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이 사는 세상 위해 욕설도 혐오도 견뎌”

2022. 12. 30. 1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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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근길 지하철 타기’ 1년…박경석 전장연 상임공동대표 인터뷰

“출근길에 지하철 타기와 선전전을 통칭해 ‘지하철 행동’이라고 부르기로 했다. 지하철 행동은 2023년에도 필요할 때마다 매일매일 하겠다. 용산 대통령실 인근 삼각지역이 중심이다. 기획재정부가 제대로 소통하고 논의하는 자리를 만든다면 우리는 지하철 행동을 멈출 수 있다. 기다리겠다.”

사진 / 강윤중 기자



박경석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 상임공동대표(62)는 지난 1년 동안 모두 47번의 ‘출근길 지하철 타기’를 이끌었다. 지하철 선전전도 252일 동안 진행했다. “이동하고 교육받고 노동하며 지역사회에서 함께 살자”라고 외쳤다. 장애인을 바라보는 시각을 ‘시혜’와 ‘동정’에서 ‘권리’로 치환시키기 위해 노력했다.

박 대표는 12월 27일 주간경향과 인터뷰에서 “침묵하지 않았다. 포기하지 않았다”라며 사회가 장애인 권리에 관심을 두게 된 점을 올해의 성과로 꼽았다. 그러나 최근 국회를 통과한 2023년도 예산안에서 장애인 권리 예산이 정부안 대비 106억8000만원 증가한 데 그친 점을 비판했다. 전장연이 요구한 증액안의 0.8%에 불과하다.

이는 장애인 권리를 ‘비용문제’로만 접근하기 때문이라고 박 대표는 지적했다. 그는 과거 독일 나치가 ‘T4 프로그램’을 통해 장애인 약 30만명을 학살한 역사를 거론하며 “나치는 비용문제 때문에 장애인을 죽였는데, 비용을 이유로 장애인 차별의 구조를 개선하지 않는 한국사회도 본질은 T4 프로그램과 다르지 않다”고 말했다.

-올해 활동을 총평한다면.

“사회가 무관심과 배제, 격리, 시혜, 동정의 영역에 있던 장애인이라는 존재에 관심을 갖게 됐다. 관심은 긍정적인 것과 욕설·혐오 등 부정적인 것도 포함한다. 조사를 해봤더니 2022년 장애인 지하철 관련 언론보도가 약 5300건이나 되더라.”

-이렇게 1년 내내 장애인 문제가 이슈가 된 적이 있었는지.

“기존엔 장애인이 불쌍하게 죽어간다든지 특별한 사건이 있을 때만 반짝 얘기되고 금방 묻혔다. 기본적으로 시혜와 동정의 시각에 기반을 둬 감성을 자극하는 데 그쳤다. 물론 겉으로, 말로는 ‘장애인의 권리가 필요하다’고들 말한다. 특히 정치인들은 휠체어를 타고 리프트를 타면서 마치 장애인을 생각하는 것처럼 행동한다. 권리를 말로만 하는 것과 실천하는 건 큰 차이가 있다. 그나마 우리 사회에 실질적인 장애인 권리에 대한 인식이 확산하고 있다.”

-아쉬운 점은.

“2001년부터 21년 동안 장애인의 이동권 보장을 주장해왔는데 아직도 해결이 안 됐다. 출근길에 지하철을 타는 행동을 21년 전부터 해왔다면, 아마 지금쯤 문제가 해결되고도 남았을 것 같다. 세계 10위권 경제대국, 국민소득 3만달러가 넘는다고 자랑하는 한국사회가 이렇게도 지독히 장애인을 차별하는 불평등한 구조 속에 놓여 있는 게 아쉽다.”

-기억에 남는 인상적인 장면은.

“너무 많다. 동료들과 함께한 투쟁의 장면들을 잊을 수 없지만, 지하철을 탔을 때 한 고등학생의 모습이 인상 깊었다. 일부 승객이 욕설을 하면서 실랑이가 벌어졌다. 그 학생이 ‘장애인 이동권을 지지합니다’라는 문구를 휴대전화 화면에 적어서 얼굴 앞에 들고 있었다. 정말 눈물이 날 뻔했다. 욕하는 승객도 많지만 지지한다는 내용이 담긴 쪽지를 건넨 분도 많다.”

