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펑크 여왕’ 비비안 웨스트우드 별세
저항 문화의 아이콘으로 반세기 동안 패션계를 주름 잡으며 ‘펑크의 여왕’이라는 세칭을 얻었던 영국 디자이너 비비안 웨스트우드가 29일(현지시간) 별세했다. 향년 81세.
웨스트우드는 이날 런던 남부에 있는 자택에서 가족들에게 둘러싸인 채 평화롭게 숨을 거뒀다고 로이터 통신과 CNN 등 외신이 웨스트우드 측의 공식 성명을 인용해 전했다.
생전 그는 ‘펑크의 여성 제사장’, ‘극단의 여왕’으로 언론에 묘사됐으며, 마지막까지 패션 산업 경계를 허물며 활력을 불어넣어 사랑을 받았다고 CNN은 평했다.
1941년 4월 8일 영국 중부 더비셔주 글로솝에서 ‘비비안 이사벨 스와이어’란 이름으로 태어난 그는 면직공장과 제화공장에서 일한 부모의 영향을 받아 어린 시절부터 자신의 옷을 직접 만들기 시작했다.
10대 때 부모를 따라 런던 북쪽으로 이주해 예술학교에 다니며 보석 제작과 은세공을 배웠고, 성인이 돼서는 한동안 교사로 일하며 첫 번째 남편 데릭 웨스트우드를 만나 직접 만든 드레스를 입고 결혼했다.
첫 남편과 아들 하나를 두고 이혼한 후 웨스트우드는 ‘싱글맘’으로 런던 포토벨로에서 보석류를 팔아 생계를 이었다. 그러다 1965년 후일 펑크록 밴드 섹스 피스톨즈 매니저가 되는 미술학도 맬컴 맥라렌을 만나 사랑에 빠지면서 웨스트우드 인생은 전환점을 맞게 된다.
1970년대 웨스트우드와 맥라렌은 런던 킹스로드에 ‘렛 잇 록’(Let it rock)(나중에 ‘섹스’(SEX)로 변경)이란 의류 매장을 열고 주류 문화에 대한 반항과 전복적인 메시지를 담은 패션을 선보여 파란을 일으켰다.
부분 부분 찢어지거나 금속체인, 지퍼, 닭 뼈 따위가 달린 옷을 선보였고, 특히 영국 여왕 입술에 큰 옷핀이 달린 이미지가 프린트된 티셔츠는 널리 알려졌다. 이후 펑크는 패션에서 시작해 음악을 거쳐 하나의 문화이나 생활 양식으로 확대가 됐다.
웨스트우드는 당대를 풍미한 펑크 문화의 시각적인 문법을 만들어내는 큰 데 기여했다. 그는 전기에서 “나와 맬컴 이전에는 펑크가 없었다”며 “펑크에 대해 또 하나 알아야 할 것은 그것이 ‘완전한 폭발’이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2014년에는 “내가 패션계에 있는 유일한 이유는 ‘순응’이란 단어를 파괴하기 위한 것”이라며 “그런 요소가 없다면 나에게 전혀 흥미롭지 않다”고 강조했다.
웨스트우드는 사회·정치적인 의견을 거침없이 밝혔고, 이를 행동으로 실천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핵 군축과 반전을 옹호했으며, 가난한 이들에게 타격을 주는 여러 정책에 반기를 들었다. 패션쇼에 서는 모델들에게 이런 메시지를 담은 팻말을 들게 하기도 했다.
환경운동에도 앞장선 그는 친환경 패션을 위해 “(옷을) 잘 골라라. 덜 사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웨스트우드 대변인에 따르면 유족들이 설립한 비영리법인 ‘비비안 재단’이 내년 정식 출범한다. 이 재단은 “비비안의 삶과 디자인, 행동주의 유산을 존중하고 보호하고 지속할 것”이라고 대변인은 전했다.
손봉석 기자 paulsoh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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