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고 또 사랑하라" 축구황제 펠레의 유언

이용익 기자(yongik@mk.co.kr) 2022. 12. 30. 1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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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장암 투병 끝 82세로 별세
사상 유일 월드컵 3회 우승
20세기 최고 스포츠 영웅
축구계 인사들 추모 동참
리오넬 메시 "편히 쉬시라"
네이마르 "축구를 예술로 바꿔"

카타르월드컵의 여운이 채 가시기도 전인 12월 30일(한국시간), 브라질 축구의 전설 펠레가 세상을 떠났다. 그는 상파울루의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병원에서 가족이 지켜보는 가운데 편안하게 눈을 감은 것으로 알려졌다. 향년 82세. 유럽과 남미는 물론 전 세계가 슬퍼하며 그를 향한 추모와 그리움의 목소리를 쏟아냈다.

그의 본명은 에드송 아란치스 두 나시멘투. 브라질을 축구의 나라로 만들고, 축구라는 스포츠를 세계 최고의 인기 종목으로 만든 '축구황제'가 세상을 떠난 것이다.

생전 "베토벤이 음악을 위해 태어났고 미켈란젤로가 미술을 위해 태어난 것처럼 나는 축구를 위해 태어났다"고 목소리를 높였던 펠레였지만 그 역시 시간을 거스를 수는 없었다. 그는 자신의 인스타그램을 통해 '사랑하고, 사랑하고, 사랑하라. 영원히'라는 유언을 남겼다.

AP통신 등은 "세계 최고의 축구 선수였던 펠레가 대장암으로 인한 합병증과 노환으로 별세했다"고 일제히 보도했다. 2020년 대장암 진단을 받고 수술을 받았던 펠레는 이후 폐와 간에도 종양이 발견돼 항암 치료를 계속해서 받았으나 더 이상의 차도가 없었고, 지난 24일부터는 가족들이 모여 그의 곁을 지켰다.

펠레는 현역 시절 173㎝ 작은 키에 마른 몸매를 가진 선수였지만 초록 잔디 위에서는 브라질을 넘어 현대 축구사에 그 누구보다도 중요하고 위대한 업적을 이룬 인물로 꼽힌다. 1956년 만 15세 나이로 브라질 명문 산투스 FC에 입단한 펠레는 다음 해에 국가대표팀 유니폼까지 입으며 자신의 능력을 일찌감치 선보였다.

그리고 펠레가 전설이 되는 데는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산투스 FC와 미국 뉴욕 코스모스에서 활약한 프로 생활도 뛰어났지만 국가대표로서 이룬 성과는 그 누구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다. 1958 스웨덴월드컵에 나선 펠레는 만 17세 나이로 월드컵 최연소 득점 선수 기록에 자신의 이름을 써넣은 것은 물론, 역대 월드컵 최연소 해트트릭까지 성공하면서 6골을 넣어 단번에 자신을 세계에 알리며 첫 월드컵 우승을 거머쥐었다.

1962 칠레월드컵에서 브라질이 월드컵 2연패를 달성하는 동안 부상 때문에 2경기 1골 1도움에 그치면서 아쉬움을 남겼던 펠레는 1966 잉글랜드월드컵에서는 엄청난 반칙에 시달려 급기야 만 25세의 어린 나이에 대표팀 은퇴를 선언하기도 한다.

하지만 팬들의 성원 끝에 대표팀에 복귀한 펠레는 지금까지도 축구 역사에서 가장 강한 팀으로 꼽히는 1970 멕시코월드컵의 브라질 대표팀을 이끌며 또다시 정상에 올랐다.

결국 펠레는 전 세계 유일한 '월드컵 3회 우승 선수'가 됐고, 최초 3회 우승을 이끌어낸 결과로 초기 월드컵의 우승컵이었던 '쥘리메컵'은 영원히 브라질의 소유가 됐다. 오늘날까지 펠레를 축구황제라는 호칭으로 부르는 데 반기를 드는 이가 없는 이유다.

1999년 국제올림픽위원회(IOC)는 올림픽에 나선 적도 없는 펠레를 '20세기 최고의 운동선수'로 선정했고, 2위였던 마이클 조던 역시 "펠레라면 나보다 위대하다는 사실을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다"고 말했다.

통산 1279골로 역대 최다 득점자로 기네스북에 오른 뒤 현역 생활을 마친 펠레는 은퇴 이후 코치나 감독 일에 집중하는 대신 다양한 활동을 했다.

브라질 체육부 장관을 맡으면서 축구협회와 클럽들의 회계를 투명화하려 노력하는 등 유의미한 일도 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다만 자신이 축구를 하는 만큼 남들의 축구를 보는 눈은 없었다. 펠레가 주요 경기를 앞두고 결과를 예측하거나 유망주 선수들을 칭찬하면 번번이 반대의 결과가 나와 '펠레의 저주'라는 놀림을 받은 것도 이제 더 이상 즐길 수 없는 과거의 징크스가 됐다.

2년 전 디에고 마라도나(아르헨티나)가 세상을 떠나고, 펠레까지 고인이 되면서 국제축구연맹(FIFA)이 20세기 최고의 축구선수로 꼽은 이들은 모두 떠났고, 이제 '황제'나 '신'이라는 절대자의 호칭을 쓸 수 있는 현존 축구선수는 리오넬 메시(파리 생제르맹)만 남게 됐다.

떠나는 황제에 대한 추모는 비통하고 뜨겁다. 2022 FIFA 카타르월드컵에서 우승을 차지하며 펠레와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게 된 메시는 "편히 쉬십시오"라는 인사를 건넸고, 브라질 10번의 후계자인 네이마르는 "펠레 이전에 10번은 숫자에 불과했다. 펠레 이전에는 축구가 그저 스포츠에 불과했다면 그는 축구를 예술과 오락으로 바꿨다"고 슬픔을 드러냈다.

펠레와 함께 미국에서 선수 생활을 함께한 적이 있는 독일의 전설 프란츠 베켄바워는 "축구는 오늘 역사상 가장 위대한 패배를 당했다. 그의 곁에 있었던 시간은 내 경력에서 가장 위대한 순간 중 하나였다"고 돌아봤다.

[이용익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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