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속 뇌과학] 운동이 어떻게 뇌기능을 좋게 할까
내 연구실에서는 학위 연구를 수행하고 있는 학생들 여럿이 있는데 그들 중 두 여학생이 운동에 의한 인지기능 향상을 조절하는 원인 분자를 탐색하는 연구를 진행 중이다. 이들은 생쥐 여러 마리를 4주 동안 쳇바퀴를 달리게 한 후에 운동한 생쥐들의 여러 장기 조직과 혈액을 얻어낸다. 장기 조직은 잘게 갈고 혈액에서는 혈장을 얻어낸 뒤 운동하지 않은 마우스들과 비교했을 때 농도가 유의미하게 달라진 단백질들이 무엇이 있는가를 분석하는 것이 그들의 일차적인 연구 목표이다. 그 후에는 운동에 의해 장기 조직에서 발현이 변한 단백질 중 학습과 기억 능력 향상에 중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 생각되는 후보들을 선별하여 운동을 하지 않은 생쥐에 투여하면 과연 기억력이 증가하는지 확인하고 싶어 한다.
이 연구는 시작부터 큰 어려움에 봉착했다. 생쥐가 야행성 동물이기 때문에 밤에 깨어 있고 낮에는 잠들어 있는 사람과 정반대의 일주기를 갖기 때문에 생겨난 것이었다. 연구 시설에서는 낮밤을 바꿔서 운영할 수 있는 생쥐 사육 시설이 없었기 때문에 생쥐를 단순히 ‘운동’시키기 위해서는 실험자인 ‘사람’이 4주 동안 낮밤이 바뀐 생활을 해야 했다. 이 두 학생은 가뜩이나 거리가 먼 대학에 소속되어 있는 대학원생이어서 수업과 실험을 병행하려면 정신없는 시간들을 보낼 수 밖에 없었다. 당연히 연구 활동도 효율이 떨어질 수 밖에 없었다.
연구 초기 시절 이 중 한 학생이 가끔 한숨을 쉬며 다음과 같이 하소연 하곤 했다. “왜 이렇게 머리가 안 돌아갈까요? 너무 당연한 것인데 놓치는 것이 많은 것 같아요.” 안타까운 마음과 위로를 표현하는 것과 애꿎은 시설과 환경 탓 말고는 할 수 없지 않나 싶었다. 어느 날 우리가 비슷한 대화를 하고 있던 와중 번뜩 떠오른 생각이 있었다. 운동에 의한 뇌기능 증진 연구를 하는 연구자가 이렇게 쉬운 방법을 모르다니! “그럼 너도 꾸준히 운동을 하면 되겠네?”
허탈한 웃음을 짓던 그 학생과 다른 학생은 가뜩이나 바쁘고 힘든 일정을 더 쪼개어 필라테스, 요가, 피트니스 등 다양한 운동을 2-3일마다 꾸준히 하게 되었다.
몇 년 동안 지속적으로 하고 있는 그들의 운동 노력이 기억력을 유지하고 원활한 연구진행에 도움이 되고 있는지 당장 알 수는 없기는 하다. 하지만 운동의 효과를 체감하는 순간은 언젠가 올 것이라 강하게 믿는다.
운동이 정상인의 뇌기능을 좋게 해준다는 사실은 이미 여러 연구결과로 입증된 바가 있고, 대중적으로도 많이 알려졌다. 운동에 의한 뇌기능 증진 효과는 인지기능이 빠르게 감퇴하는 중년 및 노년 실험 대상자에게 가장 큰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어린이와 청년들에게서도 꾸준한 운동은 학습 효과와 학업 성취도를 높인다고 한다. 또한 운동은 우울증 등 정서질환을 극복하는 데 효과도 있으며 치매 등 퇴행성 뇌질환에 따른 인지기능 저하를 막아주는 효과도 입증된 바 있다.
2017년 미국 신경학회(American Academy of Neurology) 학술지 신경학(Neurology) 저널에 메이요 클리닉 소속 로널드 피터슨 박사 등에 의해 발표된 바에 따르면, 치매의 전 단계라 불리는 경도(輕度) 인지 장애 (mild cognitive impairment)의 치료 처방 중 하나로 주 2회 이상 운동이 포함되기까지 했다.
