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밋빛 기대로 시작했건만…‘3고’ 엎친 데 공급망 불안 덮쳐[2022 한국 경제 수놓은 숫자들]

경제부 기자 2022. 12. 30. 2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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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한국 경제는 1년 내내 고물가·고환율·고금리 등 3고에 시달렸다. 연말이면 코로나19가 종식돼 일상으로 돌아올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는 물거품이 됐고, 우크라이나 사태가 장기화되면서 오히려 복합위기 가능성이 커졌다. 미·중 간 패권경쟁이 본격화되면서 글로벌 공급망도 재편이 불가피해졌다. 올 한 해 한국 경제를 숫자로 돌아본다.

■반도체 기술 역사에 그은 한 획, 경쟁인가 갈등인가

0.000003㎜
윤석열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난 5월20일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에서 관계자의 설명을 듣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지난 5월20일 경기 평택의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을 찾은 윤석열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방명록 대신 둥근 웨이퍼 기판에 서명을 남겼다. 삼성전자가 세계 최초로 개발한 3㎚(나노미터) 반도체 원판이다. 웨이퍼 한 장에 새겨진 반도체 수백 개의 회로 선폭이 3나노, 즉 0.000003㎜ 수준이란 뜻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 작은 칩이 인류의 기술을 다음 장으로 이끄는 열쇠가 될 것”이라고 했다. ‘누가 먼저 선폭 0.000003㎜ 반도체를 양산할 것인가.’ 삼성전자와 대만 TSMC는 이를 두고 올 한 해 치열한 경쟁을 벌였다. 삼성전자는 바이든 대통령 방한 한 달 뒤 3나노 양산에 성공하면서 TSMC와의 경쟁에서 한발 앞서게 됐다. TSMC도 3나노 양산에 성공, 타이난의 팹18에서 29일 양산식을 열었다. 새해에는 누가 먼저 3나노 공정의 수율을 안정화해 고객사 물량을 확보할 것인가가 관건이다.

‘선폭 0.000003㎜’는 글로벌 공급망에서 미국의 위상을 상징하는 숫자이기도 하다. 삼성전자가 사용한 기술과 장비 대부분이 미국에서 왔다. 공급망을 재편하려는 미국은 올해 설계 소프트웨어, 첨단 장비의 중국 수출을 금지하는 등 제재를 확대하고 있다. ‘K반도체’가 미·중 갈등의 칼날 위에 위태롭게 선 모습이다.

■유동성 잔치는 끝났다…고금리로 돌아온 ‘거품’

3.25%
서울 시내 한 시중은행 외벽에 최고 연 10%에 육박하는 신용대출 금리 안내문이 붙어 있다. 문재원 기자

올해는 고금리의 힘이 경제 전반에 맹위를 떨친 한 해로 기록될 것으로 전망된다. 코로나19 발생 이후 크게 부풀었던 유동성 파티가 끝나고, 물가가 예상을 뛰어넘는 수준으로 급등하자 한국을 비롯해 주요국 중앙은행들이 일제히 가파른 긴축에 나섰기 때문이다.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는 연초 연 1.00%였던 기준금리를 지난달 3.25%까지 올렸다. 금통위는 올 상반기 0.25%포인트씩 점진적으로 금리를 올렸고, 하반기 들어서는 고물가와 달러 강세에 따른 원·달러 환율 급등까지 겹치면서 유례없는 ‘빅스텝’(한번에 기준금리 0.5%포인트 인상)을 7·10월 두 차례 단행했다.

금리정책을 흔히 ‘무딘 칼’이나 ‘항공모함’에 비교하는데, 이는 금리 방향 전환의 파급효과가 그만큼 크고 무차별적이기 때문이다. 실제 올 한 해는 유례없는 속도로 기준금리가 오르면서 자영업자·한계기업 등 취약계층의 상환 부담이 급증하고, 레고랜드 사태 같은 자금경색 문제가 돌출되기도 했다. 이제 관심은 금리 인상 사이클이 마무리 국면에 접어들면서 언제쯤 아래쪽으로 방향을 바꿀지 여부로 향하고 있다. 금리 인상은 멈추더라도 고금리를 견뎌야 하는 시간은 꽤 길어질 수 있다는 것이 대체적 관측이다.

■한 끼 밥값에도 떨리는 물가…소득만 빼고 다 올랐네

6.3%
어운선 통계청 경제동향통계심의관이 30일 정부세종청사에서 2022년 소비자물가 동향을 설명하고 있다. 연합뉴스

2022년은 인플레이션이 어디까지 공포스러워질 수 있는지, ‘물가 상승’의 매운맛을 보여준 한 해였다. 소득이 정체된 상황에서 갑자기 몰아친 물가 급등은 그 자체만으로 삶의 질을 하락시켰다. 여기에 인플레이션 증상을 해소하기 위한 치료제인 금리 인상은 개인과 기업 모두에 물가 급등보다 더 큰 충격을 안겨줬다.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3월과 4월 4%대에 이어 5월(5.4%)에는 5%대로 올라서더니, 7월 6.3%로 치솟으며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때인 1998년 11월(6.8%)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을 보였다. 코로나19 폐쇄로 글로벌 공급망 곳곳에 구멍이 난 상황에서 전 세계적인 리오프닝(경제활동 재개)이 수요에 불을 댕겼고,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까지 겹치면서 국제 유가, 곡물, 식료품, 공산품, 서비스 가격 가릴 것 없이 모조리 폭등했다.

