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화점 반대 차로 진입 차단시설 ‘먹통’ 피해 키워
국토부, ‘불연성 소재’ 지침 삭제
원희룡 “전수 조사…안전성 확보”
지난 29일 5명이 숨지고 41명이 부상을 입은 경기 과천시 제2경인고속도로 방음터널 화재 당시 ‘터널 진입 차단시설’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30일 경찰과 제이경인연결고속도로(주) 등에 따르면 화재 당시 고속도로 양방향에 설치된 ‘터널 진입 차단시설’ 중 안양에서 성남 방향의 차단시설은 정상 작동하고, 반대쪽인 안양 방향 차단시설은 작동하지 않았다.
사고 당일 오후 1시49분쯤 갈현고가교 방음터널 안 성남 방향으로 달리던 폐기물 운반용 집게 트럭에서 불이 났다. 제이경인고속도로 측은 화재 발생 2분 뒤인 오후 1시51분 화재 사실을 파악하고, 순찰대를 현장에 출동시켰다. 상황실 직원들이 불이 난 후 10분 정도 후인 2시쯤 터널 진입 차단시설 작동을 시도했다. 성남 방향 도로의 터널 진입 차단시설은 정상 작동됐지만, 반대쪽인 안양 방향의 차단시설은 화재로 인해 전기 공급이 끊기면서 작동하지 않았다. 성남 방향을 달리던 운전자의 경우 터널 진입 차단시설 작동 후 차량을 멈추거나 우회하면서 사고에 대비할 수 있었다. 안양 방향 운전자들은 차단시설 미작동으로 불이 난 사실을 모르고 진행하다 방음터널에 갇힌 것이다. 방음터널 안에 고립된 차량은 모두 44대다.
이번 화재로 숨진 5명 모두 불이 처음 시작된 성남 방향 차로가 아닌 터널 진입 차단시설이 작동하지 않은 안양 방향 차로를 달리던 차량에서 발견됐다. 이 때문에 안양 방향 도로의 터널 진입 차단시설이 제대로 작동했더라면 인명 피해를 줄일 수 있었을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제이경인고속도로 측은 “터널 진입 차단시설은 자동이 아닌 수동으로 작동한다”며 “화재로 전기 공급이 끊겨 제대로 작동하지 않은 것 같다”고 말했다. 경찰은 터널 진입 차단시설의 정상 작동 여부 등에 대해서 수사할 방침이다. 제이경인고속도로는 지난 7월 서울지방국토관리청의 운영 평가에서 이상이 없다는 평가를 받은 것으로 확인됐다.
방음터널의 안전성에 관한 문제도 불거지고 있다. 방음터널은 주택가 인근 고속도로 소음 방지를 위해 설치가 늘고 있지만, 관련법상 시설물 안전점검 대상에서 빠져 ‘관리사각지대’라는 지적이 나온다.
방음터널은 철제 구조물에 플라스틱의 일종인 폴리카보네이트(PC) 또는 폴리메타크릴산 메틸(PMMA)로 덮어 만들어진다. 이번에 화재가 난 방음터널의 경우 ‘아크릴’로 불리는 PMMA가 사용됐는데, PMMA는 PC보다 더 화재에 취약하다.
손원배 초당대 소방행정학과 교수는 “방음터널의 철제 구조물에 덧씌워진 방음판은 가연성의 플라스틱 재질인 데다 불이 붙는 속도도 나무보다 3~4배 빠르다”며 “불연성 소재인 강화유리에 비해 2배 이상 저렴하고 공사가 쉬워 많이 사용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런 문제점에도 방음터널에서의 화재 확산을 막기 위한 규제는 사실상 없는 실정이다. 국토교통부는 2012년 도로건설공사 기준을 담은 도로설계편람을 개정하면서 방음시설에 ‘불연성 또는 준불연성 소재를 사용해야 한다’는 기존의 지침을 삭제했다. 정부가 현재 관리하는 방음터널은 전국적으로 55개다. 지방자치단체에서 관리하는 것까지 합하면 훨씬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원희룡 국토부 장관은 이날 대책회의를 열고 “국가에서 관리하는 방음터널과 지자체가 관리하는 방음터널의 안전성에 대한 전수조사를 실시하겠다”고 밝혔다. 국토부는 공사가 진행 중인 방음터널은 덮개 소재를 강화유리 등 불연소재로 교체하고, 기존 방음터널은 화재를 방지할 수 있도록 조치를 취할 계획이다.
전문가들은 방음터널 설치 시 화재 관련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이용재 경민대 소방안전관리과 교수는 “현재 방음벽을 설치할 때 햇빛 반사가 적고 변형되지 않는 재료라는 것 정도의 기준은 있지만 모두 화재와는 관련이 없는 것들”이라며 “애초부터 불이 나지 않게 하는 기준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처음 화재 발생 트럭 운전자 입건
사망자 5명 신원 아직 확인 안 돼
경찰은 이날 폐기물 트럭 운전자를 형사입건했다. 여운철 경기남부경찰청 과학수사대장은 브리핑에서 “감식 결과 집게 차량 발화부는 화물칸 우측 전면 하단부로 추정되며 발화원인은 현 단계에서는 확정해 논하기 어렵다”면서 “집게 차량에 인접한 방벽에 옮겨붙은 불길이 바람을 타고 급속하게 확산하면서 피해 규모를 키운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사망자들의 신원은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
김태희·김세훈·송진식·박준철 기자 kth08@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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