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각난 시신보다 끔찍한 건···관료주의에 물든 정부, 정치적 영향만 생각하는 정치인[책과 삶]
로버트 젠슨 지음·김성훈 옮김|한빛비즈|408쪽|1만9800원
세계적 재난수습전문가 로버트 젠슨
9·11 테러, 아이티 대지진, 허리케인 카트리나 등
참혹한 참사 현장에서 시신과 유류품 수습
“내 일은 산 사람을 돕는 것···유족에 대한 돌봄”
갑작스런 재난은 국가가 공동체 구성원을 어떻게 대하고 책임지는지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2014년의 세월호 참사와 지난 10월29일 벌어진 이태원 참사에서 우리는 정부의 무능과 책임 회피를 확인했고, 지금도 목도하고 있다.
476명을 태운 배가 천천히 가라앉는 과정을 온 국민이 지켜봐야했던 세월호 참사로 309명이 사망했고, 그 중 5명의 시신은 수습하지 못했다. 세월호 수색이 마무리된 것은 사고로부터 4년이나 지난 뒤다. 전직 대통령 박근혜씨가 탄핵되고 난 후에야 세월호 인양이 이뤄졌다. 배 안에서 9명의 미수습자 가운데 4명의 시신은 확인했지만 마지막 5명의 흔적은 찾지 못했다. ‘실종’은 유가족을 고통스럽게 한다. 가족의 죽음을 받아들이고 그 다음 단계로 넘어가기 위한 과정을 한없이 지연시킨다.
로버트 젠슨은 <유류품 이야기>에서 말한다. “실종된 사람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지 못하는 것은 사람이 겪을 수 있는 최악의 고통이다.” 이 책을 읽으면 과거의 참사에서 유가족들이 겪었던 고통과 이후 이들이 스스로 유가족 조직을 만들어 정부에 대응해온 과정을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젠슨은 2001년 9·11테러, 2005년 뉴올리언스를 강타한 허리케인 카트리나, 2010년 아이티 대지진 등 숱한 재난 현장에서 사망자의 시신을 수습하고 신원을 확인해 유족의 손에 돌려주는 일을 해왔다. 미 육군에서 전사자 예우 담당 업무를 담당했으며, 현재 세계적 재난수습기업 케니언 인터내셔널의 회장이다. “내 진짜 목표는 산 사람을 돕는 것이다. 나는 그들의 회복 과정을 감당할 수 있게 돕고, 그들이 과거의 일상을 내려놓고 새롭게 찾아온 일상으로 전환하도록 돕는다.”
“시스템이 이들을 어떻게 돌보느냐에 따라 이 시기가 얼마나 길고 힘들게 이어질지가 달라진다.” 젠슨은 자신이 하는 일을 ‘돌봄’이라고 말한다. 시신을 수습하고 신원을 확인하고, 유류품을 빠짐없이 수집해 가족들 품에 돌려주는 일을 하며 그는 죽은 자와 산 자를 모두 돌본다. “이 일은 산자를 위한 돌봄의 일부”이며 “항상 중요한 것은 생존자 그리고 사망자의 가족”이라고 여러 차례 강조한다. 젠슨의 관점에서 보자면, 한국 사회는 그런 시스템을 전혀 갖추지 못했고, 두 참사에서 철저한 실패를 보여줬다. 가장 큰 피해자는 희생자와 유가족이다.
산산조각난 건물, 조각난 시체보다 끔찍한 건···
관료주의에 물든 정부, 정치에 미칠 영향만 생각하는 정치인
저자도 처음부터 재난 수습에 유능했던 것은 아니다. 그는 각종 사고와 재난의 현장에서 관료주의가 빚어내는 부작용, 슬픔과 충격에 빠진 유가족들을 만나면서 어떻게 이 과정을 치러내는게 최선인지를 배워왔다. 그가 처음 접한 대형 재난은 168명이 숨진 1995년 오클라호마시티 폭탄테러였다. 9·11 이전까지 미국에서 일어난 가장 심각한 테러였다. 폭탄이 파괴한 건물에 깔리고 으깨지고 조각난 시신들 사이에서 그는 “자존심을 걸고 벌어지는 경찰 사이의 알력, 흐릿한 관료적 형식주의”를 목격한다. 특히 그는 관료주의에 물든 정부의 반응이 가장 힘들다고 말한다. 콘크리트 더미에 끼인 시신을 절반으로 자르고 보이는 부분만 빼내 오라는 요구도 받았다. 물론 그는 거절했다. “존엄성이야말로 우리가 죽은 자에게 해줄 수 있는 유일한 것”이기 때문이다.
죽음은 만인 앞에 평등하다?
