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팩트체크] 당대표를 여론조사로 뽑는 나라가 없다?
[이데일리 구동현 인턴 기자] 국민의힘이 내년 3월 8일 열릴 전당대회에서 차기 당대표를 ‘당원 투표 100%’ 방식으로 선출키로 확정한 것을 두고 당 내에서 갑론을박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회는 지난 19일 당대표 선출에서 당원 선거인단의 투표 결과 반영을 확대하는 내용의 당헌·당규 개정안을 만장일치로 의결했습니다. 국민의힘은 20일 상임전국위원회에 이어 23일 전국위원회를 연달아 소집해 ‘당헌 개정안 및 당대표 및 최고위원 선출 규정 개정안’을 최종 가결시켰는데요. 한나라당(국민의힘 전신) 시절인 지난 2004년 임시 전당대회 때 도입된 국민 여론조사는 18년 만에 사라지게 됐습니다.
이에 따라 국민의힘은 차기 당대표 선출부터 당원 투표 결과를 100% 반영합니다. 당대표 선출 규정 내 국민 여론조사 30% 반영 조항은 삭제됩니다.
각종 당내 경선 때 여론조사를 할 경우 다른 당 지지층을 제외하는 ‘역선택 방지 조항’도 개정됐습니다. 향후 국민의힘이 당 내에서 실시하는 여론조사는 국민의힘 지지자와 지지정당이 없는 무당층만 참여할 수 있습니다.
또, 개정 당헌에는 최다 득표자의 득표율이 50%를 넘지 않는 경우 1, 2위 득표자를 대상으로 재투표하는 ‘결선 투표제’를 도입하는 내용도 반영됐습니다.
이른바 ‘당심’을 대폭 강화하는 당헌 개정 여론에 힘이 실리자 당 일각에선 중도층 민심이 돌아서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줄곧 나왔습니다.
차기 당권주자로 꼽히는 유승민 전 국민의힘 의원은 7일 KBS ‘최경영의 최강시사’에 출연해 “전대 룰을 바꾸는 건 삼류 코미디 같은 이야기”라며 “그러면 그게 당원의힘이지, 국민의힘이라고 할 수 있겠나”라고 당 지도부를 비판했습니다.
안철수 국민의힘 의원도 13일 CBS ‘김현정의 뉴스쇼’에 나와 “국민의힘 지지층엔 당원도 있지만 비당원도 있다”며 “(여론조사) 30%는 역선택이 아니라 우리 지지층이다. 비당원 지지층을 배제한다는 건 국민의힘 지지층을 배제하겠다는 이야기”라고 말했습니다.
반면, 김종혁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은 13일 SBS '김태현의 정치쇼'에서 전당대표 룰과 관련한 질문에 "전 세계 어느 나라에도 여론조사를 해서 당대표를 뽑는 나라는 없다"고 일축했습니다.
“당대표를 여론조사로 뽑는 나라가 없다”는 김 비상대책위원의 발언을 주요 선진국 사례를 토대로 이데일리가 검증했습니다.
영국 보수당 당헌에는 당대표(Party Leader) 선거와 관련한 규정이 명시돼 있습니다. 보수당의 당대표는 당원과 스코틀랜드 당원에 의해서만 선출되며, 선거 투표 마감 직전까지 최소 3개월 동안 당원이었던 자에게 투표 자격이 주어집니다. 또한 등록 마감 때까지 후보가 한 명일 경우에 그 후보자는 자동 당선됩니다. 리시 수낙 영국 총리 겸 보수당 대표가 지난 10월 당 대표 선거에 단일 후보로 출마해 선출된 바 있습니다.
반면, 영국 노동당은 정식 당원이 아닌 이들에게도 당대표 경선 참여 자격을 주고 있습니다. 노동당은 당 대표 선거에서 투표권이 있는 자를 ‘공천 마감일 전에 18개월 이상 당원등록을 하고 선거일 전에 21일 이상 유급 당원등록을 한 당원’으로 제한하는데요.
노동당 당규에선 유권자의 범위를 보다 구체적으로 제시합니다. 당대표 및 부당대표 선출 관련 규정에서 ‘당원’(Party Member)과 ‘제휴 지지자’(Affiliated Supporters)가 유권자에 해당합니다.
