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무에 빠진 지구인, 축구로 희망 찾기[책과 삶]
켄
오수완 지음
문학과지성사 | 1만4000원 | 222쪽
갑자기 퍼진 ‘허무’에 모든 지구인이 잠식된다. 사람들은 표정도, 꿈도, 의욕도 없이 무기력하게 살아간다. 또는 그조차도 포기한다. 재잘거리던 아홉 살 소녀도 “암 선고를 받은 여든 살 노인처럼” 되어버리는, 맥없는 공허다.
냉소에 빠진 지구에서 소설가인 켄은 축구에 관한 꿈을 세 번이나 꾼다. 패스 하나에도 기뻐하고 슬퍼하고 꿈을 가졌던 기억이다. 그 광경을 본 순간 켄은 예전으로 되돌아갈 수 없다. 켄은 낡은 축구공을 들고 세계의 끝으로 향한다. 축구의 흔적을 찾기 위해. 또는 가슴의 명령에 따르기 위해. 세상의 모든 생기가 꺼져버린 상황에서 축구는 “하찮은 것”이지만 “유일한 것”이다.
켄은 수많은 사람들을 만난다. 낡아서 쓸모없어진 축구공에게도 정성껏 장례를 치러 주는 ‘축구공의 장인’은 작별의 민요 ‘올드 랭 사인’을 부른다. 어떤 노인은 옛날 한 축구경기에서 자신이 얼마나 활약했는지 흥분해서 떠든다. 아주 짧은 활기 끝에 노인은 죽으면서 생각한다. “다시 한번 그 순간으로 돌아갈 수 있다면.” ‘긴 바지 자매’의 안네는 축구를 사랑했지만 여자라는 이유로 마음껏 공을 차지 못했던 이야기를 들려준다. 안네는 켄에게 말한다. “우리의 이야기도 당신이 세계의 끝에 데려가주면 좋겠어.”
켄은 그들의 이야기를 드리블한다. 그 드리블은 한국 신화 속 바리공주를 닮았다. 힘없고 여린 존재들, 무너지거나 부서져버린 이들의 소망을 세계의 끝까지 데려간 바리공주처럼 켄은 달린다. 마침내 도착한 그곳에서 켄은 춤추는 거인을 만난다. 작가는 묻는다. 싸늘한 세계에서 꿈을 갖는 일의 의미를. 하찮고 쓸모없는 것일지라도 온 마음으로 사랑해버리는 일의 아름다움을. 어쩌면 그야말로 가장 중요한, 그 무엇일지도 모른다.
조해람 기자 lenno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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