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후죽순 생긴 방음터널, 경기도에만 70개...화재 위험 어쩌나
기사내용 요약
방음터널 벽·천장 대부분 플라스틱...불에 취약해
화재 확산 방지 위한 규정도 미흡해 안전 우려
2년 전에도 방음터널 화재...안전기준 보강 늦어
전문가 "방음 위해 터널 양산 적합한지 고민해야"
[수원=뉴시스] 변근아 이병희 기자 = 5명의 사망자가 발생한 경기 과천시 제2경인고속도로 방음터널 화재 사고로 경기도 내 다른 방음터널에 대해서도 안전사고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30일 경기도와 국토교통부 등에 따르면 현재 경기도를 가로지르는 도로 위에 70개의 방음터널이 있다.
이 중 29개(일반국도 7개, 고속국도 8개, 민자고속도로 14개)는 국토부에서 관리하는 시설이며, 41개는 도내 14개 지자체에서 각각 관리한다.
문제는 이 같은 방음터널들 역시 이번 사고가 난 방음터널과 같이 대형 화재의 원인이 될 수 있다는 점이다.
이번 화재가 걷잡을 수 없이 번진 데에는 플라스틱으로 구성된 방음터널 내 벽과 천장이 주요 원인으로 꼽힌다. 주로 '폴리카보네이트(PC)', '폴리메타크릴산 메틸(PMMA)' 등이 쓰이는데 둘 다 투명한 열가소성 플라스틱으로, 열을 가했을 때 유연하게 되고 온도를 더 올리면 녹는 성질을 갖는다.
이번에 불이 난 터널의 경우 PMMA 재질의 반투명 판을 덮어 만든 것으로 알려졌다. PMMA의 경우 PC의 경제적 대안으로 사용되기도 하지만 화재에 더 취약하다는 단점이 있다.
그럼에도 방음터널에서 화재 확산 방지를 위한 규정은 미흡하다. 일반터널과 달리 소방법상 소화전이나 스프링클러 등 안전설비 설치도 의무화돼있지 않다.
방음터널 내 화재 사고는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2020년 8월에도 수원 광교신도시에서 용인 구성구로 연결되는 하동IC 고가도로에 설치된 방음터널에서 승용차에 난 불이 번지며 터널 일부를 태우는 사고가 난 바 있다. 사고 발생 시각이 새벽이라 인명피해는 없었으나, 이 불로 내부 50m가 소실됐다.
이에 감사원은 2021년 말 터널 방음시설의 화재 안전기준 보강이 필요하다고 국토부에 의견을 제시했고, 국토부도 이를 받아들여 지난 7월부터 터널형 방음시설의 화재안전기준 보강을 위한 용역을 진행하는 등 관련 조치에 나섰으나 이번 사고를 막지는 못했다.
전문가들은 방음터널 내 안전규정 등을 만드는 것뿐만 아니라 방음터널 설치에 대해서도 근본적으로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고 제언한다.
이영주 서울시립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높이 쌓아야 하는 방음벽보다 터널형이 방음 효과가 좋아서 방음터널을 많이 쓰는 추세인데, 터널 자체가 화재에 취약한 위험한 공간임을 생각하면 방음 목적이 뛰어나다고 해서 터널을 양산하는 게 적합한지 고민해야 한다"면서 "더욱이 일반터널의 경우 양방향으로 설계돼 불이 났을 경우 비상공간을 통해 반대편 터널로 대피할 수 있지만 방음터널은 뚫려있는 구조다 보니 끝까지 도망가지 않으면 갇힌 공간에 있어야 하는 등 피난여건이 좋지 않은 상황"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또 터널 대부분 철골을 잡고 PC 등을 설치하는데 유조차량 등 대형차량에 급격하게 불이 붙어 확대될 경우에도 구조적으로 안전한지, 터널이 버틸 수 있는지 생각해봐야 한다"며 "방음 효과를 갖추면서 안전하게 쓸 방법을 찾아야 하는데 아직은 안전보다 방음 기능만 생각해 사각지대가 발생한 것 같다. 이번 사고를 계기로 시설 기준이나 재료적 기준을 적용하는 등 안전 방안을 찾아봐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류상일 동의대 소방방재행정학과 교수는 "터널은 들어가면 공간이 한정돼있다 보니 소방차도 진입하기 어려워 대피로가 잘 마련될 필요성이 있으나 방음터널은 아직 그런 부분이 미흡한 상황인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PMMA나 PC나 결국 불에 취약한 플라스틱 재질"이라며 "강화유리도 불에 녹기는 하지만 플라스틱과 비교하면 훨씬 안전하다. 다만, 비용적 측면이나 관리 때문에 방음터널을 강화유리로 전부 만들기는 어렵겠지만 10m 또는 100m마다 고가의 불에 잘 타지 않는 재질을 섞어 방음벽을 만들어 불이 급격하게 번지는 것을 막는 것도 하나의 대책은 될 수 있을 것 같다"고 설명했다.
국토부는 이러한 여러 의견 등을 반영한 듯 화재에 취약한 소재를 쓰고 있는 공사를 전면 중단하고 화재에 튼튼한 소재 구조로 시공 방법을 바꾸겠다는 입장을 내놨다.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은 이번 화재 사고 현장을 방문한 뒤 "국가가 관리하는 55개 방음터널, 그리고 지자체가 관리하는 방음터널까지 전수조사하겠다"며 이같이 밝혔다.
그러면서 "기존에 이미 만들어져 있는 방음터널은 전면 교체하거나 기술적으로 불가능한 경우 부분적으로 내화성 도료 또는 보드, 아니면 상부개폐 방식 등 화재 대피시간과 구조 시간을 충분히 확보할 수 있는 안전조치를 대폭 보강하겠다"고 말했다.
경기도는 국토교통부의 방음터널 전수조사 이후 개선 방안 등을 만들 계획이다.
경기도 관계자는 "사고 이후 국토교통부에서 전수조사한다고 발표했기 때문에 이에 따른 조치를 준비 중이며, 국토부와 협조해 방음터널을 조사할 계획이다. 조사 결과가 나오는 대로 시설 개선 등 방안을 만들어갈 방침"이라고 말했다.
한편, 지난 29일 오후 1시49분 제2경인고속도로 북의왕IC 인근 방음터널 부근을 지나던 한 화물 트럭에서 난 불이 방음터널 벽으로 옮겨붙으며 큰불이 났다.
이 불로 인해 방음터널 830m 중 600m 구간이 모두 탔다. 5명이 사망했고, 안면부 화상 등 중상 3명, 단순연기흡입 등 경상 38명 등 인명피해도 발생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gaga99@newsis.com, iambh@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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