여기서 제휴 지지자는 노동당 산하 가맹단체인 ‘노동조합’(Trade Unions)과 ‘사회주의협회’(Socialist Societies)의 구성원을 뜻합니다. 2022년 12월 현재 노동당에 소속된 노동조합은 철도기관차기술자협회(ASLEF), 통신노동조합(CWU) 등 11개가 있습니다. 사회주의협회에는 성소수자노동협회(LGBT+Labour), 노동변호사협회(Society of Labour Lawyers) 등 20개가 포함돼 있습니다.
규정에는 없지만 등록 지지자(Registered Supporters)도 투표할 수 있습니다. 등록 지지자는 당대표 경선 투표권을 얻기 위해 일회성 수수료를 지불하는 사람들입니다. 전국집행위원회(NEC)는 2016년 수수료를 3파운드에서 25파운드(약 4만 원)로 인상했습니다.
현재 독일에서 의회 의석이 가장 많은 곳은 기독민주연합(CDU), 다음이 독일 사회민주당(SPD)입니다. 독일 정당법 제11조는 ‘이사회(당 지도부)는 적어도 매 2년마다 선출되고, 구성원은 최소 3명 이상으로 구성돼야 한다’고 규정합니다. 이어 기민당 당규 제29조와 사민당 당규 제20조를 확인해 보니, 양 당은 전당대회에서 이사회를 선출합니다. 전당대회에서 의결권을 할당하는 의원의 구성 방식은 당마다 상이하지만, 기민당과 사민당 모두 정당 지도부 선출에서 비당원의 참여를 따로 허용하지 않고 있습니다.
미국 정당 지도부의 구성은 한국과 다른 측면이 있습니다. 연방 정부와 주 정부가 나뉘어 있는 미국의 정치 구조상 민주당과 공화당의 전국위원회 의장(National Chairperson), 상하원 원내총무가 당 지도부에 해당합니다. 미국은 중앙당이 없고 당대표도 없지만, 굳이 따지자면 당의 전반을 이끄는 전국위원회 의장이 한국의 당대표 격입니다.
현 집권여당인 민주당은 전국위원회(DNC) 의장을 민주당 전국위원회 위원들의 다수결 투표로 정합니다. 민주당 전국위원회는 각 주 위원회의 의장과 부의장 등 200여 명의 위원으로 구성됩니다. 선출된 전국위원회 의장은 전국전당대회를 주재하거나 당내 대통령 후보자 지명절차 등 여러 임무를 수행합니다. 마찬가지로, 공화당도 전국위원회(RNC) 의장을 공화당 전국위원회에서 선출합니다. 민주당과 공화당의 당 지도부 경선이 열리는 전국위원회에 비당원의 참여는 불가능합니다.
마지막으로 일본의 거대 양당은 당 지도부 선출과정에 비당원의 참여를 가능케 합니다.
먼저 자민당은 총재공선규정에 따라 당 소속 국회의원, 당원, ‘자유국민회의와 국민정치협회 회원’(이하 당우)에게 투표권을 줍니다. 자유국민회의와 국민정치협회의 회원은 회비를 납부할 경우 선거에 참여할 수 있는데요. 국회입법조사처가 2021년 10월 발행한 '일본 기시다 총리 선출과 향후 정치 전망' 보고서는 ‘자민당의 일반 당원이 되거나 자유국민회의, 국민정치협회의 개인회원이 돼야 투표할 수 있다’면서 ‘당원’과 ‘당우’를 구분해 설명합니다. 총재공선은 당원과 당우의 투표를 합산하는 방식으로 진행되기 때문에, 비당원도 총재 경선에 참여할 수 있는 셈입니다.
민주당도 비슷합니다. 민주당은 구성원을 당원과 협동조합당원(지지자)로 구분합니다. 협동조합당원은 18세 이상의 일본 국적을 가진 사람으로 제한되고 자격 유지를 위한 연 회비는 2,000엔(약 1만 9,000원)입니다. 협동조합당원은 당원이 아니지만 당대표 등을 결정할 수 있는 대의원 선거에서 투표권을 가지게 됩니다.
[검증 결과]
영국, 미국, 독일, 일본 등 정치 체제를 대표하는 주요 선진국의 정당들은 당 지도부를 선출할 때 대체로 당원들에게만 투표권을 주고 있습니다. 영국과 일본의 사례처럼 당원이 아닌 이들이 지도부 경선에 참여하는 경우도 있지만, 주요 선진국 중 우리나라처럼 당대표 경선에서 여론조사를 일부 반영한 사례는 찾기 힘듭니다.
따라서 “당대표를 여론조사로 뽑는 나라가 없다”는 김종혁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의 발언을 ‘대체로 사실’로 판정합니다.
구동현 (koo97@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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