과학자들은 이처럼 운동과 같은 신체활동이 뇌기능 향상에 도움이 되는가를 확인하는 것 뿐만 아니라 몸에서 어떠한 변화가 일어나길래 신체활동이 뇌활동과 연결되는지 관심을 갖고 있다. 운동에 의한 뇌기능 변화는 요즘 많은 관심을 얻고 있는 장-뇌축(gut-brain axis)처럼 신체-뇌 상호작용의 일종이다. 장내 미생물이 분비하는 여러 물질들에 의해 뇌 속 신경전달물질 및 신경회로망에 변화가 유도되는 것처럼, 활발한 신체활동에 의해 활성이 증가한 근육, 뼈, 지방, 심장, 간 등의 말초 장기의 변화가 잘 알려지지 않은 방식으로 뇌로 전달된다.
뇌는 말초 장기에서 유래한 신호들을 인식하고 이에 반응하여 다양한 변화, 예를 들어 신경세포의 생성 증가, 신경영양인자 발현 증가, 신경세포간 연결망인 신경 다발 증가 등을 보인다. 이러한 뇌속의 변화는 운동 중이나 이후에 발생한 어떠한 ‘변화’가 뇌로 직간접적으로 전달되기 때문 아닐까. 그렇다면 그러한 ‘변화’의 분자적 정체는 무엇일까.
운동과 같은 격렬한 신체활동은 여러 장기에서 다양한 신진대사 활동들을 증가시킨다. 이는 운동과 같은 신체의 물리적 변화에 직접 참여하는 장기들인 근육, 뼈, 심장 등에서 에너지 생성 및 세포와 조직의 생성, 복구와 관련된 생체 활동을 증진시킬 뿐만 아니라 간접적으로 관여하는 여러 장기에서도 활성을 증가시키게 된다.
조깅을 하면 하체 뿐만 아니라 다리 근육과 뼈, 지방 세포 등에서 분비된 물질들이 혈액을 타고 신체 전체에 영향을 줄 수 있는 것이다. 이처럼 운동에 의해 각 조직에서 발현이 증가한 물질들은 주로 혈액을 통해 몸 전체로 퍼져나갈 수 있는데, 과학자들은 그 중 운동에 의해 뇌 속 다양한 변화를 유도할 수 있는 분자들의 정체에 대해 궁금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운동에 의해 말초 장기에서 분비되어 뇌기능 향상에 관련되어 있을 것이라 여겨지는 혈액 내 호르몬 단백질들은 'cathepsin B', 'Irisin'처럼 뇌 속으로 직접 전달되는 것들도 있고 'selenoprotein P(SEPP)'처럼 항산화 작용이 있는 셀레늄을 뇌 속 농도를 높이는 것들도 있다. 젖산(lactate)이나 'β-hydroxybutyrate'와 같은 케톤체 등 근육이나 간 등의 신체 장기에서 에너지 생성에 관련된 대사체들도 혈액을 통해 뇌로 전달되어 신경전달이나 유전자 발현 등을 조절하기도 한다.
그 중 최근에 발표된 흥미로운 분자는 ‘클러스터린(clusterin)’이라 불리는 항염증 기능이 있는 단백질이다. 2021년 토니 와이스 코리(Tony Wyss-Coray) 미국 스탠퍼드대 박사 연구진이 생쥐를 대상으로 수행한 연구 결과를 네이처에 발표(https://doi.org/10.1038/s41586-021-04183-x)한 바에 따르면 자발적으로 쳇바퀴를 뛰어 운동을 한 쥐의 혈액에서 얻어낸 혈장을 운동을 하지 않은 일반 쥐에 며칠 간 나누어 주입을 하면, 혈장을 주입 받은 쥐는 운동을 한 쥐와 같이 뇌세포 생성이 증가하고 인지기능도 향상되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운동을 한 쥐의 혈장 내 단백체에 그 비밀이 숨어있을 것이라 여긴 연구진은 각 쥐의 혈장 단백체를 분석했는데 운동을 한 쥐와 동일시간 동안 집에 머무른 쥐의 혈장 단백질 조성이 유의미한 차이를 보이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신체활동이 저조한 사람들일수록 복강 지방량이 증가할 확률이 높으며 이는 염증 관련 신호체계를 과도하게 활성화시킬 수 있다. 그래서 일부 연구결과에 따르면 신체활동량이 적은 사람들이 제2형 당뇨병, 심혈관계 질환, 대장암과 유방암, 우울증, 치매 등에 걸릴 위험성이 증가하는 이유가 만성염증반응에 유래한 악영향이라 생각하고 있다.
