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10년 전 ‘불연성 소재’ 지침 삭제…불쏘시개 된 방음터널
2020년 하동IC 화재때도 방음벽 전소
전문가 “화재 관련 기준 마련해야”
지난 29일 경기 과천 제2경인고속도로 방음터널 화재로 5명이 숨지고 41명이 다치면서 방음터널의 안전성에 관한 문제가 불거지고 있다. 방음터널은 주택가 인근 고속도로 소음 방지를 위해 설치가 늘고 있지만, 관련법상 시설물 안전점검 대상에서 빠져 ‘관리사각지대’라는 지적이 나온다.
30일 경찰과 소방 등에 따르면 이번 사고의 사망자 5명은 모두 처음 불이 난 화물차와 같은 차선이 아닌 반대 차선에서 나왔다. 다수 사상자가 발생한 것은 화물차에서 난 불이 방음터널로 순식간에 번지면서 미처 대피하지 못해 발생한 것으로 추정된다.
일반적으로 방음터널은 철제 구조물에 플라스틱의 일종인 폴리카보네이트(PC) 또는 폴리메타크릴산 메틸(PMMA)로 덮어 만들어진다. 불연성이 아니라 한 번 불이 붙으면 빠르게 확산하는 데다가 유독가스도 발생한다. 이번에 화재가 난 방음터널의 경우 ‘아크릴’로 불리는 PMMA가 사용됐는데, PMMA는 PC보다 더 화재에 취약하다.
손원배 초당대 소방행정학과 교수는 “방음터널의 철제 구조물에 덧씌워진 방음판은 가연성의 플라스틱 재질인 데다가 불이 붙는 속도도 나무보다 3~4배 빠르다”며 “불연성 소재인 강화유리에 비해 2배 이상 저렴하고 공사가 쉬워 많이 사용되고 있다”고 말했다.
앞서 2020년 8월 수원 영통구 하동IC 고가도로 방음터널에서도 방음벽 50m 구간이 30여분 만에 모두 불에 탔다. 당시 한국도로공사 도로교통연구원과 감사원은 “방음터널은 가연성 재질로 화염에 취약하고 구조물이 가열될 때 방음판이 탈락할 우려가 있어 보강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런 문제점에도 방음터널에서의 화재 확산을 막기 위한 규제는 사실상 없는 실정이다. 일반 터널의 경우 소방법상 옥내 소화전, 스프링클러 등의 설치 의무가 적용되지만, 방음터널은 대부분 제외됐다. 국토안전관리원의 기준에도 터널에 해당하지 않아 시설물 안전점검 및 정밀안전진단 대상에서도 빠져있다.
특히 국토교통부는 2012년 도로건설공사 기준을 담은 도로설계편람을 개정하면서 방음시설에 ‘불연성 또는 준불연성 소재를 사용해야 한다’는 기존의 지침을 삭제하기도 했다.
정부가 현재 관리하는 방음터널은 전국적으로 55개다. 지방자치단체에서 관리하는 것까지 합하면 실제로는 이보다 훨씬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소음 방지를 위한 방음터널은 계속 늘어나는 추세다. 2025년을 목표로 조성 중인 인천 용현·학익 1블록 사업 시행사는 지난 3월 고속도로 소음 문제로 주민들과 갈등을 빚자 방음터널을 해결책으로 제시했다.
전문가들은 방음터널을 설치할 때 화재 관련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이용재 경민대 소방안전관리과 교수는 “현재 방음벽을 설치할 때 햇빛 반사가 적고 변형되지 않는 재료라는 것 정도의 기준은 있지만 다 화재와는 관련이 없는 것들”이라며 “소방시설·소화기 설치 정도로는 이같은 화재는 막지 못하기 때문에 애초부터 불이 안나게 하는 기준이 있어야 한다”라고 말했다.
손 교수도 “한국은 관련법이 느슨하기 때문에 이번 참사로 이어진 것”이라면서 “독일이나 일본처럼 연성 재질인 강화유리를 사용해야 하는 당위성이 검증됐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김태희 기자 kth08@kyunghyang.com, 김세훈 기자 ksh3712@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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