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마지막날 권하고픈 만화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행복해’

한겨레 2022. 12. 30. 1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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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에 주어지는 노벨상이라 불리는 안데르센상을 받은 외국 작가를 초청하는 데 애를 먹고 있는데 도와줄 수 없냐는 문의를 받았다.

올봄에 이수지 작가가 안데르센상을 받고 많은 독자들의 큰 관심과 사랑을 받았던 것을 생각하면 의아한 일이다.

동성애, 죽음, 그리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을 다루는 그림책은 한국에서 출판이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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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S] 주일우의 뒹굴뒹굴
행복은 먹고 자고 기다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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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에 주어지는 노벨상이라 불리는 안데르센상을 받은 외국 작가를 초청하는 데 애를 먹고 있는데 도와줄 수 없냐는 문의를 받았다. 그럴 리가? 한국 출판사에서 책이 나왔으면 도움을 받을 터인데 책이 나온 적도 없다고 한다. 올봄에 이수지 작가가 안데르센상을 받고 많은 독자들의 큰 관심과 사랑을 받았던 것을 생각하면 의아한 일이다. 사정을 잘 아는 친구에게 물었다. 이건 무슨 일인지? 그의 답은 명료했다. 한국에서 내기 어려운 그림책은 세가지 종류가 있다. 동성애, 죽음, 그리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을 다루는 그림책은 한국에서 출판이 어렵다. 그런데 그런 책들에 안데르센상이 주어지는 경우도 제법 있다.

동성애야 말할 것도 없겠다. 서울대에선 초안에 담긴 성적 지향 및 성별 정체성 차별을 금지해야 한다는 이야기 때문에 인권헌장을 제정하지 못했다. 이 조항을 반대하는 많지 않은 교수들 중에는 치료해야 할 것을 권리로 거론하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기는 사람들이 있다고 한다. 놀랍게도 초·중등학생을 대상으로 한 서울시 학생인권 조례에는 성적 지향 및 성별 정체성에 대한 차별 금지가 분명하게 표시되어 있다. 더 놀라운 건 학생인권 조례에도 불구하고 그런 내용을 담은 책은 출판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죽음도 우리 사회가 언급을 피하는 단어 중에 하나이다. 참사로 인한 죽음을 곁에서 목도해야 하고 자살률도 높은 나라에 살면서 아이들에게만 ‘죽음’을 숨기겠다는 것은 눈 가리고 아웅일 텐데. 그건 그렇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은 무얼까? 보통 아이들은 엄청 뛰어다닌다. 튼튼하게 성장하기 위해서 아이들은 운동선수와 비슷한 근력과 회복력을 가지고 있다. 거기에 많은 부모들은 아이들이 무언가 열심히 해서 ‘성공’하기를 바란다. 빈둥빈둥, 뒹굴뒹굴거리면 벼락같은 호통을 치기 십상이다. 그런 부모가 아이들이 ‘아무것도 하지 않는’ 그림을 담은 책을 살 리가 없다.

부모의 기대에, 혹은 스스로의 기대에 열심히 뛰다 보니, 어느덧 한해가 바닥났다. 2022년의 마지막 날 권하는 만화책은 <행복은 먹고 자고 기다리고>. 주인공은 면역질환의 일종인 교원병을 앓고 있다. 고치기 어려운 병이라 병을 안고 천천히 살아야 한다. 일주일에 4일만 일하고 3일은 회복을 위해서 집에서 쉰다. 대기업에서 몸이 부서져라 일했던 시절이 있었지만 이젠 모든 것을 천천히. 달라진 상황이 서러울 법도 한데, 느리게, 하지만 행복하게 사는 사람들을 만나면서 다른 행복을 찾는다. 아흔둘인 집주인 할머니, 특별한 직업 없이 가사일을 돌보는, 허우대 멀쩡한 청년. 그들과 어울려 살면서 따듯한 에너지를 얻는다.

소화 흡수가 잘되어 위장에 부담이 적은 닭고기 완자. 몸을 따듯하게 해주는 생강을 넣고 만가닥버섯으로 낸 국물과 야채의 단맛을 더해 수프를 끓여 상에 올린다. 버섯은 면역력을 높이고 양배추는 위장에 좋다. 마지막에 목에 좋은 연근을 갈아 넣으면 약이 따로 없다. 각자 다른 이유로 느리게 사는 사람들의 식탁은 건강하다. 느린 생활은 깊은 생각을 낳는다. 오늘은 몸에 좋은 것 든든히 먹고 졸다가 빈둥대도 괜찮은 날이었으면 좋겠다.

만화애호가

종이나 디지털로 출판되어 지금도 볼 수 있는 국내외 만화를 소개하고 그에 얽힌 이야기를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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