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이해’ 유연석-문가영, 감정의 대차대조 복잡미묘 [김재동의 나무와 숲]
[OSEN=김재동 객원기자] JTBC 수목드라마 ‘사랑의 이해’(이서현·이현정 극본, 조영민 연출)는 기복이 작은 드라마다. 상황들도, 사건들도, 인물들도 전반적으로 잔잔하다. 그래서 극적이진 않지만 지극히 현실적이다.
드라마는 부제를 ‘사랑, 그 이해관계에 대하여’라 달았다. 통찰력이 느껴진다. 사랑을 이해하려면 그 이해관계에 대한 분명한 원칙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 이해관계란 것이 비단 세속적인 가치들에 대한 대차대조에 그치지 않고 서로의 감정에 대한 부기도 동반한다고 읽힌다.
여주인공 안수영(문가영 분)은 은행 창구직원, 즉 텔러다. 영어 텔러(teller)에는 현금자동지급기란 의미도 있다. 고졸로 KCU은행에 입사, 빈틈없는 일머리를 갖추었지만 직무 만족도는 바닥을 친다. 그저 스스로 오작동 없는 현금지급기가 된 기분에 휩싸여 산다. 진상고객을 상대로는 두들겨 맞는 지급기처럼 감정 배설구 역할도 감수해야 한다.
그녀는 사실 평범하고 싶었던 여고생였다. 그녀에게 평범이란 부족한 게 없다는 뜻, 두루두루 잘 산다는 의미였다. 하지만 세상을 살면서 알았다. 누군가한테 평범한 게, 누군가에겐 가랑이 찢어지도록 노력해야 되는 일이란 걸.
사고로 죽은 동생 수혁 외에 세상 누구도 그녀의 바람을 돌아보지 않았다. 허브 키우기를 좋아하고 미술에 소질 있던 소녀의 감수성은 그렇게 시나브로 말라갔다. 그저 그녀의 행복을 응원했던 죽은 동생의 바람을 이루겠다는 부채의식만이 그녀를 사회의 일원으로 지탱해주었다.
같은 은행 3년차 계장 하상수(유연석 분)는 강남 8학군-명문대 출신에 강남 거주자란 외피를 둘렀다. 하지만 내막은 빚만 남기고 세상을 뜬 남편 대신 아들 하나 번듯하게 키워내겠다는 어머니 한정임(서정연 분)의 지극정성이 둘러준 겉치레였다.
덧없이 죽어버린 아버지, 그로 인한 생활고, 그 생활고 속에서도 자신에게 바친 어머니의 희생.. 상수는 진작 삶의 무게를 알아버렸다.
어머니는 입버릇처럼 “가벼워져. 상수야, 너 행복한거지?” 묻지만 상수에게 행복은 되돌리고 싶은 순간을 만들지 않는 거였다. 그렇게 삶의 무게를 알아버린 사람은 늘 머뭇거리고 망설이게 된다. 그럼에도 상수의 선택들은 늘 행복과 어긋나왔다.
그런 상수 눈에 고졸 은행 선배 안수영이 쏙 들어왔다. “안수영이 왜 좋냐?”고 친구가 물어왔을 때 상수는 말했다. “안수영은 한 번을 싫다고 안해. 힘든 일, 까다로운 일, 자기가 하지 않아도 되는 일들을 열심히 해. 힘들수록 태연한 척 해. 그게 꼭 나 같아서 응원하고 싶게 만들어.”
상수가 용기 내어 수영에게 데이트를 신청한 날, 시재가 맞지않아 약속시간을 한 시간 넘겼다. 부리나케 뛰어갔다. 약속장소를 앞두고 건널목을 건넜을 때 밀물처럼 망설임이 상수를 덮쳤다. 선택의 순간마다 몇 번이고 상수를 머뭇거리게 했던 그 망설임이. 누군가를 좋아하는 마음에도 책임이 따른다는 명목으로.
그 시간 건널목을 뛰어오는 상수의 모습을 수영도 보았다. 초조했던 마음은 사라지고 안도감과 행복이 찾아들었다. 하지만 건널목을 건넌 상수는 발걸음을 멈추었다. 숨을 고르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영락없이 주저하는 모습이었다.
그가 데이트를 신청했을 때 애매한 관계는 싫다고 말했었다. 그 말이 그의 발길을 잡아챈 건가? 내가 고졸이라서, 텔러라서, 집안이 후져서, 본점으로 갈 사람이라 남들 구설이 무서워서인가? 냉수를 한 바가지 뒤집어 쓴 기분.
상수가 망설임을 떨치고 약속장소를 찾았을 때 수영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수영에게 불쑥불쑥 외로움이 엄습해오는 것은 새삼스런 일이 아니다. 하지만 소년같은 수줍음을 담아 속마음을 전해온 상수가 안겨준 외로움은 아팠다.
상수의 그 고백은 삭막해져 버린 수영의 가슴에 동생의 응원처럼 따뜻하고 촉촉하게 스며들었었다. 눈으론 그저 보기만 하고 귀로는 그저 듣기만 했었다. 그래서 심장근육도 제법 둔감해진줄 알았었다. 하지만 그를 만나고 사정은 달라졌다. 상수의 고백 전부터 수영은 상수의 생기있는 의욕이 좋았었다. 수줍은 어리숙함도 좋았었다. 그를 보면서 수영은 제 속에도 어떤 능동적인 감정이 실재하는 걸 깨달았었다.
하지만 하상수는 그렇게 익숙해진 삭막함을 잊게 해줘 놓고선 그 온기와 습기를 삽시간에 앗아갔다. 다시 얼마나 또 오랜 시간이 흘러야 세상과 무관해질 수 있을지..
‘사랑의 이해’는 이렇게 간발의 오차와 우연의 일치에 휘둘리는 남녀의 감정을 그려내며 사랑, 그 포근함, 혹은 사랑 그 쓸쓸함에 대하여 서술하고 있다.
손을 꼭 잡아주고 싶으면서 오히려 손을 뒤로 빼는, 그만 가달라고 말하면서 곁에 있어달라 하고픈, 사실은 내가 아픈데 그를 위로해야 하는, 그의 선의가 동정으로 읽히는, 그리고 그런 제 마음이 너무 초라하게 느껴지는 등등 오묘한 심리들의 향연, 사랑.
드라마 ‘사랑의 이해’가 잔잔한 서사 속에 그 복잡미묘한 감정의 이해관계를 제대로 그려내줄 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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