무관하다.

올해 중국 신예작가들의 등용문 ‘이상국(理想國) 문학상’은 광둥 출신 80허우 여성 작가 린자오에게 돌아갔다. 그의 두 번째 장편소설 <조석도>의 주인공은 19세기 중반 광저우, 마카우, 런던에 살았던 허구적 존재 ‘거인 개구리’이다. 돼지만큼 큰 이 개구리는 삼켜 먹는 방식으로 사물을 인지한다. 탄카(tanka)라 불리는 주강(珠江)의 보트피플 무녀, 스코틀랜드에서 온 동인도공사 간부이자 박물학자 H, 혼혈 흑인 디에고, 은퇴한 노교수에게 차례로 양육되며 만난 이야기꾼들을 통해 세상의 온갖 기담을 보고 듣는다. 상하이 출신의 중국문학사 연구자 쉬즈둥(許子東)은 물과 뭍을 오가며 사는 양서류인 이 ‘귀태(鬼胎)’ 개구리가 중국의 영토와 문화, 중국인 어머니, 서양인 아버지와 그 가치관의 충돌 속에 태어난, 홍콩, 마카오로 상징되는 ‘동방의 근대’를 은유한다고 해석한다.

올해 심사위원장을 맡은 하버드대 중국문학사 연구자 왕더웨이(David Der-wei WANG) 교수는 일찍부터 화어(華語·Sinophone), 마화(馬華·말레이시아 및 싱가포르), 남방 문학에 주목해왔다. 대륙을 넘어서는 시야를 갖추게 된 것은 그가 “남방의 남방, 타이완 출신”이라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 그는 ‘남방’이 고정된 지역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이들 지역과 시대를 살았던 이들의 관계 속에서 폭넓게 정의될 수 있다고 말한다.

베이징이나 상하이의 주류 지식인들에게 중화는 대륙 남북의 농경과 유목 문명의 조합으로 설명될 뿐이다. 화어권을 넘나드는 홍콩의 문화평론가 량원다오(梁文道)는 <조석도>에 각별한 애착을 보인다. 국민국가가 형성되기 전 해상 실크로드를 오가던 다양한 인종, 그들이 사용한 언어와 방언들, 다기한 생활습관을 가진 상인과 이민노동자들이 만들어간 남방 해양 중국의 풍토, 문화와 역사가 후기 식민주의 이론의 젠체함 없이 유려한 언어로 묘사돼 있기 때문이다.

“모국에 돌아와 학교를 세우는 등 근대민족국가 만들기의 영웅”으로 칭송되는 화상들의 진짜 동기도 기독교 전파와 애향심이 더 컸다고 한다.

그에 따르면 이 작품은 세 단계의 언어로 정교하게 구성된다. 근현대 광둥어 계열 방언들, 만다린, 그리고 외국어를 흡수한 번역투 중국어이다. 마화 문학이 대륙에 존재하지 않는 열대우림을 묘사하기 위해 새로운 중국어를 만들어 냈듯이 이 작품도 또 다른 전범을 제시한다.

새로운 언어가 애국주의로 “찌그러든 중화”가 아니라 남방으로 열려 있는 “제3의 차이나”를 창조한다.

김유익 재중문화교류 코디네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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