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방기본법에도 없는 '방음터널' 방재기준…안전 사각지대 지적
국토부 "PMMA 소재 전면교체·보강할 것"…업계 "현실성 낮아"
(과천=연합뉴스) 강영훈 권준우 기자 = 지난 29일 5명의 사망자를 포함해 46명의 사상자를 낸 경기 과천 제2경인고속도로 화재 사고로 방음터널의 사고 위험성이 재차 확인되면서 관련 안전 규정을 손봐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터널형 방음시설, 즉 방음터널의 경우 국내 도입이 시작된 2000년대 초반에는 관련 안전 규정이 전혀 없었다가 위험성에 대한 지적이 이어지자 2016년 '도로터널 방재시설 설치 및 관리지침' 개정을 통해 처음으로 방재 기준이 마련됐다.
그러나 이는 말 그대로 관리지침에 불과할 뿐 소방기본법 등에선 여전히 방음터널이 빠져있고, 관리지침의 경우 일반 터널에 적용된 기준을 그대로 적용하고 있어 화재에 취약한 방음터널에 적합하지 않다는 지적이 이어지고 있다.
소방기본법에도 없는 방음터널 안전 대책
30일 소방당국 등에 따르면 소방 관련 대부분 규정의 근거가 되는 소방기본법은 소방시설 설치 및 유지가 필요한 특정소방대상물 중 터널의 정의를 '차량 통행을 목적으로 지하, 해저 또는 산을 뚫어 만든 것'으로 명시하고 있다.
도로 위를 철제 구조물과 아크릴로 덮어 만드는 방음터널은 소방기본법상으로는 '터널'에 해당하지 않는다.
소방청이 2017년 7월에 제정한 '도로터널의 화재안전기준'도 마찬가지다. 이 기준에서 터널을 '지붕이 있는 지하 구조물'로 명시한 뒤 소방설비 기준을 세부적으로 나열하고 있지만, 방음터널은 역시 적용 대상이 아니다.
방음터널에 대한 방재 대책을 유일하게 언급하고 있는 것이 2016년 개정된 '도로터널 방재시설 설치 및 관리지침'이다.
이 지침은 길이와 교통량에 따라 위험도 지수를 총 4개 등급으로 나눠 기준에 따라 옥내소화전과 비상경보설비, 자동화재탐지설비, 비상조명등 등을 설치하도록 했다.
이번에 불이 난 방음터널의 경우 2등급(총연장 1천∼3천m·위험도 지수 19∼29)에 해당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실제로 화재 현장에는 구간마다 옥내소화전과 비상전화, 사이렌 등이 설치돼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이 방음터널은 안양방면 도로로는 830m 길이지만, 성남방면 도로에는 삼성산터널을 시작으로 1천600여m 이어져 양옆 길이가 다르다.
아크릴이 '불쏘시개' 역할 하는데…기준은 일반 터널과 동일
문제는 전날 사고처럼 불길이 크게 번질 경우 방음터널 자체가 녹아내리기 때문에, 일반 터널에 적용하는 방재 기준으로는 참사를 막기에 역부족이라는 점이다.
불이 난 방음터널은 철제 H빔으로 만든 구조체에 아크릴의 일종인 폴리메타크릴산 메틸(PMMA)을 덮어 만들어졌다.
PMMA는 일반 플라스틱과 비교해 열기에 강한 '방염' 소재이긴 하지만, 불연 소재는 아니기 때문에 고온의 열이 가해질 경우 불이 옮겨붙으며 녹아내리게 된다.
더구나 PMMA의 대체 소재인 폴리카보네이트(PC)의 열분해 온도가 455도인데 반해, PMMA는 290도에 불과해 열기에 더욱 취약하다. 그럼에도 PC보다 30% 이상 저렴한 가격 때문에 다수 현장에서 사용됐다.
일반 터널 내 화재처럼 유독가스를 빼내면서 발화원을 제거하면 되는 것이 아닌, 터널 자체가 불쏘시개가 되기 때문에 초기에 화재가 진압되지 않으면 일반 터널보다 훨씬 피해가 클 수밖에 없다.
도로터널 관리지침은 터널의 위험도를 길이와 교통량으로만 판단하고 있는 가운데 전문가들이 동일한 규모의 일반 터널보다 방음터널이 훨씬 위험할 수 있다고 지적하는 이유다.
공하성 우석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방음터널은 일반 터널보다 인화성 물질이 훨씬 많고, 이번 사고로 알 수 있듯 불이 퍼지는 속도도 빠르다"며 "미국 등 선진국은 방음터널에 불연재를 쓰게 돼 있으나 우리는 소재에 대한 규정도 전무하다"고 꼬집었다.
국토부 "PMMA 소재 방음터널 전면교체·보강할 것"…업계 "천문학적 비용 예상"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은 이날 서울지방국토관리청에서 대책 회의를 열고 "국가가 관리하는 55개 방음터널과 지자체가 관리하는 방음터널까지 전수조사하겠다"고 밝혔다.
원 장관은 "현재 공사 중인 방음터널에 대해서는 화재에 취약한 소재를 쓰고 있다면 공사를 전면 중단하고, 화재에 튼튼한 소재와 구조로 시공법을 바꾸도록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국토부는 이미 쓰이고 있는 PMMA 소재 방음터널은 전면 교체하거나 내화성 도료나 방화 보드로 보강한다는 계획이다. 터널 상부가 열리도록 하는 등의 방법으로 화재 대피와 구조 시간을 확보할 수 있는 안전조치도 강화할 방침이다.
그러나 업계에서는 국토부의 보강 작업 계획에 대해 고개를 갸웃거린다.
방음터널 시공 업계의 한 관계자는 "PMMA 소재가 사용된 방음터널에 대해 내화성 도료나 방화 보드를 보강하겠다는 발표는 근본 대책이 될 수 없다고 본다"며 "도료를 덧칠해도 겨우 수㎜ 수준일 텐데 불이 나면 원소재가 불에 탈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그는 "전면교체는 더욱 어렵다고 본다. 불이 난 방음터널의 길이 등을 고려하면 수십억원의 건설비가 들었을 거로 예상되는데, 전국의 터널을 재시공한다는 건 현실성이 떨어진다"며 "더욱이 PMMA 외 다른 소재는 단가가 더욱 비싸서 비용이 더 들 것"이라고 설명했다.
아크릴 제품 생산업체의 한 관계자는 "실제 현장에서는 단가 후려치기가 심심찮게 발생해 같은 PMMA 소재라도 질이 떨어지는 제품을 싼값에 시공했을 가능성이 크다"며 "신재 원료를 사용해 정가대로 시공하면 비용이 훨씬 오를 것"이라고 말했다.
stop@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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