尹 새해 "야당 복" 받게 생겼다…방탄·힘자랑 각인된 巨野 [한기호의 정치박박]
노웅래 체포동의안 부결로 방탄 오명까지 써
"불체포특권 폐지 찬성" 7달 만 食言한 민주
李 사법리스크 중심에…의석 힘자랑까지 각인
이중잣대·진영구호 골몰…옛 한국당 처지 될수도
연말연시가 돌아왔다. 사람들은 너도 나도 설렘과 함께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인사를 주고 받을 것이다. 그러나 정치권에만큼은 같은 마음을 갖기가 어렵다. 대통령선거를 일년 내내 치르기라도 한 것처럼 피로하다. 폭주입법을 비롯한 불복성·보복성 정쟁이 끊이지 않았고 대형참사 사후 대응은 정략이란 수렁에 빠지고 있다.
본예산 법정처리시한(매년 12월2일)을 3주나 초과하는 불명예 기록을 경신했는데, 이미 지출구조조정을 거친 예산에서 필수분은 더 깎고 선심성·지역구 쪽지 예산 되살리기에 할애됐다. 도합 5억원여밖에 안 되는 2개 부처 산하기관 예산을 증발시키려다 반토막 내기로 합의를 이루기까지 막판 며칠을 더 소요했다는 점에 아연실색한다.
예산부수법안도 금투세와 같은 '과오 유예'가 비교적 원만했을 뿐 초라하다. 징벌적 부동산세 후폭풍을 정부의 땜질조치로 떠넘기거나, 법인세율·반도체사업 국가경쟁력 확보와 직결된 법안들도 퇴색됐다. 경제 성장과 '곳간 성장'을 혼동시키는 주장이 난무했다. 사법 이슈로는 제21대 국회에서 처음 의원 체포동의안 부결까지 일어났다.
정권이 교체된 현실도, 민생도 '씨알도 안 먹히는' 연말 국회였다. 같은 국가 정당간 정치가 맞나 의심스러운 일은 계속된다. '압사 현장 물리적 구조방해' 정치인을 감싸거나 마약수사를 공격하려는 국정조사특위 운영이나, 북한제 무인기 인정조차 인색하던 정당이 이번 도발엔 '용산'을 엮어 경질론부터 꺼낸 채 대북규탄결의 제안엔 모르쇠인 것이나.
이런 상황들은 국회 단독 과반 제1야당의 의중에 사실상 좌우됐다. 1년은 더 봐야 할, 그 이후 더 악화할 수도 있는 광경이라 한층 갑갑해진다. 어쨌든 예산정국 이후, '사법리스크'와 '방탄' 시시비비가 다시금 정치권발 뉴스로 도배되는 수순이다. '불체포특권 폐지' 주장이 7달 만에 기만으로 드러난 더불어민주당이 중심에 설 수밖에 없다.
지난 5월19일 KBS 저녁라디오 '주진우 라이브'에서 국회의원 당선 전의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친(親)민주당 성향 진행자가 '분명히 면책·불체포 특권, 국회의원·정치인 특권을 내려놓자고 하는 데에 반대하는 것 아니죠'라는 물음으로 '판'을 깔아주자 "당연하다. 100% 찬성한다"며 "국민의힘이 당론으로 정해서 추진하라. 저희는 100% 찬성한다"고 했다.
그는 "제가 무슨 죄를 지었다고 불체포특권을 활용해야 하냐"며 "의원들의 면책·불체포특권이 과하다"고도 했다. 그러나 12월28일 국회 본회의에서 민주당은 6000만원대 뇌물·불법정치자금 수수 혐의 구속영장이 청구된 자당 노웅래 의원 체포동의안을 271표 중 161표 반대로 가뿐히 부결시켰다. 무기명 투표에도 민주당 의석(169석)에 육박하는 결집도다.
앞서 3명의 의원(정정순·이상직·정찬민) 체포동의안이 가결돼 21대 국회가 '범죄 방탄' 오명을 쓰는 일을 피해왔지만, 4번째 노웅래 의원에서 파기 선례를 만들고 한동훈 법무부 장관의 체포동의안 보고 내용을 탓했다. 여당과 정치권 안팎에선 "이재명 대표에게 다가올지 모를 그날을 위해 부결 예행연습이라도 한 모양"이라고 꼬집었다. 그럴 만 했다.