재난이 보여준 ‘죽음의 불평등’
2010년 아이티에서 일어난 진도 7.1 대지진의 현장에도 그가 있었다. 모닝 커피를 내릴 시간보다 짧은 시간에 22만5000여명이 사망했다. “죽음은 만인 앞에 평등하다”고 하지만 그곳에서 ‘죽음의 불평등’을 보았다. 아이티 정부는 죽은 자에게 돈을 쓰는 것은 ‘낭비’라고 생가했다. 시신들을 도시 바깥에 있는 공동묘지로 가져가, 장례식도 없이 깊은 구멍에 불도저로 밀어 넣고 묻었다. “마치 쓰레기 매립장 같았다.” 반면 구호요원의 딸 5살 코피제이드의 시신을 발굴하기 위해서 20명의 부대원이 목숨을 걸고 작업에 매달려 시신을 아이의 시신을 찾아냈다.
“코피제이드와 공동묘지 구덩이에 내던져지거나 무너진 집의 폐허 속에서 그대로 화장된 수십만 명의 차이는 무엇일까?” 답은 노동집약적 작전에 따르는 경제적 부담을 감당할 수 있는 능력, 사망한 국민을 반드시 집으로 돌려보내겠다는 정부나 당국의 의지다.
처음엔 함부로 처리된 시신들
유해 수습과 대응 자체가 또다른 ‘재난’
유족들의 싸움으로 항공재난유족지원법 제정
참사 현장에서 시신을 수습하고, 유가족의 품으로 돌려보내는 일이 처음부터 당연한 것은 아니었다. 영국이 해외에서 숨진 병사의 시신을 본국으로 송환한 것은 1982년 포클랜드 전쟁이 처음이었다. 가족들이 공개적으로 격렬하게 항의한 이후였다.
항공기 사고도 마찬가지다. 항공기 사고는 특성상 시신이 갈가리 조각나 넓은 지역에 흩어진다. 잔해 속에서 시신을 수습하는 일은 쉽지 않다. 1994년 11월 아메리칸이글 비행기가 인디애나 들판에 추락해 68명의 사망자를 냈다. 항공사가 유해를 수습하고 유족과 소통하는 방식 자체가 하나의 재난이 됐다. 시신의 부위 대부분은 유족에게 통보되지도 않은 채 17개의 관에 담겨 한밤중에 그냥 묻혀버렸다.
불과 두 달 전 유에스에어항공 427편이 피츠버그 근처 협곡으로 추락해 132명이 사망했다. 사고 조사는 질질 끌어 4년 반이나 걸렸고, 항공사는 유족들에게 알리지도 않고 유해가 실린 38구의 관을 지역 묘지에 매장했다. 두 사고의 유족들이 모여 전국항공재난연합이라는 비영리 단체를 결성했다. 이를 계기로 1996년 항공재난유족지원법이 제정됐다. “투쟁으로 쟁취한 법이 있다면 이 법이 바로 그런 법이다.”
저자는 사람들이 가장 못 견디는 부분은 재난 수습 과정의 ‘오류’가 아니라 자신의 의견 표출이 가로막히는 것이라고 말한다. “유족은 자신도 이 문제를 해결할 주체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슬프게도 유족이 성공한 사례를 보면 대부분 미국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진행한 경우”다. 시스템과 절차에 따른 사고 수습과 유족에 대한 투명하고도 정확한 정보 흐름, 거짓 없는 진실의 전달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2005년 허리케인 카트리나는 최악의 대응
테러 대비에만 치중하다 자연재해 대비 전혀 안 돼
“지난번 재난을 대비하는 데 모든 것을 걸지 말라”고 저자는 말한다. 2005년 뉴올리언스를 강타한 허리케인 카트리나는 최악의 대응을 보여줬다. 2001년 9·11 테러를 겪고 모든 자원이 테러 공격을 물리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자연재해에 대한 대비가 전혀 안 돼 있었던 탓이다. 굶주리고 오갈 데 없는 사람들이 도움을 요청하면 대응요원들은 “이곳은 보안구역입니다”라고 답했다. 한 여성의 시신은 식당 바깥 도로에 놓였다. 시민들은 시신을 방수포로 덮고 주변을 돌로 눌렀다. 널빤지 조작엔 “여기 베라가 잠들다”라는 메시지가 무기력하게 써있었다.
책을 읽다보면 저자가 수많은 죽음과 비극을 마주하며 어떻게 계속 이 일을 할 수 있었는지 궁금해진다. 그는 “엄청난 죽음과 파괴를 겪고 난 후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일로 속을 태우지 않는다. 자기가 통제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 걱정하지 말고 자기가 통제할 수 있는 것을 대비하라.” 그는 재난은 예측할 수 없이 변덕스럽지만, 그에 대한 대응은 우리가 통제할 수 있다고 믿는다.
미 육군 출신의 저자의 이야기는 때로 투박하다. 냉전구도나 전쟁에 대해 미국중심적 입장을 보일 때도 있다. 하지만 그가 마주한 재난의 참 모습과 이에 대해 책임지는 법, 죽음과 유족을 대하는 태도만은 전문적이며 존중할 만하다. 적어도 제대로 된 재난에 대한 대응이 어때야 하는지를, 이 책에서 명확히 배울 수 있다.
이영경 기자 samemind@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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