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성비'에 밀린 안전…터널 화재, 이천 참사와 '판박이'

CBS노컷뉴스 정성욱 기자,CBS노컷뉴스 박창주 기자 2022. 12. 30. 1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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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음터널 대부분 플라스틱…관리 쉽고 가격 저렴
'38명 사망' 이천 참사도 '가성비' 샌드위치 패널이 화근
전문가 "플라스틱은 결국 플라스틱…불에 취약"
트럭 운전자 "'펑'소리 나며 화재"…경찰은 합동감식
이천 물류창고 화재 현장·제2경인고속도로 방음터널 화재 현장. 윤창원 기자·과천=박종민 기자


2020년 38명의 목숨을 앗아간 경기 이천 물류창고 화재 참사는 샌드위치 패널을 사용한 게 화근이었다. 비용이 저렴하지만 화재에는 취약했기 때문이다.

샌드위치 패널은 얇은 철판 사이에 석유화학 제품인 스티로폼 또는 우레탄폼을 넣은 건축용 자재다. 시공이 간단해 공사기간을 대폭 줄일 수 있고 단열효과도 뛰어나다는 장점이 있다. 특히 샌드위치 패널(가로·세로 1m, 두께 50㎜) 1개의 가격은 2만원 수준으로 가격 대비 성능인 '가성비'가 좋다.

하지만 불이 붙으면 순식간에 번지고 동시에 시커먼 연기와 유독가스를 내뿜어 대형사고의 주범으로 꼽혔다. 이천 물류창고 참사 이후 '가성비'를 중시한 건설문화를 근절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그러나 5명이 숨진 경기 과천시 제2경인고속도로 방음터널 화재 사고도 이천 참사와 '판박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관리가 쉽고 비용이 저렴한 플라스틱 자재를 사용한 것이 불길을 키운 원인으로 꼽히기 때문이다.

플라스틱, 유리보다 관리 쉽고 가격은 '25% 수준'

 
연합뉴스

30일 CBS노컷뉴스 취재를 종합하면 업계에선 통상 방음터널을 세울 때 플라스틱 자재를 사용한다. 철제로 뼈대를 만든 뒤 빈 틈에는 플라스틱 재질의 투명판을 끼워넣는 방식이다. 운전자 입장에서 시야 확보가 용이하고, 관리도 쉽다. 자재로는 주로 폴리카보네이트(PC) 또는 폴리메타크릴산 메틸(PMMA)을 쓴다.

플라스틱이 아닌 유리를 이용한 방음터널도 있다. 다만 플라스틱보다 가격대가 최소 3~4배 높고, 유지보수도 까다로워서 선호되진 않는다고 한다.

방음터널 제작업체 관계자는 "방음터널은 눈이 쌓이는 걸 막기 위해 지붕을 곡선 형태로 만드는데, 유리를 곡선으로 가공하려면 비용이 훨씬 뛴다"며 "또 유리가 무게가 나가기 때문에 그만큼 철제 뼈대도 굵어야 하고 당연히 총 비용이 올라가기 때문에 대부분 플라스틱을 쓴다"고 말했다.

결국 가격 대비 성능을 따졌을 때 대부분 플라스틱 자재를 사용한다는 것이다.

가성비 따지면 플라스틱? "결국 불에 잘 타는 물질일뿐"


문제는 '가성비'에 안전이 뒷전으로 밀릴 수 있다는 것이다. 불이 붙지 않는 유리에 비해 플라스틱은 내화성이 약해 화재에 취약하다.

이번에 불이 난 제2경인고속도로 방음터널에도 플라스틱 소재인 PMMA가 사용된 것으로 파악된다. PMMA는 일반 일반 플라스틱보다는 열을 견딜 수 있지만 결국 불에 타는 플라스틱 소재라는 한계가 있다. 차량이 불이 타는 온도는 대략 1천도인데, PMMA같은 플라스틱은 280도부터 불이 붙는다고 한다.


과천=박종민 기자


이번 화재 당시에도 집게트럭에서 시작된 불길은 순식간에 터널을 불태웠다. 천장에 설치된 플라스틱은 열기를 견디지 못하고 불똥처럼 녹아내렸다. 터널에 있던 차량 40여대도 전소됐다.

경민대 소방안전관리과 이용재 교수는 "PMMA든 PC든 약간의 소재 차이는 있겠지만 결국 불에 취약한 플라스틱일뿐"이라며 "화재 위험성을 따졌을 땐 유리를 사용하는 게 가장 이상적이겠지만 비용 때문에 결국 안전이 뒤로 밀리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시설 아닌 구조물'…내화성 강제 규정 없어


이와 별개로 방음터널이 규제 사각지대에 놓였다는 의견도 있다. 도로시설이 아닌 방음구조물로 분류되기 때문에 화재 관련 강제규정이 없다는 것이다.

통상 소방은 물질에 불이 붙고 꺼지는 시간, 불씨가 남아있는 정도까지를 측정해 1~3등급의 내화성을 정한다. 이를 기준으로 시설의 화재 안전을 관리한다.

반면 일종의 구조물인 방음터널은 환경부 고시를 따른다. 방음시설의 성능 및 설치기준에는 '방음시설은 사후관리가 편리하며 내구성, 내화성이 좋은 것으로 한다'고 정하고 있다. 불에 강한 성질인 내화성을 고려하도록 하고는 있지만, 지켜야 할 강제성은 없는 것이다.

소방당국 한 관계자는 "일정 거리에서 불을 붙이고 불이 꺼지는 시간, 불씨가 남아있는 정도까지를 모두 측정해 내화성 등급을 매기고 관리한다"며 "하지만 방음터널은 이 대상에 해당되지 않기 때문에 관리 규정이 취약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트럭 운전자 "'펑'소리 나며 화재"…경찰은 합동감식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이 30일 제2경인고속도로 경기 과천시 구간에서 발생한 방음터널 화재 현장에서 보고를 받고 있다. 과천=박종민 기자

경찰은 이날 소방,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등 관계기관과 사고 현장에서 합동감식을 실시하고 화재원인을 분석하고 있다.

앞서 전날 오후 1시 49분쯤 경기 과천시 제2경인고속도로(안양→성남) 방음터널을 주행중이던 폐기물 처리용 집게트럭에서 불이 났다. 집게트럭 운전자는 3차선에 차량을 세운 뒤 빠져나왔지만, 불길이 플라스틱 재질의 방음터널 구조물로 옮겨 붙었고 금세 터널 전체를 불태웠다.

이 사고로 5명이 숨지고 3명이 중상, 38명이 연기흡입 등 경상을 입었다. 사망자는 집게트럭과 반대 방향(성남→안양)을 주행하던 차량에서 나왔다. 소방과 경찰은 아치형으로 된 방음터널이 순식간에 불에 타면서 반대편 차선에도 영향을 줬을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경찰은 집게트럭 운전자 A씨를 업무상 과실치사상 혐의로 입건해 조사하고 있다. 경찰 조사에서 A씨는 "운전 중 갑자기 에어가 터지는 '펑' 하는 소리가 난 뒤 화재가 발생했다"고 밝혔다. 또 "차량 조수석 밑쪽에서 불이 나서 차량을 하위 차로에 정차시키고 소화기로 불을 끄려고 시도했다"며 "그러나 불길이 잡히지 않아 대피했다"고 진술했다.

한편 화재가 발생한 방음터널은 2017년 제2경인고속도로가 개통되면서 함께 만들어졌다. 총 길이는 840m이며, 이 중 200~250m 구간이 불에 탄 것으로 파악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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