상반기 휘발유 가격이 ℓ당 2000원을 돌파하게 한 국제 원유값 급등을 시작으로, 수입 사료값 급등에 따른 축산물 가격 인상, 팜유 파동 가공식품, 가뭄 여파 농산물 등 각종 품목들이 1년 내내 돌아가며 물가를 자극했다. 짜장면, 갈비탕, 칼국수 등 외식 가격이 40년 만에 가장 많이 오르면서 직장인들이 런치플레이션에 비명을 질렀다.

■휘발유값 훌쩍 뛰어넘은 경유값, 속 터지는 화물차

236.1원
지난 6월12일 서울 시내 한 주유소에서 탑승자가 껑충 뛴 석유제품 가격표를 바라보고 있다. 권도현 기자

경유 가격이 휘발유를 앞질렀다. 올해 11월28일에는 휘발유와 가격 차가 236.1원까지 벌어졌다. 국내 경유 가격이 휘발유 가격을 웃돈 것은 2008년 6월 이후 약 14년 만이다.

한국석유공사 유가정보시스템 오피넷을 보면 올해 초만 하더라도 휘발유가 경유보다 180원가량 비쌌다. 그러나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유럽연합(EU)이 러시아산 경유 수입을 줄이면서 경유 가격이 꿈틀대기 시작했다. 여기에 러시아 때문에 액화천연가스(LNG) 가격까지 치솟자 이를 대체하기 위한 경유 수요가 또 늘면서 수급난은 가중됐다. 휘발유는 99%가 승용차에 쓰이지만 경유는 화물차량이나 버스뿐 아니라 굴삭기, 레미콘 등 산업 전반에 쓰여 수요가 많다. 국제시장에서는 경유가 줄곧 휘발유보다 비쌌다.

정부의 유류세 인하 조치도 역전 현상을 부추겼다. 정부가 유류세를 37% 낮추면서 휘발유는 약 304원, 경유는 약 212원 세금이 줄었다. 휘발유에 부과되는 세금이 더 큰 만큼 같은 비율로 낮추면 그 혜택은 휘발유가 더 큰 구조이다. 경유 가격이 오르면서 경유차는 찬밥 신세가 됐다. 올해 1~11월 국내 경유승용차 판매량은 19.4% 감소한 32만681대에 그쳤다.

■‘10만전자’ 바라보던 개미들 허리 꺾은 ‘국민주’

51,800원
코스피가 2년2개월 만에 2200선 아래로 떨어졌던 지난 9월28일 서울 중구 하나은행 본점 딜링룸에서 직원들이 일하고 있다. 이준헌 기자

한때 ‘10만전자’를 바라봤던 삼성전자 주가가 반도체 업황 부진, 금리 인상 및 외국인 매도 여파 등으로 이제는 5만원선을 위협받는 수준까지 내려앉았다. 삼성전자는 지난 9월30일 종가로 5만1800원을 찍으며 52주 신저가를 기록했다. 삼성전자는 소액주주가 600만명에 이르는 ‘국민주’다. 개인투자자들이 올 한 해 코스피시장에서 가장 많이 순매수한 종목이다.

2023년에는 개미들에게 희망을 되돌려줄 수 있을까. 상황은 좋지 않다. 최근 반도체 가동률이 급락하고 수출도 줄었다. 반도체 재고가 10년 만의 최고 수준으로 증가하며 가격도 급락세다. 4분기 실적이 부진하면서 내년에는 10년 만에 적자를 기록할 것이라는 증권가 예상도 나왔다.

내년 글로벌 반도체시장 규모는 올해보다 3.6% 줄어들 것으로 전망된다. 하지만 전망은 전망일 뿐이다. 지난해에도 모건스탠리는 지난해 4분기 이후 메모리반도체 업황이 급격히 침체될 것으로 봤지만 삼성전자는 역대급 실적을 냈다. 채민숙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메모리 수요의 불확실성은 여전하지만 수요 감소를 주도한 중국의 제로 코로나 정책 등 매크로 이슈가 예상보다 빨리 완화되고 있다”고 밝혔다. 국내 증권사들은 내년 삼성전자 주가를 7만~8만원 사이로 제시하고 있다. 다만 이 같은 기대가 희망고문이 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지구의 중력을 뿌리치고…‘다누리’의 역사적 비행

1,550,000㎞
국내 첫 달 궤도 탐사선인 다누리가 발사된 지난 8월5일 서울역 대합실에서 시민들이 TV 뉴스를 보고 있다. 한수빈 기자

한국이 지난 수십년간 대기권 밖으로 쏘아 올린 물체는 모두 지구의 중력 범위 안에 머물러 있었다. 인공위성은 지상에서 최대 3만6000㎞를 넘지 않는 상공을 돌았다. 누리호 같은 발사체는 고도 수백㎞까지 상승하는 게 목표였다. 그러나 한국의 첫번째 달 궤도선 ‘다누리’는 달랐다. 무려 지구에서 155만㎞ 떨어진 우주까지 날아갔다. 155만㎞는 지구와 달 사이 거리(38만㎞)의 4배에 이른다. 한국이 만든 우주선으로서는 가장 먼 우주까지 날아갔다가 지난 27일 예정된 달 궤도에 안착했다.

