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전부터 경고했는데…감사원 지적에 ‘뒷북’ 용역
어제(29일) 제2경인고속도로 방음터널에서 불이 빠르게 번진 이유로 전문가들은 '방음판'의 재질을 꼽습니다.
흔히 '아크릴'로 알려진 소재로 방음 효과가 뛰어나지만, 상대적으로 화재에는 취약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바로 이 경고, 이미 국토교통부 산하 공공기관인 한국도로공사가 10년 전부터 세 차례나 제기한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2012년 첫 번째 경고 "아크릴 소재 화염 전파 더 빨라"
한국도로공사 도로교통연구원은 고속도로 방음벽에 사용하는 방음 자재의 '방염' 성능에 관한 보고서를 냈습니다. 2012년이었습니다.
보고서를 보면 연구진이 아크릴(PMMA)과 폴리카보네이트(PC) 방음벽을 만들어 연소실험을 한 결과, 아크릴 방염판은 거의 전소된 뒤 바닥에 떨어진 잔해까지 계속 불꽃이 남아 있어 23분 뒤 일부러 불을 껐다고 되어 있습니다.
반면 폴리카보네이트 방염판은 약 40%만 타고 불이 꺼졌으며, 잔해에 남아 있던 불꽃도 20분 뒤 모두 꺼졌습니다.
이번 화재에서 목격된 '불똥이 비처럼 내린' 현상이 나타났고, 두 재료 가운데 아크릴의 화재 전파속도가 더 빠르고 불꽃이 오래 지속된다는 점이 10년 전 실험에서 이미 확인된 겁니다.
보고서는 "방음 자재의 기초적인 연소 특성을 파악하고, 방음벽 화재 발생 시의 피해 영향을 예측해 합리적인 방염기준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다만, 해당 실험은 '방음터널'이 아닌 '방음벽'이 대상입니다.
이영주 서울시립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방음벽은 개방공간이라 위험성이 크지 않지만, 방음터널은 밀폐형 구조물 안으로 연기가 축적된다"며 "같은 소재를 쓰더라도 방음터널이 더 위험하다"고 지적했습니다.
이 교수는 "도로공사가 방음터널에 대한 문제를 지적하기 전에도 국토부가 위험성을 충분히 예견할 수 있었다"며 "이전까지 '몰라서 못 했다'는 식의 태도는 문제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2015년 두 번째 경고, "방음 터널에 아크릴 금지" 제안
도로공사의 두 번째 경고는 국토부의 용역 과정에서 나왔습니다.
국토부는 2015년 12월 '도로터널 방재시설 설치 및 관리지침 개정 연구' 용역 보고서를 냈습니다.
한국터널지하공간학회가 진행한 용역 과정에서 도로공사는 '자문 의견'으로 "터널형 방음시설 자재로 플라스틱, 목재, PMMA 등 가연성 재료를 사용해서는 안 된다"는 항목을 추가할 것을 제안했습니다.
최종 보고서에는 반영되지 않았지만, 이 제안은 '부록'으로 첨부됐습니다.
이듬해 국토부는 '도로터널 방재시설 설치 및 관리지침'을 개정하며 방음터널의 방재 기준을 처음 도입했는데, 최종 용역 보고서대로 방음판 재질 관련 내용은 빠졌습니다.
■2018년 세 번째 경고 "아크릴은 방음 터널에 부적합"
도로공사는 2018년 방음터널 화재 관련 연구보고서를 냈습니다.
아크릴의 인화점이 상대적으로 낮아 "방음터널에 사용하기에는 부적합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명확하게 밝히고 있습니다.
실제로 도로공사는 2012년 이후에는 아크릴 소재를 방음 터널에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도로공사가 관리하는 전국 고속도로 15곳 가운데 아크릴을 사용한 곳은 2008년에 시공한 무안광주고속도로 방음터널 한 곳뿐입니다.
국토부는 이 세 번의 경고를 알고 있었을까요?
도로공사 관계자는 연구보고서가 국토부에 공유되는지 묻자 "부서에서 직접 보고하지는 않고, 알리오(공공기관 경영정보 공개시스템)를 통해 공개된다"고 설명했습니다.
■국토부, 올해 감사원 지적받고 대책 마련 착수
문제를 먼저 인식한 것은 국토부가 아니라 감사원이었습니다.
감사원은 "'광역교통망 구축 추진실태' 감사에서 터널형 방음시설의 화재 안전기준 등을 검토 중에 있다"며 "감사 과정에서 국토부에 터널형 방음시설의 화재안전기준 보강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제시했다"고 밝혔습니다.
올해 1월 감사원은 국토부에 관련 내용을 전달했고, 국토부는 4월 연구 용역을 발주했습니다.
KBS가 국회 국토교통위원인 더불어민주당 김두관 의원실을 통해 입수한 '터널형 방음시설의 화재안전기준 마련을 위한 연구 제안요청서'를 보면, 용역은 20개월 뒤 마무리됩니다.
이호준 기자 (hojoon.lee@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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