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수수료 받고 명의 대여"···'빌라왕'들 한통속이었다
건축회사 연결고리로 수익 나눠
'바지 사장' 아닌 사실상 '파트너'
범죄수법·사후대처 등 공유도
경찰 "사기 일당 공범관계 수사"
갑작스러운 죽음에 대해 각종 의혹이 끊이지 않았던 ‘빌라왕’ 김 모 씨가 빌라 3000여 가구를 소유한 권 모 씨, 박 모 씨 일당과 한통속이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이들은 배후 세력에 의해 움직이는 ‘바지 사장’이라기보다는 일정 수수료를 받고 명의를 대여한 ‘범죄 파트너’에 가까웠다. 김 씨와 권 씨 일당의 명의를 빌려 쓴 모 건축회사는 부동산 컨설팅 명목으로 영업 지점을 차린 뒤 피해자들에게 얻은 수익을 일정 비율 나눠 가졌다.
30일 서울경제 취재를 종합하면 김 씨와 권 씨 일당은 각각 D하우징과 P주택을 앞세워 독립적으로 전세사기 행각을 벌이면서도 H건축회사에 명의를 빌려주고 일정 수수료를 챙겼다. 이들은 H사를 연결 고리로 범죄 수법, 사후 대처 과정 등을 공유한 것으로 파악됐다.
전세사기 소송을 준비 중인 박소예 법무법인 제하 변호사는 “형사 고발 등으로 문제가 불거지자 김 씨 일당이 ‘세금이 체납돼 빌라가 압류됐으니 3000만 원과 매입금을 주면 압류를 풀고 빌라 소유권을 넘기겠다’며 피해자들에게 합의를 종용했다”며 “얼마 뒤 다른 일당들이 같은 수법으로 제의를 해왔다”고 전했다.
이들 전세사기범과 연관된 H사는 수도권 일대에서 빌라를 주로 짓는 건축회사다. H사는 사실상의 자회사인 HJ 부동산 컨설팅 회사를 차린 뒤 서울 강서구, 인천, 부천, 경기도 광주 일대에 영업 지점을 개설했다. 영업 지점은 H사의 모 이사가 투자해 월세까지 지급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들은 회사 내부 및 외부 소속 명의 대여자의 이름을 빌려 피해자들에게 접근했다. H사는 이 같은 수법으로 전국에 7000가구가 넘는 빌라와 오피스텔을 무자본으로 갭투자하고 수백억 원의 수수료를 챙긴 것으로 파악됐다.
사기 행각의 핵심 인물로 추정되는 H사의 A이사는 H사 분양 현장에서 B본부장을 만났다. B본부장 등은 인천과 부천 일대에서 활동하는 일명 ‘깡통 주택 전문’ 부동산 직원이었다. 이들은 깡통 주택 영업 조직에 대한 정보를 교환한 뒤 HJ 부동산 컨설팅 회사를 설립했다. HJ사의 영업 지점은 A이사와 B본부장의 전액 투자로 이뤄졌으며 배분된 수익금 역시 이들의 개인 계좌로 송금된 것으로 파악됐다.
본지 취재 결과 최근 논란이 된 김 씨와 권 씨 등 일당은 이 회사의 외부 명의 대여자로 활동한 것으로 확인됐다. A이사는 회사 내부 명의 대여자들을 직접 관리하며 동시에 외부에서 활동하던 김 씨와 권 씨를 또 다른 명의 대여자로 각 영업 지점에 소개했다. 김 씨는 이 과정에서 수익이 예상되는 빌라는 개인 명의, 보증금을 돌려줄 수 없는 깡통 빌라는 본인이 설립한 D하우징 명의로 분리 매입한 것으로 추정된다.
전세사기 일당의 커넥션이 밝혀지면서 이들로부터 분리된 또 다른 사기 조직에 대한 우려도 커지고 있다. 이들은 아직도 계속해서 수도권 일대에서 사기 행각을 벌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달 12일 숨진 채 발견된 ‘20대 빌라왕’ 송 모 씨 역시 같은 회사의 명의 대여자로 활동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게 됐다. 피해를 당한 것으로 의심되는 잠재적 피해자들은 아직 2년의 전세 만기가 도래하지 않아 피해 사실조차 인지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김 씨를 포함한 전세사기 행각 전반을 수사하고 있는 서울경찰청 금융수사대는 “수사 중인 사안이라 자세한 내용은 알려줄 수 없다”면서 “전세사기 일당 전반의 공범 관계에 대해 수사를 이어가고 있다”고 밝혔다. 권 씨와 박 씨 일당은 경기남부경찰청에서 수사를 마친 뒤 현재 형사재판을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김 씨의 죽음과 사기 행각을 둘러싸고 그동안 각종 의혹들이 끊이지 않았다. 40대라는 젊은 나이에 급사했고 단독 범행으로 보기에는 피해 규모가 너무 커서 배후 세력이 있다는 의혹이었다. 김 씨의 말투가 어눌해 지적장애를 앓고 있었던 것 아니냐는 피해자들의 증언도 의혹을 키워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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