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 3회우승' 펠레 본명은 에디슨, 아인슈타인 병원서 별세

김성휘 기자 2022. 12. 30. 17:32
자동요약 기사 제목과 주요 문장을 기반으로 자동요약한 결과입니다.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2023년을 앞두고 29일(현지시간) 별세한 브라질 축구전설 펠레는 전무후무한 기록을 여럿 가지고 축구역사에 독보적 자취를 남겼다.

불과 1년 뒤인 1957년 국가대표가 된 펠레는 1958년 국제축구연맹(FIFA) 스웨덴 월드컵에 출전하며 월드컵 무대를 밟는다.

브라질은 이 대회 우승을 차지했고 펠레는 세계적인 스타 축구선수가 된다.

그럼에도 아직 펠레를 20세기 최고 또는 역사상 최고의 축구선수로 꼽는 데 이견이 크지않다.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루사일 로이터=뉴스1) 최서윤 기자 = 2022년 12월 2일 도하 북쪽 루사일의 루사일 스타디움에서 열리는 2022년 카타르 월드컵 G조 축구경기를 앞두고 관중석에서 브라질 전설 펠레의 대형 깃발이 공개되고 있다. 2022. 12. 2. ⓒ AFP=뉴스1 ⓒ 로이터=뉴스1 Copyright (C)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2023년을 앞두고 29일(현지시간) 별세한 브라질 축구전설 펠레는 전무후무한 기록을 여럿 가지고 축구역사에 독보적 자취를 남겼다.

그는 1940년 10월 브라질 코라송이스 지역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돈지뉴도 축구선수 출신이지만 성공하진 못했다. 펠레의 어린 시절은 매우 가난했고, 특별히 눈에 띄지 않는 아이였던 걸로 알려졌다.

하지만 아버지의 관심과 가르침 아래 축구에 입문, 상파울루 주 산투스 FC의 유소년팀에 들어가게 된다. 이때가 1956년. 그는 이후 급성장했고 어린 나이에 두각을 나타낸다.

(멕시코시티 로이터=뉴스1) 권진영 기자 = 1970년 멕시코 월드컵 결승전(브라질-이탈리아)에서 선제골을 넣은 펠레가 환호하며 세리머니하고 있다. ⓒ 로이터=뉴스1 Copyright (C)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불과 1년 뒤인 1957년 국가대표가 된 펠레는 1958년 국제축구연맹(FIFA) 스웨덴 월드컵에 출전하며 월드컵 무대를 밟는다. 이 대회 8강 웨일스와 경기에서 펠레는 만 17세에 득점을 했다. 지금도 깨지지 않는 월드컵 최연소 득점 기록이다.

브라질은 이 대회 우승을 차지했고 펠레는 세계적인 스타 축구선수가 된다. 펠레는 이후로도 1962년, 1970년 월드컵에서 브라질의 우승을 이끌었다.

개인통산 월드컵 3회 우승은 펠레가 역사상 유일하다. 또 1970년은 1958년 대회부터 12년 이후지만 펠레는 불과 29세였을 정도로 젊은 나이에 축구계를 평정했다.

(파리 AFP=뉴스1) 우동명 기자 = ‘축구 황제’ 브라질의 펠레가 지난 2014년 3월 10일 파리에서 열린 월드컵 트로피 투어 행사의 기자회견 중 주먹을 불끈 쥐고 있다. 펠레는 29일(현지 시각) 대장암 투병 중 향년 82세로 사망했다. ⓒ AFP=뉴스1 Copyright (C)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펠레는 산투스 FC에서 1974년까지 뛰며 643골을 넣어 단일클럽 최다 기록도 가지고 있었다.

다만 그의 통산 득점은 통계마다 조금씩 다르다. 펠레 자신은 총 1283골을 주장하고 있지만 친선·비공식 경기 등을 포함한 걸로 보인다. FIFA는 그가 1281골을 넣은 걸로 기록한다.

국가대표로는 91경기에서 77골을 넣었다. 월드컵은 14경기에서 12골을 득점했다.

21세기로 넘어오며 출중한 후배들이 그의 기록 일부를 깨기도 했다. 단일클럽 최다득점은 리오넬 메시(아르헨티나)가 2020년 바르셀로나 FC에서 644골을 넣으며 비로소 깨졌다. 또 메시는 아르헨티나 국가대표로 12월 현재 172경기 98골을 기록하고 있다.

(취리히 로이터=뉴스1) 최서윤 기자 = 아르헨티나 축구선수 리오넬 메시(좌측)가 2011년도 국제축구연맹(FIFA) 올해의 선수로 뽑혀 2011 발롱도르를 받던 2012년 1월 9일 취리히 콩그레스하우스 시상식에 나란히 선 펠레. 당시 펠레의 반대편 옆에는 네이마르도 있었다. ⓒ 로이터=뉴스1 Copyright (C)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그럼에도 아직 펠레를 20세기 최고 또는 역사상 최고의 축구선수로 꼽는 데 이견이 크지않다.

한편 아르헨티나에선 디에고 마라도나가 1986년 월드컵 우승을 차지하는 등 독보적 축구영웅이었다. 이 때문에 팬들은 '역사상 최고' 이른바 GOAT(Greatest Of All Time) 축구선수가 펠레인가 마라도나인가 하는 논쟁을 벌였다.

최근 메시가 테이블에 올라 세 사람이 비교되곤 했다. 해외 매체들도 펠레-마라도나-메시를 1·2·3위에 바꿔가며 올리곤 했다.

(리우데자네이루 로이터=뉴스1) 권진영 기자 = 1995년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에서 디에고 마라도나와 펠레가 해먹 위에 앉아 휴식을 취하고 있다. 1995.05.14 ⓒ 로이터=뉴스1 Copyright (C)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펠레의 본명은 이드송(이지송) 아란치스 두나시멘투. 펠레는 어린 시절 붙은 별명인데 그 유래는 확실치 않다고 한다. '이드송'은 아버지가 위대한 발명가 토머스 에디슨의 성 '에디슨'을 따서 지어줬다. 가족들은 그가 어릴 때 이드송의 애칭인 '지쿠' 로 불렀다고 한다.

고인은 대장암 등으로 투병하다 상파울루의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병원에서 29일 운명했다. '에디슨'의 이름을 가진 불세출의 스타가 아인슈타인 이름을 딴 병원에서 세상을 떠난 셈이다.

김성휘 기자 sunnykim@mt.co.kr

<저작권자 ⓒ '돈이 보이는 리얼타임 뉴스' 머니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Copyright © 머니투데이 & mt.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