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를 지키러 '아마존 여성전사들'과 함께 돌아온 브라질 룰라
원주민 정치인 과자자라, 초대 원주민부 장관
농업 부문 반발, 환경 기관 재설립, 난제 산적
중남미 ‘좌파 대부’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시우바 브라질 대통령 당선인이 내년 1월 1일 세 번째 대통령 임기를 시작한다. 아마존 열대우림을 지키는 ‘환경 대통령’이 되겠다고 약속한 만큼, 새 내각엔 ‘아마존 수호자’들이 전면에 포진했다. 불법 벌채 퇴출, 황폐화된 산림 복구, 농업 부문의 반발 등 산적한 과제들을 헤쳐나가야 하는 막중한 임무가 맡겨졌다.
29일(현지시간) AP통신, 영국 가디언 등에 따르면 룰라 당선인은 이날 신임 장관 16명을 지명하며 장관 37명에 대한 임명 절차를 마쳤다. 좌파는 물론 중도파와 중도우파까지 두루 아울렀고, 흑인 10명과 원주민 2명도 포함돼 인종적 다양성에도 신경을 썼다. 여성 장관은 11명으로 브라질 역사상 가장 높은 비율(30%)을 기록했다.
‘투톱’은 환경부 장관 마리나 시우바와 원주민부 장관 소니아 과자자라이다. 두 사람은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여성 환경운동가로, ‘아마존 여성전사’라는 별명으로도 유명하다. 외신들은 “룰라 대통령의 국정 철학과 아마존 보호 의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인사”라고 평가했다.
여성 환경 투사 '투톱' 아마존 수호한다
시우바는 ‘룰라 1기 정권’ 시절인 2003~2008년 환경부 장관을 지냈다. 당시 브라질은 아마존 내 보호구역 설정, 환경 범죄 단속, 위성을 이용한 산림 감시 등 철저한 환경 우선 정책으로 산림 벌채를 4분의 3가량 줄여 찬사를 받았다. 시우바는 “10년 안에 아마존 벌채를 ‘0’으로 만들겠다”고 선언한 ‘룰라 3기 정부’ 공약을 흔들림 없이 이행할 수 있는 적임자로 꼽힌다.
시우바는 평생을 아마존에 바쳤다. 아마존 북서부 고무 생산지 빈농 가정에서 태어나 16세까지 글을 읽지 못했던 그는 온갖 어려움 속에 대학을 졸업한 뒤 환경ㆍ노동운동에 투신했다. 1980년대 아마존 고무수액 채취 노동자들의 생존권 투쟁을 이끌었고, 대규모 산림 파괴로 삶의 터전을 빼앗긴 원주민들과 함께 싸웠다. 1994년 고무노동자 최초로 상원의원에 당선됐으며 1996년에는 환경 분야 노벨상으로 불리는 ‘골드만 환경상’을 받았다.
시우바는 올해 10월 브라질 대선을 앞두고 룰라 캠프에 합류, 일찌감치 환경부 장관 후보로 거론돼 왔다. 룰라의 대선 승리는 시우바의 명성 덕분이라는 평가도 있다. 시우바는 “새 정부는 보존과 지속 가능성, 기후 위기를 우선시하는 민주적 생태계를 건설할 것”이라고 공언했다.
룰라 정권의 다른 한쪽 날개는 원주민부를 책임진 과자자라다. 과자자라는 브라질 최대 원주민 공동체로 꼽히는 과자자라족 출신으로, 원주민 권리 운동 단체인 브라질원주민연합(APIB) 사무총장을 지내며 원주민에 대한 폭력과 차별에 맞서 싸웠다. 2018년 대선에선 원주민 여성 최초로 부통령 후보로 출마했고, 올해 10월 총선에서 원주민 출신으로는 역대 세 번째로 하원의원에 당선됐다. 미국 시사주간 타임이 뽑은 2022년 ‘올해의 인물’ 100인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원주민부 신설은 룰라의 대선 공약이었다. 브라질 원주민 인구는 약 89만7,000명으로 적지 않으나 주류 정치권에서는 배제돼 있었다. 과자자라는 “원주민부 신설은 수세기 동안 고통받은 원주민 공동체에 대한 역사적 배상의 일부”라며 “지금껏 원주민이 국가 운영에 참여한 적이 없었다. 원주민 역사에 획기적인 사건”이라고 평가했다.
4년간 망가진 아마존 정책, 기초부터 바로 세워야
두 장관 앞에는 난제들이 산적해 있다. 31일로 임기가 끝나는 자이르 보우소나루 대통령 정권에서 토지 개간과 광산 채굴, 목재 수출을 위해 산림을 난개발하면서 아마존은 숨통이 끊어질 위기에 처했다. 지난 4년간 산림 벌채는 무려 60% 증가했는데, 지난해 8월부터 올해 7월까지 1년간 사라진 산림 면적만 카타르 국토 면적에 해당하는 1만1,500㎢에 달한다.
그러나 당장 산림 벌채를 중단한다면 대규모 농지 확보를 요구하는 농업 부문과 갈등을 빚을 공산이 크다. 시우바가 2008년 환경부 장관직을 그만둔 것도 유전자 변형 작물 재배, 아마존 기반시설 개발 등을 요구하는 농업 기업과 충돌했기 때문이다.
에리카 베렌게르 영국 옥스퍼드대 선임연구원은 “보우소나루 정권에서 자금이 삭감돼 고사 위기에 처한 환경 관련 기관을 재건하는 등 모든 것을 밑바닥부터 하나씩 다시 세워야 하는 상황”이라며 “아마존 산림 벌채를 단기간에 근절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김표향 기자 suza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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