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명사망' 터널화재 '아크릴' 소재 녹아내렸다…"교체해야"(종합)
원희룡 "방음터널 공사 전면 중단…안전조치 대폭 강화"
(서울=뉴스1) 김도엽 박기현 기자 = 5명이 숨지고 37명이 다친 경기 과천시 제2경인고속도로 북의왕 IC 인근 화재는 방음터널의 가연성 소재가 사고를 키웠다는 지적이 나온다. 과거 방음터널 유사 사고에서도 폴리메라크릴산 메틸(PMMA)은 화재에 취약하다는 점이 지적된 바 있다.
정부는 우선 현재 진행 중인 방음터널 공사를 전면 중단하고, 전면조사를 통해 교체 혹은 내화성 도료를 사용하는 등 안전조치를 대폭 강화하겠다는 방침이다.
원 장관은 30일 오전 경기 과천시 제2경인고속도로 화재현장을 현장점검 후 기자들과 만나 "현재 공사 중이거나 아직 공사에 착수하지 않은 공사는 전면 중단하고, 화재에 튼튼한 소재와 구조로 시공방법을 바꾸겠다"고 말했다.
이어 "이미 만들어진 방음터널에 대해선 전면 교체하거나 기술적으로 불가능할 경우 부분적으로 내화성 도료를 사용하거나 상부 개폐 등 안전조치를 대폭 강화하겠다"고 덧붙였다.
앞서 전날 오후 1시49분쯤 갈현고가교 방음터널 구간에서 불이 나 5명이 숨지고 37명(중상 3명, 경상 34명)이 다쳤다. 소방당국은 소방대응 1단계를 발령 후 전날 오후 4시12분쯤 화재 진압을 완료했다. 불은 고속도로 화물차에서 난 뒤 방음터널로 옮겨붙어 삽시간에 번졌다. 터널 지붕이 불길에 녹아 불꽃이 튀기도 했다. 미처 현장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사람들이 많아 인명피해가 컸다.
피해가 커진 주 원인으로는 방음터널의 소재가 꼽힌다. 일반적으로 방음터널은 철제 H빔으로 만들어진 구조체에 플라스틱의 일종인 폴리카보네이트(PC) 또는 PMMA로 덮어 만들어지는데, 아크릴 소재의 PMMA는 빛의 투과성이 좋고, 가공하기 편리해 전세계적으로 쓰이는 재료긴 하나, 발화 온도점이 낮고 불이 붙었을 때 녹아내리며 연소가스가 빨리 퍼지는 등 폐쇄된 공간이나 화재에는 취약하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이번에 불이 난 방음터널의 소재가 바로 PMMA다.
PMMA는 인화점이 약 280도의 가연성 소재로 450도인 PC보다 낮아 화재 위험성이 높다. 지난 2016년 교통연구원은 PMMA 소재는 쓰지 않는 게 좋다는 의견을 국토부에 제안한 바 있다.
앞서 지난 2020년 8월 경기도 용인에서도 차량 화재가 발생했는데 이 불이 방음벽으로 옮겨붙어 터널 전체가 탄 바 있다. 다행히 인명피해는 없었지만, 방음벽을 타고 삽시간에 불이 번져 터널 50m가량이 불에 탔다.
현재 국토부 소관의 방음터널은 전국에 55개소가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민자고속도로까지 합치면 이 규모는 더 커질 것으로 보인다. 이번 화재도 민자고속도로라 소관이 한국도로공사가 아닌 민간업체다. 국토부는 몇개소에서 PMMA가 사용됐는지 현재 전수조사 중이다.
전문가들은 가연 소재인 PMMA 사용이 아닌 불연재 소재를 사용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한국도로공사의 경우 지난 2009년부터 방음터널에 PMMA를 사용하고 있지 않다.
공하성 우석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화재 위험을 줄이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은 터널의 재질"이라며 "독일, 일본 등은 강화유리 같은 불연재 소재를 사용하고 있는데 우리나라는 가연 소재를 사용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대한민국산업현장교수단의 최명기 교수 또한 "현행법상 해당 방음터널 재질 및 성능은 환경부 고시에 따르고 있는데 화재 등의 안정성 고려 없이 환경 측면에서 요구되는 기준을 만족하고 있었다"며 "화재 안정성을 고려하여 방음터널 재질 및 성능을 선정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실제로 방음터널에 사용되는 가연성 소재의 위험성은 꾸준히 지적돼왔다. 지난 2018년 한국도로공사 도로교통원구원의 '고속도로 터널형 방음시설의 화재안전 및 방재대책 수립 연구'의 시뮬레이션 결과에 따르면, 왕복 6차로에서 화재강도 등에 따라 달라질 수 있지만 5분 만에 200m 넘게도 열기류가 확산될 수 있다. 화재연기 또한 화재강도에 따라 5분 만에 225m까지 확산될 수 있다.
이번 화재 또한 왕복 6차로 고속도로였는데, 단시간에 열기류·연기가 확산되며 피해가 커진 것으로 추정된다. 터널 안에 남겨진 차량이 대부분 전소한 것도 이런 영향으로 풀이된다.
연구원은 그러면서 "PMMA는 인화점이 300도 전후로 낮고, 화재 실험시 용융된 재료가 바닥으로 낙하한 후에도 지속적으로 연소돼 2차 화재확산을 일으킬 수 있는 위험성이 있다"며 "방음터널에 사용하기에는 부적합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연구원은 지난 2016년에도 PMMA 소재는 쓰지 않는 게 좋다는 의견을 국토부에 제안한 바 있다.
감사원도 지난해 말 국토부에 터널형 방음시설의 화재안전기준 보강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이에 국토부는 화재에 취약하다는 점을 인정하고 지난 4월에 연구용역을 발주했고, 7월부터 6개월째 용역을 시행 중이다.
이외에 방음터널의 소재는 방음시설 소재와 함께 포괄적으로 규정돼 있어 안전성 고려가 없다는 점이 화재를 키웠다는 지적도 나온다. 지난 2016년 도입된 '도로터널 방재시설 설치 및 관리지침'에도 방음자재에 대한 불연 기준은 없다.
PMMA에서 PC로 바꾸려면 비용적 부담이 크다. 현재 PMMA가 설치된 방음터널을 교체하려면 6차로 기준 100m당 약 7억원이 들어가는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PC 역시 열 가소성 소재라 PMMA보다 인화점은 높더라도 화재에 취약한 것은 매한가지라, 강화유리로 교체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그럼에도 정부는 비용을 이유로 현상을 유지하는 관성적 태도는 버리겠다는 방침이다.
원희룡 국토부 장관은 "정부 책임자로서 책임을 통감한다"며 "비용을 이유로 현상 유지하는 관성적 태도를 버리겠다. 제기된 문제를 미루지 않고 안전조치를 취하겠다"고 말했다.
이어 원 장관은 "국가관리 55개 방음터널에 더해 지자체에서 관리하는 방음터널까지 국토부에서 전수조사해 화재에 튼튼한 소재와 구조로 시공방법을 바꾸겠다"며 "안전불감증에 대해 반성하며, 실효성 있는 대책과 믿고 안심할 수 있는 대책이 수립·실행되도록 하겠다"고 덧붙였다.
dyeop@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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