다누리가 먼 우주까지 날아간 데에는 이유가 있다. ‘탄도형 달 전이(BLT)’라는 특별한 비행 경로를 선택했기 때문이다. BLT는 우주를 날아가는 동력 대부분을 태양과 지구, 달의 중력에서 얻는 것이다. 이 때문에 비행 거리와 기간은 길지만, 연료 소모는 최소화된다.

BLT는 분명 한국 과학자들에게 큰 의미가 있는 도전이었다. 세심한 궤도 설계가 필요했고, 결국 정상적으로 다누리를 달 상공에 안착시키는 데 성공했다. 장거리 비행용 우주선과 통신하고 움직임을 제어하는 기술도 얻게 돼 다누리가 향후 한국 우주과학계에서 중요한 자산이 될 것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향후 달 탐사에선 우리 힘으로 탐사선까지 쏘아 올리는 게 남은 숙제다.

■5년 만에 두 배 된 서울 집값, 내 한 몸 누일 곳 어디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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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여의도 63스퀘어 전망대에서 바라본 서울 시내 풍경. 밀집한 아파트의 모습이 보인다. 연합뉴스

KB부동산에서 집계한 12월 서울 아파트 평균 매매가격은 12억6421만원이다. 12월29일 한국부동산원 집계를 보면 서울 아파트 가격은 지난 5월30일 이후 31주 연속 하락 중이다. 그럼에도 12월 평균 매매가는 지난해 12월의 12억4978만원보다 오히려 높다. 연일 아파트값 하락 보도가 이어지고 정부는 “시장 경착륙 우려”라며 규제를 계속 푸는데도 매매가는 오른 것이다.

서울 아파트 평균 매매가는 5년 전인 2017년 12월엔 6억6147만원으로 지금의 ‘반값’ 수준이었다. 평균 소득을 가진 시민이 서울 아파트를 사려면 36년간 한 푼도 쓰지 않고 월급을 모아야 한다.

서울 아파트값이 고공행진을 이어가는 것은 수요가 많아 가격이 가장 느리게 하락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가 잇달아 다주택자 규제를 풀고 보유세를 감면하면서 집값을 떠받치는 부분도 있다.

평균 매매가가 낮아지려면 하락거래가 이뤄져야 하지만 금리 인상 등으로 역대급 ‘거래절벽’이 이어지면서 거래 자체가 극히 드물다. 올 7~10월 서울에선 매달 500~600건대 매매거래가 신고됐는데, 이는 과거 금융위기 시절에도 없던 일이다. 건설업계는 내년 수도권 아파트값이 약 4% 하락할 것으로 내다본다.

■뒤집힌 채권시장…말 한마디로 천 냥 빚 더 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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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철 휴장기를 맞아 강원 춘천시에 위치한 레고랜드 정문 앞이 한산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연합뉴스

김진태 강원지사는 지난 9월28일 춘천의 레고랜드 주변 기반조성사업 시행사인 강원중도개발공사(GJC)의 회생 신청을 하겠다고 밝혔다. GJC가 BNK투자증권에서 빌린 자산유동화기업어음(ABCP) 2050억원어치를 갚지 못하게 되자, 지급보증을 한 강원도가 이를 대신 갚지 않고 GJC의 자산을 처분해 갚겠다는 것이었다. 강원도는 “대출금을 갚겠다는 의미”라고 강조했지만 시장은 이를 채무불이행(디폴트)으로 받아들였다.

믿었던 지자체마저 보증을 이행하지 않겠다고 선언하자 시장의 신뢰가 크게 하락했다. 국채 금리, 다른 채권과 국채 간 금리 차인 신용스프레드는 급등했고 채권시장을 통한 기업의 자금조달은 위축됐다. 10월 회사채 순발행액은 3조2000억원 감소했다. 기업어음(CP) 금리는 9월28일 연 3.25%에서 지난 1일 5.54%까지 상승했다가 2개월여 만에 겨우 진정됐다. 상황이 급박해지자 정부는 10월23일 ‘50조원 플러스알파’ 규모의 유동성 공급 대책을 내놨다. 강원도도 10월21일 보증채무를 전액 갚겠다고 발표하고 지난 12일 전액 상환했다. 레고랜드 사태는 금융시장에서 한번 무너진 신뢰가 얼마나 큰 파장을 불러오는지를 보여준 사례였다.

경제부·산업부 종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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