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금리에 고름 터진 ‘K부동산’의 이면[공성윤의 경공술]
(시사저널=공성윤 기자)
'K팝'이 한국의 독자적인 대중음악을 통칭하는 단어라면, 국내 부동산 시장에는 가히 'K부동산'으로 불릴 만한 고유의 현상이 존재한다. 선분양과 전세 제도, 그리고 이례적으로 높은 부동산 자산 비중이다. 이러한 현상은 주택 공급과 자산 증식에 유리하게 작용했다. 그러나 고금리 한파가 찾아오면서 그 이면에 감춰져 있던 취약점이 드러나고 있다.
①선분양, 주택보급률·PF부실률 함께 증가
선분양은 1977년 아파트 분양가 규제가 도입되면서 본격화됐다. 건설업체들의 수익성 악화를 우려한 정부가 이들의 금융비융을 줄여주기 위해 선분양을 제도화한 것이다. 선분양 덕분에 건설사는 주택을 짓는 도중에 이를 입주자에게 분양할 수 있게 됐다. 이후 입주자가 낸 계약금과 중도금을 이용해 주택을 완성했다. 그 전까지는 금융권에 비싼 이자를 내며 아파트를 지었는데, 이제는 예비 입주자로부터 무이자로 자금을 조달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선분양은 주택 공급량을 늘리는 데도 일조했다. 1987년 69.2%에 불과했던 주택보급률이 1990년대 중반 80%대로 올라섰고, 2002년에는 100%에 도달했다.
부작용도 있었다. 미리 집을 분양받으면 준공 후 입주 시점까지 시간차가 발생하는데, 그동안 분양권을 사고파는 행태가 만연해졌다. 그러다 보니 입주 생각도 없으면서 분양권만 취득해 시세차익을 보려는 투기꾼들이 횡행했다. 이러한 현상은 '로또분양' '선당후곰'(일단 분양 당첨되고 고민하라) 따위의 신조어를 낳기도 했다. 실수요자는 피해를 볼 수밖에 없는 구조다.
그런데 건설사가 선분양으로 재미를 보려면 투기꾼이든 실수요자든 집을 사려는 사람들이 몰려야 한다. 최근 분위기는 다르다. 물가 상승으로 분양가는 오르는데 금리 인상으로 인해 주택 매수세는 감소했다. 이제 분양 프리미엄은커녕 집값이 분양가보다 낮은 '마피(마이너스 프리미엄)'를 걱정해야 할 처지에 놓였다. 미분양 공포마저 엄습했다.
국토교통부는 2022년 10월 전국 미분양 주택을 4만7217호로 집계했다. 2019년 12월 이후 최고치다. 미분양이 심각해지면 자금력이 약한 시공사는 어려움을 겪게 된다. 게다가 초기 공사비를 프로젝트파이낸싱(PF)으로 마련한 건설사는 원리금 상환 압박이란 이중고에 처한다. PF 부실이 금융권으로 옮겨붙을 경우 연쇄부도 우려마저 제기된다. 이미 2022년 한 해에만 전국 종합건설업체 5곳이 부도가 났다.
선분양의 폐해는 육안으로도 확인할 수 있다. 시공사가 손을 놔버리면 돈을 못 받은 하청업체들은 유치권을 행사하게 된다. 철골만 앙상한 건물에 '유치권 행사 중' 현수막이 내걸리는 것이다. 이에 대해 도시 미관을 해친다는 지적이 과거부터 잇따랐다.
선분양은 해외에서도 보편적인 제도다. 그러나 선분양으로 공급되는 주택 비중은 상대적으로 낮다. 2020년 SH도시연구원 논문에 따르면, 미국은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선분양 비중을 낮추고 있다. 일본은 공정률 50~60%의 맨션을 사전 판매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국내 기준으로 보면 오히려 후분양에 가깝다. 호주의 경우 공동주택은 선분양이 일반적이지만 한국처럼 중도금을 내지 않는다. 즉 건설사가 수분양자의 돈에 의존할 수 없는 구조다.
②전세, 주거 안정화했지만 갭투자 조장
선분양이 주택보급률을 높이는 데 기여했다면, 전세는 서민의 주거 안정에 도움을 줬다. 학계에서는 1876년 강화도 조약 이후 서울 인구가 급격히 늘어나면서 전세가 보편화된 것으로 분석한다. 전세는 세입자 입장에서 목돈 마련을 용이하게 했다. 은행도 전세대출로 쏠쏠한 이자 수익을 남겼다. 2019년 서울 아파트 전세 거래 비중은 72.4%로 2015년부터 매년 상승했다.
