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훈 1500자vs추미애 264자...체포동의안, 장관 출신따라 극과극
한동훈 법무장관이 지난 28일 국회 본회의에 출석해 노웅래 더불어민주당 의원에 대한 체포동의안을 설명한 것을 두고 민주당에서는 피의사실공표라고 주장하고 있다. 한 장관이 검찰이 확보한 노 의원 뇌물수수 관련 증거자료를 체포동의안을 설명하며 언급한 것은 위법이라는 것이다. 반면 법무부는 “전혀 사실과 다른 거짓 주장”이라고 반박하는 상황이다.
국회 회의록에 따르면 역대 법무장관 중 검찰 출신 법무장관들은 한 장관처럼 수사 상황과 혐의를 뒷받침할 증거·진술 등을 제시하며 체포 필요성을 강조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국회의원 출신 법무장관들은 간략하게 혐의만 설명해왔다.
◇검찰 출신 장관들, 檢 확보 증거·진술 언급하며 설명
한 장관은 지난 28일 노 의원 체포동의안을 설명하며 “이 사안에서는 노 의원이 청탁을 받고 돈을 받는 현장이 고스란히 녹음된 녹음파일이 있다”며 “구체적인 청탁을 주고받은 뒷돈을 받으면서 저번에 주셨는데 뭘 또 주느냐, 저번에 그거 제가 잘 쓰고 있는데 라고 말하는 노 의원 목소리, 돈봉투 부스럭거리는 소리까지도 녹음돼 있다”고 말했다. 한 장관이 발표한 체포동의안 설명은 글자 수 1503자(공백제외) 분량이었다.
고검장 출신인 황교안 전 법무장관은 2013년 9월4일 국회 본회의에 출석해 이석기 전 통합진보당 의원에 대한 체포동의안을 설명했다. 황 전 장관이 발표한 체포동의안 설명은 한 장관과 비슷한 1418자 분량이다. 이 의원의 구체적인 혐의 사실 등을 언급하며 체포 필요성을 주장했다.
“국가정보원은 본 사건에 대해 약 3년에 걸쳐 면밀한 내사와 수사를 진행해 온 결과 참고인 등의 진술, 각종 비밀회합에서 이석기 의원 및 관련자들이 발언한 내용, 이 사건과 관련해 압수된 각종 문건, USB 메모리에 수록된 자료 등 제반 증거자료에 의해 이석기 의원에 대한 이 사건 내란음모, 이적동조 등의 범죄혐의가 충분히 인정된다고 판단했다” “이석기 의원이 총책인 RO는 소위 조직 보위의무를 준수하면서 각종 보안 수칙과 구체적인 증거인멸 지침을 마련해 시행하고 있었다” “RO의 총책으로서 조직원들과 지하혁명조직 RO의 실체를 규명하려는 수사기관의 활동을 방해할 우려가 크다” (황교안 전 장관)
고검장 출신인 김현웅 전 법무장관은 2015년 8월13일 국회 본회의에 출석해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를 받는 박기춘 전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에 대한 체포동의안을 741자 분량으로 설명했다. 김 전 장관은 한 장관과 마찬가지로 검찰이 확보한 진술과 증거를 언급하며 구속 필요성을 강조했다.
“나머지 금품수수 혐의에 대해 혐의 사실을 부인하고 있지만 공여자는 박기춘 의원에게 금품을 교부한 사실에 대해 일관되고 구체적인 진술을 하고 있고, 전 경기도의회 의원도 박 의원 지시에 따라 물건을 옮기고 보관했다고 진술하고 있으며, 검찰 수사가 진행되는 상황에서 박 의원의 집에서부터 분양대행업체 대표의 집으로 물건이 옮겨지는 과정이 녹화된 CCTV 영상과 압수된 현금 1억9530만원, 명품시계 등 증거들이 이를 뒷받침하고 있어 이 사건 범죄 혐의는 충분히 입증된다” (김현웅 전 장관)
◇추미애·박범계 혐의만 간단 설명… 학자 출신 박상기는?
