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머니 속 몇 유로면 된다…아이가 평생 간직할 크리스마스 마켓의 기억[다른 삶]

기자 2022. 12. 30. 1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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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혜광·이은혜의 ‘베를린 육아일기’

아내는 크리스마스를 좋아한다. 늦가을부터 이른 봄까지 크리스마스 노래를 즐겨 들을 정도다. 아내는 매년 “크리스마스에는 항상 좋은 일이 있을 것 같다”며 크리스마스를 기다려 왔다.

특히 조그마한 전구가 주렁주렁 달린 트리는 크리스마스의 상징적인 존재였다. 어느 집은 조금 크고, 어느 집은 더 높고, 어느 집은 전구를 더 둘렀고 등의 차이는 있었지만 돌이켜 보면 우리 모두가 트리를 보며 크리스마스를 기다렸던 것 같다. 그래서일까. 크리스마스트리를 ‘진짜 나무’로 장식하는 독일 사람들이 참 생소하게 느껴졌다. 크기별로, 색깔별로, 천차만별 가격대로 판매되는 이 진짜 나무들은 습기가 많은 겨울철, 집 안의 벌레를 없애준다고 한다.

크리스마스는 전 세계 어디서나 중요한 행사다. 특히 유럽에서는 그 문화적, 인문학적 가치를 다 이야기하기 어려울 정도로 깊이 있는 행사다. 가톨릭과 기독교의 역사가 깊은 만큼 의미도 크다. 아기 예수의 탄생을 기념하는 크리스마스는 12월25일 하루이지만, 독일을 포함한 여러 유럽 국가에서는 26일도 ‘두 번째 크리스마스(Zweiten Weinachten)’, 영어로는 ‘박싱 데이(Boxing day)’라는 이름으로 공식 휴일을 보낸다.

본격 겨울이 시작되면 독일 대도시의 널찍한 광장이나 거리에서는 어김없이 크고 화려한 크리스마스 마켓이 열린다.
유럽서 종교·역사적으로 의미 커
‘해충 박멸 효과’ 진짜 나무로 트리
11월부터 준비…26일도 공식 휴일
유료 마켓 입장료 올라…5~10유로
소시지·데운 와인 등 먹거리 팔고
아이들은 바이킹·회전목마 즐겨
25일엔 상인들도 문 닫고 “가족과”
유아원 아이들에게도 중요한 행사
직장 동료끼리도 선물 주고받아
평안한 성탄절, 엔데믹에 감사하다

유럽 대부분 도시에서는 성탄절과 관련된 행사들 또한 일찌감치 11월부터 시작된다. 도시의 널찍한 광장이나 거리에는 하나둘씩 크리스마스 특수를 위한 상점들이 들어서기 시작하고 주말엔 거리 곳곳이 사람들로 붐빈다.

구도심이 있는 독일의 다른 대도시들, 뮌헨, 뉘른베르크, 드레스덴 등에선 항상 구시가지의 중심에 가장 크고 화려한 크리스마스 마켓이 열린다. 때에 따라 입장료를 받는 곳도 있고, 입장이 무료인 경우도 있다. 무료 마켓인 경우, 여느 거리와 물리적인 구분이 없기에 걷다 보면 어느새 마켓의 중심에 도달하는 식이다.

유료 마켓인 경우, 보통 5~10유로 정도의 입장료를 내고 들어간다. 몇 년 전 불과 2~3유로였던 걸 생각하면 크리스마스 마켓에도 인플레이션이 찾아온 셈이다. 대신 입장권으로 음료나 간단한 음식을 먹거나 마실 수 있도록 주최 측에서도 신경을 쓰는 모습이다. 이 때문에 ‘아, 이런 분위기구나’ 정도만 볼 생각이면 굳이 유료 마켓을 고집할 필요는 없다. 다만 입장료를 내는 장소들이 상대적으로 더 정돈되어 있고 화장실 등 부대시설도 깨끗한 편이며 뻔하지 않은 이벤트를 하긴 한다.

가장 중심인 공간에 무대가 함께 있어 음악을 연주하기도 하고, 연극을 상영하기도 한다. 그리고 또 하나. 이 중심 공간에 항상 큰 규모로 음식을 파는 상점들이 있다. 한국의 ‘잔치 음식’ 하면 쉽게 떠올릴 수 있는 음식들을 판매한다. 커다란 장작을 태워 직화로 굽는 돼지 목살구이, 굵직한 소시지, 각종 꼬치구이 등 이름만으로도 배가 든든해지는 메뉴들이다.

양배추 절임의 한 종류인 사우어크라우트(Sauerkraut)와 오직 밀로만 만든 밀빵도 빠지면 섭섭하다. 불향 가득한 고기를 한입 베어물면 잔치 분위기가 물씬 난다. 마실 거리도 빠질 수 없다. 독일에서 크리스마스 시즌에 언제 어디서나 쉽게 만날 수 있는 글루바인(Gluhwein)은 집집마다 다른 레시피가 있다고 할 정도로 역사가 깊은 음료다. 이 걸쭉하고 달콤한 와인은 추운 날씨에 야외에서 즐기도록 태어난 음료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따뜻하게 데운 와인에 계피, 설탕 및 각종 향신료를 넣어 서서히 달인 이 음료는 처음 들이켜는 순간 달콤한 알코올 향이 코를 확 자극한다. 더불어 설탕 코팅한 견과류, 색색의 초콜릿을 입은 과일 등 후식으로 즐길 만한 간식들은 차가워진 추운 날씨에 움츠러든 몸을 기분 좋게 풀어준다.