하지만 전세 역시 '갭투자'라는 역풍을 낳았다. 매매가와 전세가의 차이(갭)가 적은 집을 골라 전세 세입자를 끼고 집을 사는 것이다. 사실상 세입자에게 돌려줘야 하는 보증금을 레버리지로 활용한다는 점에서 리스크가 큰 투자 방식이다. 그럼에도 집값 상승이 오래 이어지다 보니 언론까지 나서 갭투자를 조장했다.
이마저 고금리 앞에서는 속절없었다. 집값이 꺾이면서 전세가와 비슷한 수준으로 떨어지는 '깡통전세'가 속출했다. 이렇게 되면 손실은 둘째 치고 집을 팔아도 보증금을 못 돌려준다. 죄 없는 세입자도 '눈 뜨고 코 베이는' 것이다.
더군다나 깡통전세만 노려 보증금을 떼먹는 전세사기도 판쳤다. 경찰청은 2022년 7~11월 전세사기 전국 특별단속을 벌여 349건을 적발하고 804명을 검거했다. 최근 불거진 '빌라왕' 사건은 그 심각성을 여실히 보여준다. 수도권에 1139채의 빌라·오피스텔을 갭투자로 사들인 김아무개씨가 2022년 10월 사망하면서 세입자들이 보증금을 떼일 처지에 내몰린 것이다.
전세로 인한 문제는 한국에서 유독 두드러진다. 김진유 경기대 도시·교통공학과 교수는 "전세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인도와 볼리비아에도 비슷한 제도가 있다"고 했다. 하지만 인도의 전세는 극소수 지역에서만 존재한다. 또 볼리비아 전세 세입자는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할 경우 자동으로 집의 소유권을 갖기 때문에 훨씬 안전하다. 국내 전세 세입자는 대항력을 갖추지 못하면 보증금을 오롯이 날리게 될 수도 있다.
③빚으로 쌓아올린 부동산, '빚폭탄' 가중
선분양과 전세의 후과를 드러낸 고금리 기조는 이제 서랍 속 가계부마저 흔들고 있다. 이는 부동산 자산 비중이 유달리 큰 사실과 관계가 깊다. 금융투자협회가 2022년 8월 발표한 자료를 보면, 2021년 말 한국 가계 자산 구성에서 부동산을 포함한 비금융자산 비중은 64.4%로 나타났다. 미국(28.5%), 일본(37.0%), 영국(46.2%), 호주(61.2%)보다 컸다. 해당 조사는 각 국가의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한 통계청 자료를 토대로 집계됐다.
전국 경제활동인구만 살펴보면 부동산 쏠림 현상은 더욱 심각하다. 신한은행이 2021년 2분기 20~64세 경제활동자 1만 명을 뽑아 조사한 보고서에 따르면, 부동산 자산 비중은 79.9%였다. 2018년 75.9%에서 해마다 높아졌다. 부동산 자산 액수는 2021년 4억원을 처음 돌파해 최고치를 찍었다. 신한은행은 "부동산 가격이 치솟으면서 부동산 자산 규모도 커진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이는 곧 부동산 가격이 떨어지면 자산 규모도 그만큼 빨리 줄어든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게닥가 부동산 자산은 대부분 빚으로 이뤄져 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2022년 3월 기준 가계대출 총액 약 1869조원 중 전세대출을 뺀 주택담보대출 잔액은 823조원(44%)으로 나타났다. 특히 이 중 '영끌'로 집을 산 30·40대의 주택담보대출 잔액이 439조원으로 53%를 차지했다. 이 와중에 고금리 광풍은 빚폭탄을 터뜨릴 것이란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이광수 미래에셋증권 수석연구위원은 "30~40대의 영끌을 이야기하지만 한국 부동산을 움직이는 주요 수요층은 70대 이상"이라며 "순자산의 89%가 부동산인 70대 이상의 투자 수요가 감소해 부동산 시장 변동폭이 확대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편집자주] 무협지를 탐독하신 분들은 '경공술(輕功術)'에 익숙하실 겁니다. 몸을 가볍게 해서 땅이나 물 위를 날아다니는 기술이죠. 그 경지에 오르면 시공간을 초월해 이동할 수 있습니다. 경매와 공매를 공부하는 분들도 이처럼 누구보다 더 빨리, 더 높은 경지에 오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현실에도 경공술이 있습니다. '경매와 공매의 기술'입니다. 무협지는 그 터득 방법을 알려주지 않지만, 꼼꼼한 현장 취재로 경공술을 발굴해 독자 여러분과 공유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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