-지하철 승객들의 반응은 변화가 있었나.

“시간이 지날수록 혐오세력이 더 용감해졌다. 특히 서울시가 무정차를 발표하고 더욱 그랬다. 내용도 직설적이고 혐오의 강도도 훨씬 높아졌다. 특히 국민의힘 측에서 장애인들에게 썼던 부정적인 용어들을 승객들이 그대로 쓰더라.”

-일 년 동안 계속 지하철을 타게 되리라고 예상했나.

“쉽게 끝나지 않을 것 같긴 했다. 윤석열 정부는 우리를 철저하게 무시하는 태도를 갖고 있다. 진지한 소통을 하려고 하지 않는다. 의미 있는 변화를 약속하고 단계적으로 문제를 해결해 나가자는 제시조차 하지 않으니 우리는 멈출 수가 없다. 권력자들이 우리가 불법을 저지르도록 유도해 죽이려고 한다는 공포도 느꼈다.”

-욕설과 혐오 발언에 힘들진 않았는지.

“동료들은 매우 매우 힘들어한다. 나는 젊었을 때 해병대를 다녀왔다. 아무튼 욕을 먹는 데는 맷집이 세다. 그런데 지속해서 듣게 되면 거기에 매몰되더라. 세상이 그렇게밖에 안 보이고 야속하게 보인다. 또 이걸 조장하는 세력도 있지 않나. ‘세상이 왜 이래, 다른 세상도 가능할 텐데’라는 불편함을 느끼고 지치기도 했다. 이렇게 외쳐도 바뀌지 않는 이 무도한 사회의 흐름에 대한 암담함도 느껴졌다.”

박경석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상임공동대표가 지난 12월 20일 서울 5호선 광화문역에서 지하철에 탑승해 장애인 권리 예산 보장을 촉구하고 있다. / 연합뉴스



-독일 나치의 ‘T4 프로그램’을 강조하는데.

“나치는 1939년부터 돈을 이유로 장애인 30만명 이상을 생체실험에 이용해 죽였다. 그 장소의 이름이 ‘T4’이다. 넷플릭스에 공개된 영화에서 이런 내용을 다룬 걸 보고 알게 됐다. 나치의 공식 포스터를 보면 장애인 아동 1명에게 국가가 지원할 돈이면, 비장애인 5명을 먹여 살릴 수 있다는 내용이 있다. 노동자 한 명이 장애인을 부양하는 모습도 있다. 장애인을 비용의 문제로 본 것이다. 한국사회도 본질은 T4와 다르지 않다. 나치는 폭력적인 살인을 기반으로 했고, 한국은 시혜·동정을 기반으로 비용문제가 더해져 차별의 구조들을 지속적으로 강화하고 있다. 비용은 결국 예산이다. 그래서 우리는 ‘장애인 권리 예산’이라고 표현한다. 말로는 ‘장애인 먼저’라는 식의 캠페인을 하지만, 실질적으로 사회참여의 가장 후순위가 장애인이다. 조금만 어려워지면 비용 때문에 가장 먼저 배제한다.”

-예를 들면.

“탈시설 문제가 특히 그렇다. 지역에서 배제해 시설에서 살게 하는 것을 ‘보호’라고 말한다. 그러나 감옥이다. 감옥처럼 한 방에 평균 5명이 산다. 시설에 있으면 관리하기 쉽다. 지역에 나오면 관계도 만들어야 하는 등 골치가 아픈 것이다. 핵심은 돈이다. 24시간 지원이 필요한 장애인을 지역에서 살게 하려면 비용이 든다. 탈시설에 반대하는 건 비용 때문이다. 독일 나치의 T4와 실행 방식은 다르지만 본질적인 내용은 같은 것이다. 부모가 장애인 자식을 죽이게 만들지 않았나. 또 탈시설은 전장연이 주장한 게 아니다. 한국도 비준한 유엔장애인권리협약에 명시돼 있다. 지난 9월 유엔장애인권리위원회가 한국에 권고사항을 제시했다. 탈시설 가이드라인까지 같이 보냈다. 아주 구체적인 세부지침까지 포함돼 있다.”

