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성우 교수의 맛의 말, 말의 맛]지두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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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은 쉬이 상하니 오래 보관하기가 어렵다.
그래도 함께 밥상에 둘러앉지 못한 식구를 위한 밥은 보관했다 늦게라도 상을 차려야 한다.
물론 곶감, 엿, 강정 등 오래 보관할 수 있는 음식이어야 한다.
오래 보관할 수 있는 음식일지라도 한없이 보관할 수는 없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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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은 쉬이 상하니 오래 보관하기가 어렵다. 그래도 함께 밥상에 둘러앉지 못한 식구를 위한 밥은 보관했다 늦게라도 상을 차려야 한다. 강원 영동지역에서는 이것을 발음과 표기가 모두 어려운 ‘요ㅣ’라 한다. 아랫목의 이불 안에 밥이 놓여 있던 것을 기억하는 이들이라면 이 말이 없었더라도 그것이 무엇인지는 금세 알 수 있다. 전기밥통이나 즉석밥이 없던 시절의 가족에 대한 애틋한 마음이란 것을.
여러 날을 보관해야 하는 음식도 있다. 타지에서 살다가 명절 때에 귀성하는 자식, 먼 곳의 학교에 다니다 방학 때나 돌아오는 아이를 위해 보관해야 할 음식이다. 물론 곶감, 엿, 강정 등 오래 보관할 수 있는 음식이어야 한다. 이 지역에서는 이런 음식을 ‘지두름’이라고 한다. 지두름의 뜻을 이해하려면 ‘기다리다’의 사투리 ‘지두르다’를 알아야 한다. 지두름은 이 동사의 명사형일 테니, 이 단어는 누군가를 기다리면서 보관하는 음식이란 뜻이다.
아직은 부모님 품 안에서 살고 있는 어린아이는 벽장 속에 감추어 둔 지두름을 탐낼 법도 하다. 그때마다 부모님들은 ‘그건 형아 지두름이다’라고 말한다. 오래 보관할 수 있는 음식일지라도 한없이 보관할 수는 없는 법. 결국 그 시한까지 멀리 떠난 가족이 돌아와 함께 따뜻한 밥을 먹을 수 있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의 표시이다.
한 해가 저물어 갈 무렵이 되면 왠지 마음속이 허해지는 느낌을 받는 사람이 많다. 추운 날씨에 끼니를 챙겨 먹지 못한 탓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보다는 같은 집에서 같은 이불을 덮고 온기를 나눌 이들, 같은 밥상에 둘러앉아 밥을 같이 먹을 이들이 없기 때문일 수도 있다. 누군가 지두름을 장만해 두고 간절히 기다리고 있는 것은 아닐지 생각해 볼 일이다. 반대로 지두름을 마련해 손꼽아 기다려주기를 바라고 있는 것은 아닌지도 생각해 볼 일이다. 이 지두름은 해가 바뀌기 전에 먹어치우는 것이 좋겠다.
인하대 한국어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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