따라서 반대로 생각해보면 운동을 꾸준하게 수행하면 염증반응을 낮추게 되고 그 결과 뇌기능이 반대로 좋아질 것이라 추측할 수 있다. 와이스 코리 박사 연구진은 이에 착안해 쳇바퀴를 꾸준히 돌았던 생쥐의 혈장 단백질 중 염증 및 면역 기능과 관련된 단백질들에 집중했다. 그 중 기존에 이미 치매와 심장병 발병과 연관이 있다고 보고된 바 있는 클러스터린은 사실 죽은 세포 잔해나 찌꺼기 단백질들을 제거할 수 있는 기능을 가진 항염증 단백질이며 면역기능 중 하나인 보체(complement)의 작용을 제어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운동을 하지 않은 생쥐의 혈액에 합성 클러스터린 단백질을 주입하면 뇌혈관장벽을 통해 뇌 속으로 직접 전달될 뿐만 아니라 염증 관련 유전자 발현을 낮출 수 있었다.
항염증 단백질인 클러스터린이 인간에게도 같은 효과를 보일 수 있을까. 연구진은 경도인지 장애를 겪고 있는 퇴역 군인 환자들의 유산소 운동 전과 6개월 후에 혈액을 채취하여 염증관련 단백질의 농도를 분석했다. 생쥐를 대상으로 한 연구와 같이 클러스터린과 같은 항염증 단백질은 증가하지만 염증 반응과 관련된 단백질들은 오히려 감소한 것을 알 수 있었다. 아직 클러스터린이 직접적으로 인간의 뇌 속 염증 관련 기전을 저하시킬 수 있는지 인체에서 확인된 바는 없으므로 후속 연구 결과를 기대하면 좋을 듯하다.
클러스터린 발견과 관련된 연구를 통해 생각해볼 수 있는 것은, 운동에 의한 뇌기능 향상은 신체와 뇌의 직접적인 상호작용의 산물이라기보다는 항염증과 같은 신체 전체적인 변화가 운동에 의해 발생되고, 뇌는 혜택을 받는 장기 중 하나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염증 및 면역 관련 신호체계와 관련 분자들은 그 숫자도 많고 매우 복잡하게 얽혀 있으나, 운동에 의해 변화하는 항염증의 정확한 분자 기전은 알려진 바가 전혀 없으므로, 운동에 의한 면역 기능 변화가 각 신체 장기에 같은 영향을 미치는지 아니면 다른 효과를 유발하는지에 대해서는 아직 예측하기가 힘들다.
따라서 운동이 신체에 미치는 긍정적인 효과를 정확하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결국 운동 효과의 분자적 정체를 파악하는 것 이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다. 미국 국립보건원(NIH)은 'MoTrPAC(Molecular Transducers of Physical Activity Consortium)'이라는 프로그램을 2015년부터 시작하였는데, 이 프로그램은 미국 내 여러 연구기관들의 협력연구체계를 통해 운동에 의해 발생하는 신체 변화의 ‘분자 지도’를 만들겠다는 야심찬 목표(https://motrpac.org)를 갖고 있다.
다양한 오믹스 기술들을 종합하여 운동에 의해 변화한 동물 및 인간 샘플 내 분자 변화를 추적하고 그 결과를 일반 대중에 지속적으로 공개해 오고 있다 (https://motrpac-data.org). 한국에서도 이정도 야심찬 스케일까지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뇌기능 향상에 초점을 맞춘 운동 관련된 분자들의 종합적 이해를 공동협력연구를 통해 추구할 수 있으면 좋겠다.
※필자소개
박형주. 한국뇌연구원 신경혈관단위체 연구그룹에서 근무 중이며 대구경북과학기술원(DGIST) 뇌인지과학전공 겸임교수다. 현재 생쥐 모델을 활용해 학습과 기억을 조절하는 세포간 상호작용의 분자 기전을 연구하고 있으며, 뇌 속 기억 형성 및 변화에 대한 흥미로운 연구결과를 일반인들에게 소개하는 저술 작업도 같이하고 있다.
[박형주 한국뇌연구원 한국뇌연구원 신경혈관단위체 연구그룹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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