국회는 12월 24일 2023년도 예산안을 최종 통과시켰다. 지난 9월 정부가 예산안을 국회에 제출하고 각 상임위원회와 예산결산특별위원회의 심사를 거쳤다. 상임위 단계에서 장애인 권리 예산은 정부안보다 6650억원가량 증액됐다. 전장연이 요구한 증액 1조3000억원의 51%에 해당하지만, 의미 있는 진전으로 평가됐다. 하지만 여야의 최종 합의안에서 6650억원은 106억8000만원(상임위 증액안 대비 1.6%)으로 쪼그라들었다. 전장연 요구액의 0.8%다. 증액된 분야는 고용노동부가 추진하는 장애인근로지원인 예산이다.

-2023년 예산안을 어떻게 평가하나.

“너무 화가 났다. 정부는 지난 9월 내놓은 예산안에서 우리의 요구를 묵살했다. 10월에 국정감사 이후 국회 상임위에서 예산안을 논의할 때 여야 의원들 찾아다니면서 예산 필요성을 설득했다. 그렇게 해서 상임위에서 정부안보다 총 6650억원을 늘렸다. 이렇게 여야가 합의하고 우리도 1년 내내 외쳐왔기 때문에 양심이 있으면 6650억원 전부는 아니더라도 여기에 가깝게 통과될 것으로 기대했다. 그런데 여야 최종 합의에서 약 106억8000만원에 그쳤다. 가장 주된 원인은 기재부가 반대했기 때문이다. 아쉬운 건 여야 실세 의원들이 자신의 지역구 예산은 다 챙겼다는 점이다. 믿음을 가지고 장애인 권리 예산 반영을 기다렸지만 좌절됐다.”

-가장 기대했던 예산은.

“적어도 이동권 관련 예산은 국회 상임위의 증액안이 그대로 반영될 줄 알았다. 바로 특별교통수단(장애인 콜택시) 운영비 보조 예산이다. 정부안은 237억원이다. 국회 국토교통위원회는 631억원을 증액해 총 868억원으로 책정했다. 특별교통수단의 운영비를 국비로 지자체에 지원하는 내용이다. 정부는 1대당 1900만원으로 책정했는데, 이건 운전원 1명의 인건비도 안 된다. 시내·시외·고속버스를 타고 장애인이 비장애인과 같이 이동할 환경은 마련되지 않았다. 시내버스는 대·폐차할 때 저상버스 도입을 의무화했지만, 불가능한 노선이 20% 정도나 된다. 저상버스를 다 도입하려면 10년 이상 걸린다. 시외버스는 2027년부터 개발된다고 한다. 시외버스까지 장애인이 탈 수 있으려면 2040~2050년은 돼야 할 것이다. 기약 없는 지독한 불평등을 해소할 수 있는 게 특별교통수단이다. 국비 지원 없이 어느 지자체가 여기에 우선순위로 예산을 들이려 할까. 이것도 6개월짜리 사업이다. 장애인의 시간은 시간도 아닌가.”

-2023년 활동 계획은.

“기재부가 조금 더 책임지게끔 투쟁을 해야 할 것 같다. 기재부에 대한 문제의식이 바로 T4 프로그램이다. 장애인 권리를 비용문제로만 바라본다. 장애인 관련 사업의 효율성이 뭐냐, 소모적이고 낭비성 예산 아니냐, 이런 인식이다.”

-출근길 지하철 타기도 계속하나.

“48차 출근길 지하철 타기는 1월 2일에 한다. 앞으로 지하철 타기와 선전전을 통칭해 ‘지하철 행동’이라고 부르기로 했다. 지하철 행동은 필요할 때마다 매일같이 하겠다. 될 때까지 하겠다. 기재부가 제대로 소통하고 논의하는 자리를 만든다면 우리는 멈출 수 있다. 기다리겠다.”

-오세훈 서울시장이 ‘무관용 원칙’에 따라 강경대응하겠다고 예고했다. 얼마 전엔 무정차 조치도 했는데.

“지금까지 관용한 게 무엇이 있었나. 장애인 권리를 보장하지 않았는데, 무책임한 원칙이다. 이것부터 반성하는 게 좋겠다. 무정차는 이렇다. 권력이 사회적 약자로 불리는 서민을 활용해 비장애인과 장애인을 갈라치고 혐오를 조장하고 욕설이 난무하게 만든 조치다.”

