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빚더미' 한전 7조 추가 유입···가계·기업은 주름살 깊어진다

세종=양철민 기자 2022. 12. 30. 1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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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료 내년 1분기 9.5% 최대폭 인상
예상인상액 ㎾h당 50원의 ¼ 불과
전기료 정상화 막혀 손실감축 제한
한전채 이자만 하루 100억·연 3조
내년에도 추가 발행···재무부담 가중
전력망 구축도 뒷전.. "후세대 부담 떠넘겨"
이창양(왼쪽)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30일 정부서울청사 브리핑실에서 내년 1분기 전기·가스요금 조정안을 발표하고 있다. 오승현 기자
[서울경제]

“지금과 같은 요금 인상분만으로는 한국전력의 재무 상황이 급격히 악화돼 내년도에 한전 회사채 발행 한도를 늘리는 ‘한전법 개정안’을 추가 개정해야 하는 최악의 상황이 발생할 가능성도 있습니다.”

조홍종 단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정부가 내년 1분기 전기요금을 1㎾h당 13원 10전 인상하기로 한 결정에 대해 한전의 재무 상황이 최악으로 치달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 역대 최대 폭(9.5%)으로 전기요금을 인상했음에도 올해에만 30조 원이 넘는 영업손실이 우려되는 한전의 경영난을 되돌리기에는 역부족이라는 의미다. 정부로서는 물가 안정을 위해 당장 한전의 생존에 필요한 최소한의 조치만 했다고 볼 수 있는 상황이다.

에너지 업계에서는 내년도 전기요금이 1㎾h당 51원 60전 인상돼야 한전의 손실을 막을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최근 1년 새 글로벌 연료비 가격이 급등했기 때문이다. 국내 발전사 연료비에서 가장 비중이 높은 액화천연가스(LNG) 가격은 지난해의 경우 1MMBtu(열량단위)당 18.8달러 수준이었으나 지난달에는 34.0달러로 1.8배가량 껑충 뛰었다. 석탄가격은 지난해 1톤당 138.0달러에서 지난달 358.4달러로 2.6배 높아졌다. 이에 따라 전력도매가격(SMP)은 지난해 1㎾h당 94원 30전에서 지난달 189원 10전으로 갑절이 됐다. 앞서 내년도 전기요금이 올해 대비 50% 이상은 뛸 것이라는 전망이 제기됐던 이유다.

반면 정부는 1년 치 연료비 변동분 등을 기준으로 산정하는 전력량 요금 인상분(㎾h당 11원 40전)과 매년 연초에 반영하는 기후환경요금 인상분(㎾h당 1원 70전)을 반영해 내년 1분기 요금 인상분을 13원 10전으로 틀어막았다. 산업통상자원부와 한전이 추산한 내년도 전기요금 인상분(51원 60전)의 25% 수준이다. 이창양 산업부 장관이 “이번 요금 인상으로 연간 기준 7조 원 정도의 추가 수입이 발생할 것”이라고 밝혔지만 한전의 올해 예상 영업손실이 30조 원 수준이라는 점에서 손실 감축 효과도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특히 한전채 이자만 하루 100억 원, 연 3조 원이 예상된다. 한전으로서는 그야말로 갑갑한 지경이다.

일각에서는 한전의 회사채 발행 한도를 기존 대비 2.5배 높인 ‘한전법 개정안’이 우여곡절 끝에 국회를 통과했다는 점에서 이런 소폭의 요금 인상 단행은 예정된 결과라는 지적도 나온다. 정부는 한전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지 못할 경우 한전의 자금 조달을 위해 내년도 전기요금을 시장 기대치 수준으로 높인다는 방침이었다. 실제 이달 초 한전법 개정안이 국회에서 부결됐던 다음 날(9일) 한전 주가는 8.5% 급등하기도 했다.

정부로서는 고물가뿐만 아니라 글로벌 경기 침체로 기업이 어려워지고 있는 상황에서 전기료를 크게 올리는 데 따른 산업계의 불만도 외면하기 힘들었을 것으로 보인다. 실제 이 장관은 15일 국회에 출석해 “올해 기준연료비 인상 요인이 1㎾h당 50원 정도 형성됐다”고 밝히며 대폭의 요금 인상 가능성을 시사했지만 ‘전기요금 정상화’가 ‘물가 안정 논리’ 등을 이기지 못한 셈이 됐다.

정부의 이번 결정으로 지난해 도입된 ‘연료비연동제’는 사실상 무력화됐다. 연료비연동제는 최근 1년간 연료비 평균인 ‘기준연료비’와 최근 석 달간 연료비 평균인 ‘실적연료비’ 등을 기준으로 전기요금을 결정한다. 반면 내년 1분기 전기요금은 관련 산식과 사실상 무관하게 결정됐다. 정부는 연료비연동제 도입 당시 ‘전력량 요금을 필요시 갱신할 수 있다’는 문구를 삽입했던 만큼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요금 인상 폭이 시장 전망치를 크게 하회하며 한전은 내년에도 천문학적 수준의 회사채를 찍어내야 한다. 한전은 올해에만 전년(10조 4300억 원)의 세 배가 넘는 31조 8000억 원의 회사채를 발행한 데 이어 은행 등 금융권 차입까지 늘리고 있다. 금리 상승에 따라 신년에 이자 비용은 더 가파르게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한전과 같은 공기업 부채는 결국 국민이 공공요금과 같은 형태로 추후에 부담해야 된다는 점에서 결국 후세대에게 부담을 떠넘긴다는 비판이 제기될 수밖에 없다.

한전이 이처럼 빚을 갚는 데 힘을 쏟다 보면 송·배전망 구축 등 전력망 구축에 소홀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높다. 문재인 정부의 ‘묻지마 신재생’으로 올해 신재생 발전설비가 원전설비의 1.2배 수준으로 높아져 이들 신재생 설비를 계통망에 연결하기 위해서는 천문학적 비용을 쏟아부어야 한다. 반면 한전은 올해 전력망 구축 예산을 기존 계획안 대비 4500억 원 줄이는 등 자구책 마련에 집중하고 있다.

한편 정부는 이번 요금 인상에 따른 경제 취약계층 부담 절감을 위해 기초생활수급자 등에게는 내년도 요금 인상분을 적용하지 않기로 했다. 또 농어촌 전력량 요금 인상분(11원 40전)은 3년에 나눠 인상하도록 해 부담을 최대한 덜어줄 방침이다.

세종=양철민 기자 chopin@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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