이에 비해 검찰 출신이 아닌 법무장관들의 체포동의안 설명은 간략한 편이었다. 판사 출신으로 5선 의원을 지낸 추미애 전 법무장관은 2020년 10월29일 정정순 전 민주당 의원의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 등에 대한 체포동의안을 264자 분량으로 설명했다.
추 전 장관은 “청주지검은 2020년 9월28일 정정순 의원에 대해 체포영장을 청구했고 같은 날 청주지법 판사 신우정이 체포동의요구서를 정부에 제출했기에 정부는 국회법 제26조에 따라 정 의원에 대한 체포동의를 국회에 요청하기에 이른 것이다”고 했다. 구체적인 사건 내용이나 혐의를 뒷받침할 수사 상황은 전혀 언급하지 않은 것으로, 전임 장관들에 비해 매우 간략히 설명했다.
판사 출신으로 3선 의원인 박범계 전 법무장관은 2021년 4월21일 이상직 전 민주당 의원의 횡령 혐의 등에 대한 체포동의안을 239자 분량으로 설명했다. 추 전 장관과 분량과 내용이 거의 같다.
박 전 장관은 “전주지검은 2021년 4월9일 이 의원에 대해 이스타항공 계열사 자금을 횡령하고 회사에 재산적 손해를 입게 했다는 취지의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 및 정당법 위반 혐의로 구속영장을 청구했고, 같은 날 전주지법 판사 정우석은 이 의원에 대한 체포동의요구서를 정부에 제출했다”고 했다.
학자 출신인 박상기 전 법무장관은 ‘검찰 출신’ ‘정치인 출신’ 장관들의 중간선에 놓였다. 박 전 장관은 2018년 5월21일 홍문종 전 자유한국당 의원의 뇌물수수 혐의에 대한 체포동의안을 683자 분량으로 설명했다. 박 전 장관은 간략하지만, 피의자의 혐의를 뒷받침할 증거와 진술을 체포동의안 설명에서 언급하기는 했다.
“홍 의원은 검찰 조사에서 혐의사실을 부인하고 있으나 이 사건 공여자들은 홍 의원에게 청탁 대가로 금품을 교부한 사실에 관하여 일관되고도 구체적인 진술을 하고 있으며, A대학교 관계자들의 진술과 학교법인 이사회의 회의록 및 계좌추적 결과 등 그 밖의 여러 가지 인적·물적 증거들도 이를 뒷받침하고 있어 이 사건 범죄혐의는 입증된다.” (박상기 전 장관)
박 전 장관은 같은 날 염동열 전 자유한국당 의원에 대한 채용비리 혐의 등에 대한 체포동의안을 553자로 설명했다. 간략하게 검찰이 확보한 진술과 증거를 공개했다.
“염 의원은 혐의를 부인하고 있으나 강원랜드 직원 등 관련자들이 범죄혐의에 대해 구체적으로 진술하고 있고, 강원랜드 직원들이 업무 과정에서 작성했던 관련 명단 등 객관적인 증거들이 이를 뒷받침하고 있어 이 사건 범죄혐의는 입증된다.” (박상기 전 장관)
◇한동훈 “증거 없이 어떻게 체포 판단하느냐”
민주당은 한 장관의 체포동의안 설명 내용을 두고 연일 강도 높게 비판하고 있는 상황이다. 박찬대 민주당 의원은 “한 장관의 제안 설명이 법무장관으로서 부적절한 정도가 아니라 법을 위반하고 있는 게 아닌가 의심이 들 정도”라고 했다.
김성환 민주당 정책위의장은 “수사 과정에서 확보된 증거들을 공개석상에서 제시하는 건 명백히 피의사실 공표에 해당하는 중죄”라며 “한 장관이 강조하던 법치가 본인은 위법 행위를 해도 된다는 범죄 면허냐”고 했다.
이에 대해 한 장관은 30일 오전 정부과천청사 출근길에 취재진을 만나 “과거에도 증거 설명을 하는 기회가 많이 있었다. 증거 자료 없이 어떻게 체포 동의 여부를 판단하느냐”며 “민주당이 압도적으로 (노 의원 체포동의안을) 부결시킨 걸 보면 제 설명이 과했던 게 아니라 오히려 부족했던 것 아닐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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