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착카메라] '잘려 나간' 비자림로…'가장 아름다운 도로' 역사 속으로
오늘(30일) 밀착카메라는 제주 비자림으로 가보겠습니다. 20년 전, 전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로로 뽑혔지만 4년 전, 도로를 넓히겠다면서 나무를 자르다 반대에 부딪혀 세 번이나 공사가 중단됐습니다. 그리고 지난주에 다시 벌목을 시작해서 남은 천 그루를 다 베어냈는데, 갈등이 여전합니다.
이예원 기자입니다.
[기자]
이른 아침부터 굴삭기가 바쁘게 움직이고 전기톱 소리가 계속 들리고 있습니다.
제 뒤로 커다란 삼나무를 베어내는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제주 비자림로 2.94km 구간을 왕복 2차선에서 4차선으로 넓히기 위해서입니다.
비자림으로 가는 도로 비자림로는 1970년대 심은 삼나무가 빽빽이 늘어선 경치로 유명합니다.
2002년엔 당시 건설교통부가 전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로로 선정했습니다.
제 앞에 있는 게 방금 잘라낸 나무입니다.
앞으로 잘라낼 나무는 많이 남지 않았고요, 작업에는 더 속도를 내고 있는 상황입니다.
지난 20일부터 29일까지 삼나무와 소나무 총 1000그루 정도가 베어졌습니다.
2018년 첫 삽을 뜬 후 경관 훼손, 환경 파괴 논란으로 세 번 중단됐다가 이제야 벌목이 모두 끝난 겁니다.
왕복 2차선 도로 옆으로 진흙에는 공사 차량이 지나간 흔적이 남아있습니다.
그리고 더 안쪽으로 와보니 제 주변이 온통 눈으로 뒤덮여있는데요.
최근 제주에 내린 폭설이 미처 녹지 않은 겁니다.
그런데 이 눈을 걷어 내보면, 여기 쌓여있는 게 전부 잘려 나간 나무입니다.
제주도는 지난 4년간 베어 낸 나무 수에 대해선 답하지 않고 있습니다.
[제주도청 관계자 : 소송이 진행 중이라서 이 부분에 대해선 얘기하는 게 안 맞다…]
공사현장 앞에선 환경 단체가 피켓을 들고 시위를 하고 있습니다.
동식물이 살고 있는 숲이니만큼 당장 공사를 중단하라는 내용입니다.
환경단체는 지난해 12월, 공사를 중단하라는 소송을 내 재판 중입니다.
법정 보호종이 서식하는데 생태 조사도 제대로 안 했다는 겁니다.
공사 집행 정지 신청도 냈지만, 법원은 긴급한 이유가 없다며 기각했습니다.
[김순애/비자림로 시민모임 : (선고 전이라) 공사를 중지해야 한다는 명분 자체가 없기 때문에 제주도는 그 틈에 공사를 빨리빨리…]
제주도는 그동안 환경에 주는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한 노력을 해왔단 입장입니다.
공사 도로 폭을 24m에서 16.5m로 줄였고, 남는 구역엔 팽나무 등을 옮겨 심었단 겁니다.
살아남은 나무와 잘려 나간 나무 사이엔 동물보호울타리가 생겼습니다.
동물 서식지였던 이곳이 이제 도로가 되니, 동물들이 습관처럼 넘어오지 못하게 막아둔 겁니다.
일부 주민들은 도로가 넓어지면 안전해질 거라며 환영합니다.
[김경희/제주 구좌읍 송당리 : 저는 여기서 태어났거든요. 저 길을 왔다 갔다 하면서 몇 번 목숨을 잃을 뻔했어요. (비, 눈 때문에) 차가 돌아버려가지고.]
[김영남/제주 구좌읍 송당리 신임이장 : 송당리 주민들의 숙원사업이었고 지금이라도 시작하는 건 아주 잘하는 일…]
확장 사업은 2024년 마칠 계획이지만, 아직 갈등이 깊습니다.
[이성홍/제주 서귀포시 가시리 : 2차선 도로로 내면 편하겠죠. 그렇다고 계속 개발하면 끝내 제주도에 남아 나는 게 뭐가 있겠습니까. '청정 제주'라는 말은 더는 제주에 어울리는 말이 아니에요.]
재판은 남았고, 찬반은 여전합니다.
한 가지 분명한 건 전국에서 가장 아름다웠던 도로는 20년 만에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는 겁니다.
(작가 : 강은혜 / 인턴기자 : 이새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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