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전세사기 피해대책, 다 잃고 나서야 외양간 고치기

고가혜 기자 2022. 12. 30. 1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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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내용 요약
국토부와 HUG, 경찰, 각 은행 등 대책 허점 多
보험 가입자·미가입자·일부가입자 모두 문제
정부 법 개정 의지, 이미 피해를 입은 이들은?


[서울=뉴시스] 고가혜 기자 = 이른바 '빌라왕' 김모씨의 사망 소식이 전해진 직후 주택도시보증공사(HUG)측에 전화를 걸었다. 기자가 '왜 임차인들이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하고 있는지'를 묻자 돌아온 답변은 "주택을 1000채 이상 소유한 다주택자가 사망한 경우는 처음이라서"였다.

통상 임대인이 사망하는 경우 주택을 상속받은 가족을 통해 보증이행청구 절차가 진행되는데, 상속 대상자가 수십억원의 체납 세금 등 부담에 상속을 포기하는 경우는 미처 예상치 못했다는 것이다.

이번 사건으로 전세 임차인들의 재산권 보호를 위해 국토부와 HUG, 경찰, 각 은행 등 유관 기관이 마련했던 전세사기 피해대책의 허점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피해자들이 가장 분통을 터뜨리는 부분은 총 1139채 주택 중 614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통상 전세계약시 주의해야 한다는 확정일자와 보증보험 등 안전장치를 갖췄다는 점이다. 조심해야 할 부분을 다 조심했는데도 전세사기의 피해자가 될 것이라고 누가 예상이나 했겠는가.

김씨는 조직적으로 '무갭투자'를 일삼던 전세사기꾼이었지만 당국은 그의 사망 전까지 이러한 불법 행위를 잡아내지 못했다. 그에겐 62억5000만원의 체납 세금도 있었지만 임차인들은 이를 알 턱이 없었고, 전세 계약도 무리 없이 계속 체결됐다.

논란이 확산되자 HUG와 국토부는 보증보험에 가입한 피해 임차인들을 모아 설명회를 열고 구제방안을 설명했지만 임차인들의 원성은 사그라들지 않았다. 보험청구를 위해 필수인 임차권 등기 신청을 하려면 상속이 가능한 김씨의 4촌이내 가족들의 주소를 모두 찾아내 내용증명을 보내야 한다거나, 1인당 평균 550만원 상당의 비용을 들여 '상속대위등기'를 해야 한다는 등의 복잡한 절차가 이들 앞에 놓여 있었기 때문이다.

또 ▲전세 계약 후 임대인이 죽거나 바뀌어도 임차인에게 이를 공지하는 시스템이 없고 ▲형사고소를 해도 경찰에선 임대인이 이미 사망했다는 이유로 공범 수사까지 '공소권 없음' 종결해 버리며 ▲피해자가 수차례 전화를 걸어도 상담인력 부족 문제로 연락이 닿지 않는 문제 등 실무적인 문제도 드러났다.

최근 국세징수법 개정을 통해 곧 세입자가 집주인 동의 없이도 국세 체납 여부를 열람할 수는 있게 됐지만, 이 역시 전세계약을 마친 뒤 직접 세무서를 방문해야만 확인이 가능해 맹점이 여전했다.

게다가 이들이 현재 보상 절차를 모두 마치려면 최소 6개월 이상의 시간이 필요한데, 이들이 전세대출을 받은 각 은행들은 2~6개월 밖에 대출연장이 어렵다거나, 지점별 행원별로 대출연장이 어렵다는 답변도 나오는 등 혼란이 계속됐다.

여기에 보증보험에 가입하지 못한 미가입자, 그리고 임대사업자가 의무가입해야 하는 '임대인 보증보험' 중 40%만 보전이 되는 일부보증 가입자들은 직접 경매에 나서 피해를 보전해야 하고, 직접 낙찰을 받아와도 국세와 HUG의 구상권 등으로 받은 돈이 다시 회수되고 나면 남는 금액이 없다는 점도 문제점으로 제기됐다.

원희룡 국토부 장관은 "경매를 통해 받은 금액을 국세보다 소액 사기 피해자들이 먼저 가져갈 수 있도록 법을 바꾸는 것도 정부가 준비하고 있다"는 등 미비한 제도에 대한 법 개정 의지를 밝혔지만 당장 대출 만기와 강제 경매 기일 등이 다가오고 있는 전세사기 피해자들에게 이는 먼 나라 이야기일 뿐이다.

정부는 이런 경우가 처음이라며 양해를 구하고 있지만, 전국에는 김씨보다 더 많은 전세금을 떼어먹은 악성 임대인이 17명이나 더 있었다. 또 이미 지난해부터 수백 채 이상의 집을 소유한 임대인이 사망해 임차인들이 피해를 고스란히 떠안은 케이스도 발생하고 있었다고 피해자들은 설명한다.

과연 정부와 유관 기관들이 전세사기 피해 대책의 사각지대를 이제야 알게 된 것인지 아니면 알고도 늑장 대응을 한 것인지 알 수 없지만, 확실한 것은 정부가 이미 상당한 피해자가 발생한 뒤에야 외양간 고치기에 나섰다는 점이다. 제도의 미비로 피해를 입은 임차인들은 이미 국가의 '2차 가해'를 주장하며 고통을 호소하고 있는 만큼 빠르고 실효적인 정부의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

☞공감언론 뉴시스 gahye_k@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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