박경석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상임공동대표가 12월 27일 서울 종로구 노들장애인야학에서 주간경향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 강윤중 기자



-국민의힘에서도 시위 재개를 비판한다.

“지하철 행동은 국가가 헌법에 명시된 권리보장의 책무에서 장애인을 배제해온 데 대해 정당한 ‘저항권’을 행사한 것이다. 저항권은 불법적인 국가권력의 행사에 대해 저항할 수 있는 권리다. 헌법을 지켜야 할 국가권력이 되레 혐오와 차별을 선동하며 전장연과 시민을 갈라치는 데 앞장서고 있다.”

법원은 12월 19일 서울교통공사가 전장연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조정안을 제시했다. 공사는 현재까지 발생한 장애인 사망사고와 관련해 유감스럽게 생각하고 19개 역사에 엘리베이터 설치를 2024년까지 마치도록 했다. 전장연은 출근길 시위로 열차 운행이 5분 지연될 때마다 공사에 500만원을 지급하도록 했다. 법원의 조정안을 수용할지 여부는 2023년 1월 4일까지 결정해야 한다. 한쪽이라도 수용하지 않으면 다시 재판 절차로 돌아간다. 공사 측은 “조정안이 승객들에게 불편 등 어떤 영향을 줄 것인지를 두고 숙고하고 있다”고 밝혔다.

-법원의 조정안은 어떻게 할 것인가.

“현재 회원들의 의견을 듣고 있다. 찬성 의견, 분노해 반대하는 의견이 있다. 분노하는 지점은 ‘유감’이라는 표현이다. 사람이 죽었는데 책임이 있는 공사의 사과가 아닌 유감으로 정리된 게 문제라는 반응이다. 또 공사가 엘리베이터 설치 약속을 지키지 않아도 제재할 수 있는 단서가 없다. 우리에겐 열차 운행이 5분 이상 지연되면 500만원씩 지급하라고 했다. 서울시는 2004년, 2022년까지 엘리베이터를 모두 설치하겠다고 약속한 바 있으나 지키지 않았다.”

-직접 정치를 해야겠다는 생각도 해봤는지.

“정치는 권력에 대한 의지가 매우 책임 있게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권력은 시민을 향해야 하고 정당해야 한다. 나도 그중에 한 사람일 수도 있다. 그러나 나는 권력에 대한 의지보다 ‘권리에 대한 의지’가 더 많다. 권력투쟁할 체력이 있다면 권리투쟁하는 걸 택하겠다. 힘들더라도 이 사회의 공동체를 만들어가는 데 필수적이라고 생각한다. 권리투쟁에 남으려는 사람이 별로 없다. 많은 후배가 권리투쟁에 방점을 찍고 정치권력을 포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포위하면 우리는 ‘포위정치’를 할 수 있다.”

-새해 목표는.

“견디는 것이다. 혐오든 욕설이든 이 사회 본질을 나타내주는 현상을 더 많이 겪고 싶다. 더 당당하게 가고 싶다.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그 과정에서 관계는 변할 수 있다는 희망이 있다. 우리가 사회로 나가면 공동체는 우리를 몰아낼 것이냐, 같이 살 것이냐를 고민할 것이다. 한국은 같이 살 것을 고민하는 긍정적인 사회라고 생각한다. 그런 분이 많이 있다고 본다. 우리를 배제하지 않는 이 사회의 영역을 확장시키는 게 목표이다. 2023년에는 ‘장애인 권리 예산·입법’이라는 표현을 쓰겠다. 탈시설지원법, 장애인권리보장법, 장애인평생교육법, 중증장애인 고용촉진 특별법 등도 국회에서 처리될 수 있도록 하겠다.”

-빠뜨렸거나 꼭 하고 싶은 얘기가 있다면.

“지난 21년간의 외침은 이제 22년으로 넘어간다. 2023년에는 비장애인만 타는 ‘시민권 열차’에 장애인도 탑승시켜 주십시오. 이렇게 새해 인사를 드리고 싶다. 제발 무정차하지 마시고 함께 탑승시켜 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정희완 기자 rose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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