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언제까지 은행 옆구리만 찌를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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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용등급이 낮은 저신용자들이 대출을 중도상환할 경우 중도상환수수료를 받지 않겠다고 5대 은행들이 발표했다.
정부가 저신용자들에게 좀 더 낮은 이자율이 적용되는 정책금융상품을 만드는 건 필요한 일이고, 중도상환수수료가 부담스러워 대출 갈아타기를 주저하는 걸 막기 위해 중도상환수수료 부담을 줄일 방법을 궁리하는 것은 매우 세심한 행정이다.
이번 일도 결국 은행 주주들의 돈을 저신용자들의 주머니로 옮기는 일을 정부가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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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저널=이진우 MBC 《손에 잡히는 경제》 앵커)
신용등급이 낮은 저신용자들이 대출을 중도상환할 경우 중도상환수수료를 받지 않겠다고 5대 은행들이 발표했다. 물론 자발적인 것은 아니다. 2022년 12월초 당정협의회에서 논의됐던 사안이 현실화한 것이니, 결국 정부와 여당이 은행들을 압박해서 받아낸 것이다.
그렇다고 은행들이 큰 손해를 볼 것 같지도 않다. 저신용자들이 거액의 대출을 받았을 가능성도 적고, 대출을 갚을 여력이 갑자기 생길 가능성도 희박하니 실제로 중도상환수수료를 면제받을 가능성은 높지 않다. 그러나 이건 어쩌면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근간을 흔드는 매우 심각한 사건일 수도 있다. 정부가 저신용자들에게 좀 더 낮은 이자율이 적용되는 정책금융상품을 만드는 건 필요한 일이고, 중도상환수수료가 부담스러워 대출 갈아타기를 주저하는 걸 막기 위해 중도상환수수료 부담을 줄일 방법을 궁리하는 것은 매우 세심한 행정이다.
그런데 그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이 은행들의 옆구리를 찔러 비용을 부담하도록 하는 것이라면 그건 매우 심각한 문제다. 중도상환수수료는 은행과 고객이 대출계약을 맺을 때 계약서에 명시한 항목이다. 대출을 실행하기 위해서는 인건비를 비롯한 다양한 비용이 들고 은행은 그 비용을 대출이자를 통해 보전받는데 대출을 너무 일찍 상환하면 은행들은 그 비용을 충당할 방법이 없어지기 때문에 부과하는 비용이다. 그걸 정부가 일방적으로 받지 말라고 하는 건 사인 간 계약에 정부가 부당하게 개입하는 것이다. 서민들을 돕기 위한 것이라면 정부가 예산으로 지원해야 할 일이지, 은행들에게 그거 좀 안 받으면 안 되냐고 한마디 던져서 유야무야 넘길 일이 아닌 것이다.
그동안 우리는 이런 중대한 일을 단지 사소해 보인다는 이유로 대수롭지 않게 넘겨왔다. 그 결과로 은행들은 걸핏하면 크고 작은 정부 정책에 동원됐다. 이번 일도 결국 은행 주주들의 돈을 저신용자들의 주머니로 옮기는 일을 정부가 한 것이다. 불쌍하다고 그 옆집에 사는 사람이 그 서민들을 도우라고 하면 그건 이상하다고 생각하면서도 은행 주주들이 저신용자들을 도우라고 강요하는 이런 정책에 대해서는 별로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은행들이 이익을 많이 올리고 있다는 것도 이런 편법을 정당화하지는 못한다. 예대마진이 주요 수익원인 은행들이 과도하게 많은 이익을 보고 있다면 그건 은행들이 충분한 경쟁을 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정부가 해야 할 일은 은행들이 예금이자를 더 많이 주고 대출이자를 더 많이 깎아주는 경쟁을 할 수 있게 압박하는 것이지, 수익을 많이 올리지 않았느냐면서 뭐라도 뒤로 내놓으라고 옆구리를 찌를 일은 아니다.
은행들이 올린 이익이 정부가 부여한 라이선스를 바탕으로 얻어낸 불로소득처럼 생각된다면 은행이나 통신사 등 정부가 허가한 업종의 법인세율을 별도로 높이면 될 일이다. 은행들이 올리는 이익이 부당하다면 부당한 이익을 올리지 못하게 제도적으로 막아야 하고, 부당한 게 아니라면 이익이 크더라도 그걸 시비해서는 안 된다. 가장 나쁜 것은 그 이익이 부당한지 아닌지를 따지지 않고 은행들이 거둔 그 이익을 정부나 여당의 정치적 목적에 사용하도록 압박하는 것이다.
은행도 쉽게 돈을 벌고 그중 일부를 정부가 필요할 때 적당히 토해 내는 게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일'일 수 있다. 이렇게 하든 저렇게 하든 따지고 보면 결국 그 돈이 그 돈이겠으나 그 절차와 형식을 그렇게 해서는 안 될 일이다. 우리는 이제 이런 사소한 것들의 합리성까지도 챙겨야 할 수준의 나라가 됐다.
※ 외부 필진의 칼럼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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