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의 지성 이어령·한국영화 별 강수연·국민 MC 송해[2022 우리 곁을 떠난 인물들]
삶의 지혜와 통찰력을 전하던 학자와 민주 열사의 어머니, 독재에 맞선 인권변호사 등 2022년에도 많은 인사들이 세상을 떠났다. 그들은 남은 이들에게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숙제를 남겼다. 올해의 ‘진별’들을 되돌아본다.
‘우리 시대의 지성’으로 불리던 이어령 초대 문화부 장관이 2월26일 89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고인은 1956년 ‘우상의 파괴’를 한국일보에 발표해 파란을 일으키며 평단에 데뷔했다. 문단의 거목들을 신랄하게 질타하며 ‘저항 문학’의 이론적 기수가 된 그는 경향신문 등 여러 언론사의 논설위원을 지내며 당대 최고 논객으로 활동했다. 이후 평론가와 학자로서의 삶을 이어가며 <흙 속에 바람 속에> <둥지 속의 날개> 등 수많은 저작을 남겼다. 1988년 서울 올림픽의 개회식과 폐회식의 기획을 맡아 냉전의 종식을 상징하는 ‘벽을 넘어서’라는 구호를 만들었다. 1990년 출범한 문화부의 초대 장관을 맡기도 했다.
한국의 추상미술을 개척한 김병기 화백이 3월1일 106세의 나이로 별세했다. 1916년 평양에서 태어난 고인은 도쿄 아방가르드양화연구소에서 이중섭, 김환기 등과 수학했고, 훗날 한국 추상미술 1세대를 이뤘다. 1945년 해방과 함께 북조선문화예술총동맹 산하 미술동맹 서기장을 지내다 1947년 월남했다. 1965년 록펠러재단 지원으로 미국의 미술관과 교육기관을 탐방한 뒤 미국에 정착했다. 한국과 미국을 오가며 전시회를 열었으며 2014년에는 회고전을 앞두고 귀국했다. 2019년 103세 생일을 맞아 개인전을 열 정도로 활발하게 활동했다.
‘한국 영화의 별’ 강수연 배우가 5월7일 향년 56세로 타계했다. 고인은 4세에 데뷔해 50년 넘게 배우로 활동했다. 1983년 드라마 <고교생 일기>에 출연해 하이틴 스타로 떠올랐다. 1987년 베니스국제영화제에서 동아시아 배우 최초로 여우주연상을 수상하고 1989년에는 모스크바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수상하는 등 해외에서도 주목받았다. 국내에서도 상업 영화와 작가 감독의 영화를 오가며 당대 최고의 영화배우로 자리매김했다. 2001년에는 드라마 <여인천하>에 주인공 정난정 역할로 출연해 인기를 누리기도 했다. 2014년부터 3년간 부산국제영화제 공동집행위원장으로 활동했다. 내년 1월 공개 예정인 연상호 감독의 신작 <정이>의 촬영을 마치고 영화 복귀를 앞두고 있었다.
‘타는 목마름으로’ ‘오적’ 등 저항시를 쓴 김지하 시인이 5월8일 81세의 나이로 별세했다. 1969년 시 전문지 ‘시인’에 ‘황톳길’ 등을 발표하며 데뷔한 고인은 사회 현실을 날카롭게 풍자하며 1970년대 대표적인 저항 시인으로 활동했다. 권력층의 부정부패를 풍자한 담시 ‘오적’과 민주주의의 열망을 담은 ‘타는 목마름으로’ 등이 대표작이다. 1990년대 이후 ‘변절’ 논란에 휩싸이기도 했다. 1991년 민주화 투쟁 과정에서 대학생들의 분신자살이 이어지자 ‘죽음의 굿판을 걷어치워라’는 제목의 칼럼을 썼다. 2012년 대선 때 박근혜 당시 새누리당 후보를 지지하기도 했다. 2018년 시집 <흰그늘>과 산문집 <우주생명학>을 내고 절필을 선언했다. ‘지하’는 필명으로, ‘지하에서 활동한다’는 뜻을 담았다.
한평생 대중과 희로애락을 함께한 ‘국민 MC’ 송해씨가 95세를 일기로 6월8일 생을 마감했다. 1927년 황해도에서 태어나 혈혈단신 남쪽으로 내려온 그는 1955년 ‘창공악극단’에서 가수와 MC로 활동하며 연예계 활동을 시작했다. MBC <웃으면 복이와요> 등에 코미디언으로 출연하고 KBS 라디오 <가로수를 누비며>를 17년간 진행했다. 1988년부터 MC를 맡은 <전국노래자랑>이 대표작이다. 고인은 30년 넘게 전국을 누비며 어린이부터 100세 노인까지 1000만명이 넘는 출연자들과 호흡했다. 고인은 자신처럼 사람을 좋아하고 많이 아는 사람이 “세상 최고 부자”라며 “남을 즐겁게 하는 ‘딴따라’가 내 천직이다”라고 말하곤 했다.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의 조세희 작가는 성탄절인 12월25일 향년 80세를 일기로 세상을 떴다. 대학 재학 중이던 1965년 경향신문 신춘문예로 데뷔했고, 오랜 침묵 끝에 1978년 대표작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을 출간했다. 유신 말기 도시 빈민의 고된 삶을 사실적이면서도 환상적인 방식으로 그려낸 이 소설은 문학적 가치를 인정받은 것은 물론 상업적 성공까지 거뒀다. 고인은 “더 이상 <난쏘공>이 필요하지 않은 시대가 왔으면 한다”고 했지만, 그 바람은 아직 이뤄지지 않았다.
오경민 기자 5k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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