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음' 입은 먹선, 동양화의 내일을 그리다

김슬기 기자(sblake@mk.co.kr) 2022. 12. 30. 1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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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산갤러리 '흔적의 흔적'
7명의 청년작가 작품 전시
동양화 틀 벗어난 시도로
입체적 시각 포만감 채워
정서원 '완벽한 거짓을 재구성하는 방법'. 【사진 제공=금산갤러리】

상상으로 채운 정원, 눈 덮인 겨울나무, 쌓아올린 색면, 푸른 점, 앙상한 나무, 필름 카메라로 찍은 옛 인물 등이 장지와 광목천, 비단 등 다양한 재료 위에 펼쳐진다. 먹과 분채 등 동양화 재료를 사용했을 뿐 보는 이에겐 그림의 '국적'이 뚜렷하게 드러나지 않는다.

금산갤러리에서는 동양화의 가능성과 확장성에 대한 고찰을 담은 그룹전 '흔적의 흔적'을 내년 1월 20일까지 연다. 이번 전시에는 MZ세대 작가 7명이 과거의 흔적을 보존하는 방식과 그 흔적에 기반해 그려낸 현재와 미래가 어떠한지를 보여주는 신작 35점이 걸렸다. 전시 개막을 하루 앞둔 지난 22일 만난 작가들이 저마다의 철학을 다채롭게 들려줬다.

'과거의 흔적' 섹션에 걸린 성소민은 목판과 조각칼로 기억의 흔적을 새기는 작업을 한다. 먹으로 검게 칠한 배경에 상처 자국처럼 각인된 흔적은 거침없고 투박하다. 성 작가는 "원래는 구상적이었는데 점점 추상적 형상으로 나아가고 있다. 기억을 칼로 새기고 먹을 사용하는데 재료주의적 탐구는 계속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혜진은 추사의 '세한도'를 보는 것처럼 쓸쓸하고 여백이 가득한 화폭을 걸었다. 추억의 고향일 수도, 소중한 장소였을 수도 있는 공간을 거친 먹선으로 그린 연작이 소개된다. 일상을 먹을 이용한 드로잉으로 그려내며 여러 차례 개인전을 연 주목받는 작가다.

하수민의 그림 제목은 특정한 날짜 혹은 시간이 적혔다. 추억의 필름 카메라로 찍은 옛 필름 속 인물을 장지에 먹과 분채로 그렸다. 하 작가는 "재현에 가까운 형식이지만 의도적으로 형태를 왜곡하거나 색을 덜어내 과거와 현재를 잇는 이미지를 보여주려 했다. 새로운 서사를 부여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현재의 흔적'에 걸린 장현호와 허유의 그림은 대조적이다. 장현호는 먹과 붓으로 가장 전통적인 방식으로 겨울의 풍경을 그렸다. 잎이 떨어진 나목(裸木)과 눈 덮인 나무의 쓸쓸함이 느껴지는 그림을 작가는 "무심코 지나가는 시간 속에서 빛과 계절의 변화를 먹의 톤으로 재현했다. 그림에서 어떤 시간을 상상해보길 권한다"고 말했다.

반면 허유의 작업은 이우환의 '조응'을 보듯 추상적이고 색채가 강렬하다. 'What is blue' 연작에서 비단에 찍은 푸른색의 점들은 저마다 농도와 채도가 달라 시각적 착시 효과를 만든다. 'Depth of Being'에는 심연으로 들어가듯 깊이를 알 수 없는 점이 사각의 틀과 조화를 이룬다. 동양화와 함께 철학을 전공한 허 작가는 "내 시선이 어디를 향하느냐에 따라 사물이 달라 보이는 걸 표현했다"고 말했다.

'미래의 흔적'에 걸린 정서원의 작품은 유년 시절 기억과 연관된 물건을 채집해 상상의 공간을 그려냈다. 기억은 흐려진 색감, 실물은 현실의 색감에 가깝게 표현했다. 정 작가는 "잡초와 선인장, 화병, 나무와 책 등을 무대장치 같은 느낌으로 배치했다"고 설명했다.

김지훈의 색면을 쌓아올린 입체 작업은 가장 이질적이다. 광목천에 채색한 색면을 캔버스 위에 산처럼 쌓아올렸다. 선들의 중첩은 우연, 의지, 계획 등 삶의 변화하는 리듬을 표현했다.

다채로운 변주로 가득해 시각적 포만감을 주는 전시다. 동양화의 시대적 역할에 대한 질문에 허유 작가는 "해외에는 서양화라는 말이 없듯이 동양화라는 틀에 갇히지 않는 다양한 작업과 사유를 선보이고 싶다"고 말했다.

[김슬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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