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경제학계 거목 조순·신자유주의 대안 찾기 강조한 정태인[2022 우리 곁을 떠난 인물들]

정대연·이윤주 기자 2022. 12. 30. 2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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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경제
삶의 지혜와 통찰력을 전하던 학자와 민주 열사의 어머니, 독재에 맞선 인권변호사 등 2022년에도 많은 인사들이 세상을 떠났다. 그들은 남은 이들에게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숙제를 남겼다. 올해의 ‘진별’들을 되돌아본다.
조순

한국 경제학계 거목이자 한나라당 초대 총재를 지낸 조순 서울대 명예교수가 6월23일 향년 94세로 타계했다. 고인은 교수뿐 아니라 관료·정치인으로 현대사에 족적을 남겼다. 노태우 정부에서 경제부총리·한국은행 총재를 지냈다. 김대중 전 대통령 권유로 정계에 입문해 1995년 첫 민선 서울시장에 당선됐다. 이후 한나라당(현 국민의힘) 초대 총재·국회의원을 역임했다.

보수 원로 김동길 연세대 명예교수가 10월4일 향년 94세로 세상을 떠났다. 고인은 민청학련·김대중 내란음모 사건에 연루돼 고초를 겪었다. 이후 보수 쪽으로 기울어 1992년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이 창당한 통일국민당 소속 국회의원에 당선됐다. 신민당·자유민주연합에서도 정치 활동을 했다.

최병렬 전 한나라당 대표가 12월2일 향년 84세로 별세했다. 고인은 조선일보 기자 출신으로, 노태우 정부 청와대 정무수석·문화공보부 및 노동부 장관·서울시장, 4선 국회의원을 지냈다. 2004년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소추안 가결을 주도한 뒤 역풍을 맞고 정계 은퇴했다.

김원웅 전 광복회장이 10월30일 향년 78세를 일기로 생을 마감했다. 고인은 1972년 공화당 사무처 공채로 정계 입문해 1990년 노무현 전 대통령(당시 국회의원)과 꼬마민주당을 창당했다. 민주당·한나라당·열린우리당 소속 국회의원을 지냈다. 광복회 운영 과정에서 비리 혐의가 드러나 올해 초 광복회장직을 사퇴했다.

정태인

경제학계에서는 진보적 가치를 내세워 온 학자들이 잇따라 우리 곁을 떠났다. 노무현 정부 시절 청와대 국민경제비서관을 지낸 진보 경제학자 정태인씨가 투병 끝에 10월21일 향년 62세로 세상을 떠났다.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 칼폴라니사회경제연구소 등 민간연구단체에서 주로 활동하면서, 스스로를 ‘독립연구자’라 불렀다. 그는 2002년 노무현 정부 출범 당시 대통령직인수위원회 경제1분과 위원을 지냈다. 종합부동산세 도입을 지지했지만, 노무현 정부가 추진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체결에는 반대했다. 주류 경제학을 비판하며 한국 경제가 거대한 생태적 전환 속에서 신자유주의의 대안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표적인 진보 원로 경제학자인 학현(學峴) 변형윤 서울대 명예교수가 12월25일 향년 95세로 별세했다. 1955년부터 모교 강단에 서기 시작해 1992년까지 후학을 양성했다. 그는 인간 중심의 경제학을 내세우면서 소득 재분배와 균형적 경제발전을 강조했다. 고인은 ‘행동하는 지식인’으로도 시대에 울림을 줬다. 1960년 교수 신분으로 4·19혁명에 참여하고, 1967년 박정희 대통령이 참석한 ‘제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 평가대회에서 “부익부 빈익빈이 심화되고 있다”고 직언하기도 했다. 1980년 ‘서울의 봄’ 당시에는 서울대교수협의회 회장으로서 시국선언에 앞장섰다가 4년 동안 해직됐다. 그가 세운 ‘학현연구실’은 훗날 ‘서울사회경제연구소’로 확장되면서 한국 사회의 진보적, 개혁적 경제학자들의 학문적 요람으로 자리 잡았다. 학현학파로 분류되는 학자들이 노무현·문재인 정부에서 경제 부처에 기용됐다.

정대연·이윤주 기자 hoa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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