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정부 '신약 R&D' 예산 축소…바이오 육성 의지는 어디로
자금난 심각 '바이오텍' 등 신약 개발 의지 저하 우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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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이자의 코로나19 백신 '코머나티'의 원천 기술을 보유한 독일 바이오엔텍의 지난해 영업이익률이다. 바이오엔텍은 지난해 발 빠르게 코로나 백신 개발에 성공하면서 믿을 수 없는 영업이익률을 기록했다. 바이오엔텍이 빠르게 코로나 백신을 개발할 수 있었던 건 화이자와의 협업도 컸지만, 독일 정부의 전폭적인 지지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당시 바이오엔텍이 독일 정부로부터 받은 지원금은 4억5500만달러(약 5040억원)에 달한다.
일반적으로 글로벌 제약사(빅파마)의 연 매출 규모는 100조원대다. 영업이익률은 30~70% 수준이다. 다른 산업에선 영업이익률을 10% 넘기는 게 쉽지 않다는 점을 고려하면 어마어마한 수치다. 혁신 신약 개발에 성공하면 그만큼 높은 수익성을 얻을 수 있다. 낙타가 바늘구멍을 뚫는 것만큼이나 어렵다는 신약 개발이지만, 전 세계 기업들이 도전을 멈추지 않는 이유다.
반면 제네릭(복제의약품)과 개량신약에 특화한 국내 전통 제약사의 영업이익률은 10%를 밑돈다. 매출 규모도 빅파마에 한참 못 미친다. 일부 기업만 연매출 1조원을 갓 돌파하기 시작했다. 특바이오 신약을 개발하는 바이오텍은 몇 년째 적자를 이어가는 곳이 대부분이다.
국내에서도 빅파마가 나올 수 있을까. 신약 개발에 대한 정부의 지원책을 보면 쉽지 않아 보인다. 빅파마는 연간 최소 1조원 이상을 연구개발비에 투자한다. 국내 제약사의 일 년치 매출을 연구개발비에만 쏟는 셈이다. 이는 각국 정부의 지원과 투자가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대표적으로 미국 정부는 매년 신약 개발 연구개발에 40조원 이상을 투자해왔다.
이에 비해 국내 정부의 신약 개발 지원은 턱없이 부족하다. 29일 정부는 내년도 보건의료 연구개발 예산에 총 1조4690억원을 지원할 계획이라고 발표했다. 이는 지난해와 비슷한 수준으로, △감염병 위기대응 역량 강화(2740억원) △첨단 유망기술 육성(8390억원) △공익적 연구개발 투자 확대(2752억원) △의료현장 연계 연구개발 투자 강화(809억원) 등 4개 분야를 중심으로 편성했다.
특히 신약 개발에 지원하는 예산이 눈에 띄게 줄었다. 신약 개발 관련 예산은 총 1396억원으로, 지난해 1677억원보다 16.8% 감소했다. 세부적으로 '국가신약개발 사업'에 대한 보건복지부와 산업통상자원부의 예산은 각각 412억원으로 모두 지난해(420억원)보다 줄었고 과학기정보통신부 예산 역시 461억원에서 371억원으로 줄었다. 과기부의 '바이오·의료기술개발' 사업의 경우 감염병 부문에서 '국가 전임상 지원체계 구축'에 신규로 133억원을 책정한 반면, '신약 개발' 부문은 지난해 예산 329억원보다 대폭 쪼그라든 61억원을 확정했다.
제약바이오 산업 육성은 윤석열 대통령의 핵심 공약 중 하나였다. 윤 정부는 지난 7월 정부 주도로 5000억원 규모의 'K-바이오·백신 메가펀드'를 결성하고 9월엔 운용사 2곳도 선정했다. 그러나 이후로 관련 작업은 진척을 보이지 못하고 있다. 이마저도 신약 개발보단 백신 개발에만 재원이 집중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당초 메가펀드의 지원 대상은 블록버스터 신약과 백신 개발이었다.
또 이번 보건의료 연구개발 예산안에서 5개 정부 부처 간 중복되는 내용이 많은 점도 문제다. 부처별로 △범부처 감염병 방역체계 고도화 연구개발 사업 △세포 기반 인공혈액 제조 및 실증 플랫폼 기술 개발 등의 부문이 중복으로 편성됐다. 각 부처가 똑같은 사업을 운영하는 건 비효율적인 데다 예산이 분산되면서 지원금 규모도 줄어든다. 이를 두고 제약바이오 업계에선 윤 대통령의 공약이었던 컨트롤타워가 아직 만들어지지 않은 탓이라는 지적도 제기된다.
각국 중앙은행의 금리 인상으로 금융시장이 얼어붙으며 신약 개발 기업의 자금난이 심각해지고 있다. 많은 기업과 연구자가 암이나 희귀질환 등 치료제가 없는 신약 개발을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는 가운데 정부 지원 축소는 신약 개발 의지 저하로 이어질 수 있다. 정부가 진정 제약바이오 산업을 미래 성장동력으로 육성하고 싶다면 허울뿐인 약속이 아닌 구체적인 시행 방안과 결단력이 필요하다.
차지현 (chaji@bizwatch.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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