성남시장 시절 성남도시개발공사에 불리한 대장동 택지개발 설계로 화천대유·천화동인(1~7호)에 폭리를 안긴 의혹, 경기도지사 당선 무효 위기를 모면한 재판 과정에서의 변호사비 대납 의혹, 대장동 민간업자 일당과 최측근 중 최측근 김용·정진상이 연루된 불법 대선자금 수수 의혹, 성남FC 불법 후원금 의혹 등 '시한폭탄'이 한둘이 아닌 탓이다.
이 대표가 검찰 직접조사에 응하지 않은 채 '말기술'로 버텨온 사안들이다. 지난 9월 성남 백현동 개발 사업 등과 관련 대선 기간 허위사실공표죄 소환을 통보 받은 그의 보좌관은 "전쟁입니다"라는 문자를 보냈고, 그대로 노출됐다. 이후 '전쟁'이란 말 그대로 흘러가고 있다. 사법절차 그 자체를 전부 조작·탄압 등 정쟁의 틀로 옮기는 데 안간힘이다.
지난 29일 그는 "윤석열 정부의 검찰이 공익 대변자의 책무를 망각하고 민주주의 파괴 도구로 전락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첫 대권 도전 때 '윤석열 검사를 검찰총장으로'를 공약하고, "도둑 잡는 게 도둑에겐 보복"이라며 "적폐와 불의를 청산하는 게 정치 보복이라면 그런 정치 보복은 맨날 해도 된다"던 '2017년의 이재명'은 갑자기 종적을 감췄다.
지난 5월 '검수완박법' 강행 때 검찰의 범죄수사 자체를 없앨 뻔한 게 민주당이다. 민주당이 이달 띄운 '인권위원회'는 29일 '검찰 인권침해 수사의 문제점'을 내세운 토론회에서 검찰을 민주주의 대척점에 놓으려 했다. 그러나 불체포특권은 끝까지 부여잡고 '보수 적폐청산' 때 묵인하던 '피의사실 공표'를 절체절명의 의제 삼으니 별다른 반향이 없다.
이 와중 대통령을 겨냥한 소위 '사이다 발언'도 이어가지만, '뚜껑'을 굳게 닫은 사이다병 흔들기에 터질까봐 걱정될 뿐 톡 쏘는 맛을 볼 기회가 올지 의문이다. 30일 거듭된, '변호사 시절부터 최측근' 유동규 전 성남도개공 사장 직무대리의 폭로에도 이 대표 쪽은 감감 무소식이다. 팬덤이 아닌 국민 입장에선 '알 권리'가 한없이 외면당해 불편하다.
여당의 '이재명 방탄' 클리셰 역시 소구력은 몰라도, 민주당 주변을 연막처럼 뒤덮은 건 확실하다. 그 사이 20%대로 꺼져 탄핵 조롱까지 받던 윤석열 대통령 지지율이 40%대에 안착했고, 여야 지지율은 팽팽해졌다. 민주노총 총파업, 예산·입법 지연, 방탄 국면까지 '거야(巨野) 힘자랑'이 각인된 탓일 거다. 진보진영 정치가 기대온 '약자성'이 지워졌다.
국민의힘 자유한국당 시절 탄핵 여파로 2017년 대선, 남북평화 연출 속 2018년 지방선거 모두 대패한 뒤 '황교안 지도부'를 선출한 2019년 2월 무렵부터 민주당 안팎에선 "우리가 야당 복은 많다"는 말이 돌았다. 문재인 당시 대통령 지지율 고공행진에, 보수진영에서만 통하는 장외투쟁·구호로 국민과 주파수를 맞추지 못한 한국당 덕이 적지 않았다.
그러던 한국당의 기를 펴준 건 '나라를 통째로 넘기시겠습니까, 좌파 방송장악, 종북척결, 자유민주주의 수호'같은 뻔한 전투적 언어가 아니라 '조국 트위터, 입시비리, 살아있는 권력 수사, 내로남불' 키워드였다. 2020년 총선까진 임계점 밑이었지만, 이후 '미투·LH·부동산·투기·세금'이 더해지자 대폭발해 정권교체로 귀결됐다. 민주당이 민생 대신 진영논리로 치달을수록, 윤 대통령이 새해 '야당 복'을 받을 수밖에 없겠다는 생각이 든다.
한기호기자 hkh89@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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