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사는 이야기] 일출(日出)은 어디서나 아름답다

2022. 12. 30. 1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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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거하는 금강정사에는
매일 다른 해가 떠오른다
그러나 제각각 장엄하다
일출은 어디서나 장엄하다

내가 사는 절의 대웅전은 동향이라, 대웅전 앞에서 바라보는 일출 장면이 일품이다. 멀리 관악산과 어깨를 나란히 한 주위 산들은 태양이 떠오르는 것을 장엄하게 해준다. 해가 떠오르는 장면은 마치 교향악 같다. 해가 떠오르기 한참 전부터 동녘 하늘은 붉어진다. 구름이 움직이면서 그 빛깔은 점점 사방으로 퍼져간다. 교향곡의 1악장에서 2악장으로 넘어가는 장면이다. 나뭇가지 사이로 보면 장작불로 다비식을 하는 것 같은 풍경 앞에서 음악이 빨라지고, 어느 순간 칼리 여신이 악마를 물리치고 혀를 쑥 내밀듯이 태양이 솟아오른다. 아니다. 만해(한용운)선사의 시 '일출'에서처럼 "그는 숭엄, 신비, 자비의 화신"이어서, "눈도 깜짝이지 않고 바라보는 나는/ 어느 찰나에 햇님의 품으로 들어가버렸다".

도량을 산책하던 나는 해가 솟아오르기 전부터 장면이 조금씩 달라질 때마다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찍는다.

우리는 대체로 일상 공간 속에서 펼쳐지는 일출의 장엄을 놓치고 산다. 대체로 여행 중에 경험한 일출이 일생의 기억이 된다. 나에게는 인도에서 밤 기차를 타고 가다가 새벽에 맞이한 일출, 인도의 최남단 칸냐쿠마리에서 경험한 일출, 히말라야의 푼힐과 안나푸르나에서 맞이한 일출, 미얀마 바간의 쉐지곤 파고다에서 만난 일출이 잊히지 않는다.

스리랑카에서는 스리파다(해발 2243m)에 일출을 보러 갔다. 스리파다는 '성스러운 발자국'이라는 뜻이다. 불교도는 이를 붓다의 발자국이라고 생각하고, 힌두교도는 시바의 발자국이라 생각하며, 기독교도나 이슬람교도는 최초의 인간 아담의 발자국이라 생각한다. 스리파다의 일출을 보기 위해서는 아예 하루 전부터 움직인다. 미리 올라가서 좋은 곳에 자리를 잡고 기도한 후에 일출을 보기 위해서이다. 우리 일행은 너무 일찍 올라가면 추워서 힘들 것이라고 생각한 나머지 한숨 쉬고 올라갔다가 시간이 임박하여 부리나케 산을 올랐다. 오르다 보니 정말 많은 이들이 스리파다의 일출을 보기 위해 계단을 오르고 있었다. 그 대열 속에는 개들도 끼어 있었다. 개들은 각자 마음에 드는 한 사람을 꾸준히 따라갔다가 그가 내려올 때 함께 내려온다. 그렇게 어렵게 경험했던 스리파다의 일출 장면은 잘 떠오르지 않는다. 관전 포인트에 너무 많은 사람이 몰려 있다 보니 앞 사람이 가려서 잘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여행 중에 경험한 것도 소중하지만, 진정으로 소중한 것은 일상 속에서 감동을 느끼는 것이다. 우리가 경험하는 것들을 잘 알아차리고 산다면, 세상은 참으로 아름다운 일들이 많고 감명 깊은 일들도 많다. 바로 지금 나는 금강정사에서 그 어느 때보다 장엄한 일출을 거의 날마다 경험하고 있다. 거의 날마다 경험하는 이유는 일출 장면이 매일 다르고, 해가 떠오르는 위치도 매일 조금씩 달라지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 때는 동북쪽에서 떠오르던 해가 동지 때는 동남쪽에서 떠오른다. 동남쪽에서 떠오르던 해는 동지가 지나면 매일 조금씩 왼쪽으로 이동하여 떠오른다. 우리 절에서 바라보면 거의 똑같은 두 개의 봉우리가 나란히 서 있는 곳이 있는데, 지난 1월 1일에는 그 쌍둥이 봉우리가 만나는 지점에서 해가 솟아올랐다. 다가오는 새해 첫날 나의 일출 관전 포인트는 바로 작년과 똑같은 지점에서 해가 솟아오르느냐이다.

새해 첫날, 많은 사람들이 1년의 기억을 꽉 채워줄 일출을 보기 위해 집을 떠날 것이다. 깊고 풍부한 감동을 위해 길을 떠나는 것은 훌륭하다. 그러나 일이 바빠서, 건강에 문제가 있어서 길을 떠나지 못하더라도 실망하지 말자. 일출은 동해안이나 높은 산에서만 보이는 것이 아니다. 유심히 살펴보면 우리의 근거리에서도 일출은 매일 장엄한 풍경을 연출한다.

[동명 스님 광명 금강정사 총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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