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펑크룩' 창시한 英 패션 대모
70년대 펑크음악 패션 접목
의상·액세서리·향수 등
영국 대표 브랜드로 키워
탱크몰고 총리집앞 시위 등
파격적 언행으로도 유명
"내가 패션계에 있는 유일한 이유는 '순응'이란 단어를 파괴하기 위해서다. 그 요소가 없다면 나에게 전혀 흥미롭지 않다."(비비언 웨스트우드)
영국 패션계의 대모이자 '펑크 스타일' 창시자인 영국 패션디자이너 비비언 웨스트우드가 29일(현지시간) 81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이날 '비비안 웨스트우드 패션하우스'는 트위터를 통해 "비비언 웨스트우드가 런던 남부 클래펌 자택에서 평화롭게 잠들었다"고 밝혔다. 이어 "세상은 더 나은 변화를 만들기 위해 비비언과 같은 사람들이 필요하다"고 추모했다.
웨스트우드는 1970년대 펑크 음악에서 영감을 받은 '펑크룩'의 창시자다. 교사 출신인 그는 패션업계에서 50년 이상 '영국 패션의 대모'로 불려왔다. CNN은 "패션업계에서 웨스트우드는 마지막 순간까지 업계의 경계를 허물고 활력을 불어넣은 사랑받는 캐릭터였다"고 전했다.
1941년 4월 8일 영국 중부 더비셔주 글로솝에서 태어난 그는 면직물 공장에서 일하던 어머니와 구두 수선공이었던 아버지 밑에서 자랐다. 그는 부모의 영향으로 10대 때부터 자신의 맞춤 양복을 만들었다. 이후 런던에서 보석을 공부했지만 곧 중퇴하고 한동안 초등학교 교사로 일했다.
그는 1965년 후일 펑크록 밴드 '섹스 피스톨스'의 매니저가 되는 맬컴 맥라렌을 만나면서 패션업계에 발을 들였다. 1970년대 웨스트우드와 맥라렌은 런던 킹스로드에 '렛 잇 록'(Let it rock, 추후 '섹스(SEX)'로 변경)이란 이름의 매장을 열고 사회와 정치 체제에 반대하는 메시지와 성적으로 노골적인 이미지가 담긴 빈티지 의류를 판매했다. 이후 지퍼, 가죽, 고무 등을 사용한 본디지(결박) 콘셉트의 옷들을 선보였고, 런던의 젊은이들은 이들의 도발적인 펑크 스타일에 열광했다. 영국 여왕의 입술에 큰 옷핀이 달린 이미지가 프린트된 티셔츠도 인기를 끌었다.
1981년 그는 '해적들'이란 콘셉트의 첫 런웨이 컬렉션을 선보였다. 성 중립적이면서 영국 전통 소재와 스타일을 재창조한 컬렉션은 그를 유명하게 만들었다. 그의 브랜드 '비비안 웨스트우드'는 오늘날 의상, 액세서리, 향수 등 다양한 제품을 선보이며 영국 대표 브랜드로 성장했다.
그의 삶은 반항적인 펑크 문화 그 자체였다. 1992년 웨스트우드는 엘리자베스 여왕이 수여하는 훈장을 받기 위해 버킹엄궁에 갈 때 속옷을 입지 않은 채 훤히 비치는 망사 드레스를 입었다. 핵 군축과 반전을 옹호했으며, 환경 문제에도 목소리를 냈다. 2015년에는 당시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 집 앞에 탱크를 몰고 가 가스 개발에 반대한다는 시위를 하기도 했다.
[신혜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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