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부, 1970년대 남북적십자회담 문서 공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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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부는 1970년대 남북 적십자회담 관련 문서를 30일 공개했다.
통일부가 공개한 문서는 그동안 비공개이던 <남북대화 사료집> 4~6권, 3028쪽 분량이다. 남북대화>
앞서 통일부는 지난 5월4일 1970년 8월~1972년 8월 사이 남북 당국 회담 관련 문서(<남북대화 사료집> 2·3권) 1652쪽(418쪽은 공란 처리해 사실상 비공개)을 사상 처음으로 공개했다. 남북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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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부는 1970년대 남북 적십자회담 관련 문서를 30일 공개했다.
통일부가 공개한 문서는 그동안 비공개이던 <남북대화 사료집> 4~6권, 3028쪽 분량이다. 3028쪽 가운데 417쪽은 이번에도 공란 처리돼 실제 공개율은 86%다. 공개된 문서에는 △남북적십자 본회담(7차례, 1972년 8월~1973년 7월) △남북적십자 대표회의(7차례, 1973년 11월~1974년 5월) △남북적십자 실무회의(25차례, 1974년 7월~1977년 12월)의 진행 과정과 회의록이 포함됐다.
다만 이 기간에 있은 ‘7·4 남북 공동성명’(1972년 7월4일) 합의·발표와 관련한 남과 북 당국 사이 ‘특사’ 교환 등 남북 정상의 ‘간접 협상’을 살필 자료는 이번에도 공개되지 않았다. 예컨대 1972년 5월 당시 이후락 중앙정보부장이 평양을 방문(1972년 5월2~4일)해 김일성 내각수상과 두차례 만난 일, 박성철 북한 부수상이 비공개로 남쪽을 방문(1972년 5월29일)해 박정희 대통령과 만난 일과 관련한 문서는 공개되지 않았다. 통일부 당국자는 “추가 검토가 필요한 부분이 있어 이번에는 공개 대상에서 뺐다”며 “내년에 공개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통일부는 “이번 문서 공개는 5월4일 시범 공개에 이어 두 번째로 이뤄진 것”이라며 “앞으로도 국민의 알권리와 대북정책의 투명성 제고를 위해 지속적으로 남북회담 문서 공개를 추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앞서 통일부는 지난 5월4일 1970년 8월~1972년 8월 사이 남북 당국 회담 관련 문서(<남북대화 사료집> 2·3권) 1652쪽(418쪽은 공란 처리해 사실상 비공개)을 사상 처음으로 공개했다. 당시 공개된 문서에는 한국전쟁 이후 첫 남북 당국 접촉인 1971년 8월20일 남북적십자 파견원 접촉 상황 등이 담겨 있다.
공개된 남북 회담 관련 문서는 통일부의 남북회담본부·북한자료센터, 국립통일교육원 등 3곳에 마련된 ‘남북회담 문서 열람실’에서 열람할 수 있다. 공개 문서 목록과 공개 방법, 열람 절차 등은 통일부 남북회담본부 누리집( https://dialogue.unikorea.go.kr)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제훈 선임기자 noma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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