마켓의 중심에는 소시지나 돼지고기 직화구이 등 ‘잔치 음식’을 판매하는 상점이 들어선다.

먹거리와 살 거리에 이어 빠지지 않는 하나가 바로 아이들의 놀이기구다. 성탄절과 관련된 행사들이 모두 그렇듯이 이 놀이기구들 역시 임시로 설치된 구조물이다. 짧은 시간에 축제를 위해 들어선 기구들이다 보니 대형 놀이동산에서 볼 듯한 규모나 짜릿한 전율은 기대하긴 힘들다. 추억의 범퍼카, 미니 열차, 회전목마, 미니 바이킹 등이 주를 이룬다. 그럼에도 다양한 연령대의 아이들은 까르르까르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즐거워한다. ‘에이, 뭐 이런 허접한 걸 타고 그러지’라는 생각은 세월에 때 묻은 어른의 생각이었다. 웃는 아이들을 바라보고만 있어도 누구나 덩달아 웃음 짓게 된다. “아빠가 나중에 더 근사한 거 태워줄게!”란 말은 필요 없다. 주머니에서 뒤적뒤적 꺼낸 몇 유로 동전이면 된다. 그것으로 아이는 그 순간의 즐거움을 기억할 것이다.

베를린의 상업문화 복합지구인 포츠다머 플라츠(Potsdamer Platz)에는 매년 눈썰매가 설치된다. ‘유럽에서 가장 큰 인공 썰매장’이라는 이 시설 길이는 70m에 달한다. 눈썰매장 이용 요금은 1회에 1.5유로, 5회권은 5유로다. 직접 썰매를 가지고 오면 무료다. 요금이 얼마든 아이의 눈에 띄면 무조건 가서 같이 타야 한다.

이곳은 바로 옆에서 제법 크게 열리는 크리스마스 마켓과 더불어 성탄절 시즌에 세계 여러 나라 관광객들이 몰리는 장소 중 하나다. 다른 베를린 지역보다 고층 건물이 많이 들어선 특성 때문인지 더 이국적이고 색다른 풍경이다. 사람들은 크리스마스 캐럴을 들으며 각자 손에 먹을거리를 하나씩 들고 거대한 눈썰매와 크리스마스트리를 보며 사진을 찍어댄다.

왁자지껄 먹고 마시며 웃고 떠드는 크리스마스 분위기는 도시 곳곳으로 퍼진다. 광장 및 중심가는 물론 학교, 직장도 가리지 않는다. 연중 큰 행사 중의 하나인 크리스마스는 역시 어린이들에게도 중요한 행사다. 유아원에서도 몇 주 전부터 선생님, 학부모 할 것 없이 계획을 세우느라 정신이 없다. 아이들에게 기억에 남을 만한 시간을 선사하기 위해 모두들 열심이다. 직장 역시 마찬가지다. 열심히 선물을 고민하고 모두에게 선물한다.

반면 성탄절 및 연말이 가장 바쁜 사람들도 있다. 독일에는 음악을 전공하는 유학생이 많다. 성악가로 활동하는 몇몇 지인들에게 성탄절은 ‘일하는 기간’이다. 오페라 극장 및 각종 공연장 티켓은 특히나 성탄절 시즌이 되면 구하기 더 힘들다. 말 그대로 극장 및 공연장들의 성수기다.

글을 쓰는 오늘은 크리스마스이브다. 크리스마스 마켓의 피크타임은 크리스마스일 것 같지만, 정작 그날은 대부분 문을 닫는다. 간혹 성탄절 당일까지 여는 곳이 있긴 하지만, 보통 크리스마스이브 점심 무렵이면 정리에 들어간다. 25일과 26일이 공휴일이니, 마켓에서 일하던 사람들도 가족들과 함께 보내는 ‘대명절’을 위한 준비에 들어가는 것이다. 한국의 성탄절 풍경과 다르게 베를린은 도시 전체가 고요해진다. 마트도 문을 닫는다. 이미 가족, 지인과 좋은 시간을 보내기 위해 열심히 장을 봐놓고 단단히 준비를 해둔 상태다. 창문마다 형형색색의 장식을 달고, 연신 캐럴을 들으며 성탄절 본연의 의미도, 거기서 파생된 나눔의 의미도 되새긴다. 몇 년 만에 평안한 성탄절을 보낼 수 있게 된 엔데믹에 감사하며 말이다

▶신혜광·이은혜



현재 베를린에 거주 중인 3인 가족이다. 닭띠 아빠는 건축설계사무실에 다니고, 돼지띠 엄마는 그림을 그리고, 돼지띠 아이는 어린이집에 다닌다. 단독주택에 사는 것, 자동차로 베를린에서 나폴리까지 여행하는 것이 꿈이다. <스페인, 버틸 수밖에 없었다>와 <어느 멋진 일주일, 안달루시아>를 쓰고 그렸다.

신혜광·이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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