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멸의 ‘축구황제’ 펠레, 천국의 그라운드에 오르다

허종호 기자 2022. 12. 30. 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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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황제' 펠레(브라질)가 투병 끝에 82세의 나이로 별세했다.

30일 오전(한국시간) AP통신 등은 "세계 최고의 축구 선수로 이름을 날렸던 펠레가 사망했다"고 전했다.

펠레가 입원 중이던 브라질 상파울루의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병원에 따르면 펠레는 '대장암의 진행으로 인한 다발성 장기부전'으로 이날 오전 3시 27분 사망했다.

펠레는 올림픽에 한 번도 출전하지 않았지만 국제올림픽위원회(IOC)로부터 20세기 최고의 운동선수로 선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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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바이~ : 브라질의 펠레가 2012년 2월 가봉의 리브르빌에서 열린 아프리카 네이션스컵 결승전에 참석해 환하게 웃으며 손을 흔들고 있다. AP 연합뉴스
펠레는 1958 스웨덴월드컵 결승전에서 스웨덴을 상대로 2골을 터트리며 브라질의 사상 첫 우승을 이끌었다. AP 뉴시스
펠레는 1969년 8월 베네수엘라전에서 뛰어난 개인기로 골키퍼를 제치고 득점을 올렸다. AP 뉴시스
1970 멕시코월드컵에서 사상 첫 3회 우승을 달성하며 동료들의 축하를 받았다. AP 뉴시스

■ 암투병 끝 82세로 별세… 축구 역사를 쓴 그의 기록들

역대 유일한 월드컵 3회 우승

17세 239일 역대 최연소 득점

17세 244일 최연소 해트트릭

공식적인 통산 득점은 757골

1972년 첫 한국에서 친선경기

IOC ‘20세기 최고 선수’선정

‘축구황제’ 펠레(브라질)가 투병 끝에 82세의 나이로 별세했다. 축구 등 전 세계 스포츠계는 20세기 최고 영웅의 퇴장에 깊은 애도를 표했다.

30일 오전(한국시간) AP통신 등은 “세계 최고의 축구 선수로 이름을 날렸던 펠레가 사망했다”고 전했다. 펠레가 입원 중이던 브라질 상파울루의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병원에 따르면 펠레는 ‘대장암의 진행으로 인한 다발성 장기부전’으로 이날 오전 3시 27분 사망했다. 펠레의 딸 켈리 나시멘투는 SNS를 통해 “당신에게 감사드려요. 영원히 사랑합니다. 편안하게 쉬세요”라고 추모했고, 아들 에디뉴는 “신과 함께 가세요, 아버지”라고 글을 올렸다.

펠레는 92년 월드컵 역사상 유일하게 3회 우승한 ‘전설’로 통한다. 그리고 지금도 깨지지 않은 다양한 기록을 남겼다. 펠레는 브라질을 1958 스웨덴월드컵에서 사상 첫 우승, 1962 칠레월드컵에서 2연패, 1970 멕시코월드컵에서 역대 최초 3회 우승으로 이끌었다. 브라질이 영원한 우승후보가 된 건 펠레 덕분이다. 역대 최고 선수(Greatest Of All Time·GOAT)로 꼽히는 리오넬 메시(아르헨티나)와 크리스티아누 호날두(포르투갈)가 펠레 앞에서는 초라해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펠레는 올림픽에 한 번도 출전하지 않았지만 국제올림픽위원회(IOC)로부터 20세기 최고의 운동선수로 선정됐다.

특히 펠레가 처음 출전한 스웨덴월드컵에서 작성한 ‘최연소’ 기록은 64년 동안 깨지지 않고 있다. 펠레는 당시 월드컵 사상 최연소 득점(17세 239일), 최연소 해트트릭(17세 244일), 최연소 결승전 득점(17세 249일)을 작성했다. 펠레는 또 월드컵 통산 12득점과 8도움, 공격포인트 20개를 남겼다. 메시가 카타르월드컵까지 13득점과 8도움, 공격포인트 21개로 경신하기 전까지 펠레는 월드컵 최다 공격포인트 기록의 주인이었다.

펠레는 명성에 비해 유럽 무대에서 활동한 적이 없다. 레알 마드리드(스페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잉글랜드), 유벤투스(이탈리아) 등 수많은 빅클럽이 영입을 추진했으나 펠레의 소속팀 산투스(브라질)의 거부로 무산됐다. 게다가 브라질 정부는 1961년 펠레의 해외 진출을 원천 봉쇄하기 위해 ‘국보’로 지정했다. 펠레는 1975년에서야 산투스를 떠나 뉴욕 코스모스(미국)로 이적했다.

펠레는 1957년부터 1971년까지 브라질 대표팀에서 활동, 92경기에서 77득점을 올렸다. 프로 무대와 A매치를 통틀어 757골을 작성했다. 그런데 펠레가 주장하는 자신의 통산 득점은 1283골이다. 하지만 이 기록은 친선과 투어경기 득점이 혼합된 데다가 오래된 탓에 공인받지 못한다. 이 부문에서 공식 최다 기록 보유자는 819골을 넣은 호날두다. 다만 펠레는 1959년 한 해 동안 넣은 127골에 대해선 국제축구연맹(FIFA)으로부터 연간 최다 득점으로 인정받았다.

펠레는 한국과도 오랜 인연을 맺었다. 펠레는 1972년 산투스 소속으로 처음 방한, 친선경기를 치렀다. 당시 펠레는 우리나라 대표팀과 친선경기에 출전해 1득점을 작성, 산투스의 3-2 승리를 이끌었다. 그리고 1998년에 방한해 1998 프랑스월드컵에 출전하는 한국을 격려했고, 2002 한·일월드컵 조 추첨이 열린 2001년에도 한국을 찾아 “한국과 일본이 홈 관중의 응원을 등에 업고 강팀을 맞아 선전할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2003년엔 국제대회 피스컵의 고문으로 위촉, 다시 방한한 적이 있다.

허종호 기자 sportsher@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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