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한류]① “성과급 주고 탕비실 만드니 애사심 쑥”… 인니에 한국 DNA 심는 우리금융
우리카드, 해외자본 엄격한 OJK 맞춤 공략해 3개월 만에 인수 승인
인니 내 한국 위상 달라져… 현지 금융사와 경쟁
금융사들이 해외 시장 공략에 공을 들이고 있다. 한정된 금융자원을 두고 군웅할거(群雄割據) 형국인 국내 금융시장에서는 지속가능한 성장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판단에서다. 그동안 국내 금융사는 세계 무대에서 디지털 경쟁력으로 승부수를 띄우는 한편, 신흥국 시장에는 금융 노하우를 전달해왔다.
그러다가 코로나19 이후 글로벌 금융시장은 경쟁 내용과 구도가 바뀌었다. 과거와 같은 영업 방식만으로는 경쟁력을 유지하기 어려워졌다. 달라진 글로벌 금융시장에서 국내 금융사들은 어떻게 변화하고 있을까. 조선비즈는 인도네시아, 캄보디아, 베트남 등 세계 무대에서 국내 금융산업의 활약상을 짚어보고, 새로운 먹거리를 찾아보고자 한다. [편집자주]
2021년 7월. 아침 뉴스를 보던 황규순 우리소다라은행 법인장은 눈을 의심했다. 미국과 베트남에서 근무하면서 글로벌그룹장까지 거치며 나름 해외통이라 자부했던 그도 이런 일은 처음이었다. 당시 인도네시아에서는 코로나19로 인해 하루에 2000명이 넘는 사망자가 발생했다. 세계 최대 피해 규모였다.
“이게 과연 가능한 숫자인가.” “이러다 은행이 망하는 것 아닌가.” 취임 한 달을 갓 넘긴 황 법인장의 손이 덜덜 떨렸다. 코로나19로 인해 사망한 고객이 급증하자, 대출금을 받지 못하는 경우도 덩달아 급속도로 증가했다. 황 법인장은 이때를 가장 어려웠던 순간으로 꼽는다.
우리소다라은행은 2013년 옛 우리은행 인도네시아법인과 현지 은행인 소다라 은행이 합병해 만들어졌다. 합병 이후 은행은 빠르게 성장했다. 올해 6월 말 기준 우리소다라은행의 총자산은 약 33억달러(약 4조2000억원)로 합병 전보다 3배가량 증가했고, 인도네시아 전역에 158개의 네트워크(지점 29개·출장소 129개)를 보유하고 있다.
우리은행과 합병해 현재는 우리소다라은행이 됐지만, 본래 소다라은행은 공무원을 대상으로 한 연금대출(KUPEN)과 직장인 신용대출(KUPEG)을 주로 해주는 곳이었다. 합병된 현재도 우리소다라은행 매출 구조의 절반 정도는 연금대출과 신용대출이 담당한다.
코로나19로 나라가 쑥대밭이 되자, 연금 대출을 중단하자는 목소리가 은행 내부에서 나왔다. 대출을 할수록 연체가 늘어나니 나온 말이었다. 그러나 황 법인장은 연금 사업을 포기한다는 건 사실상 영업을 놓자는 것이기에 역발상으로 오히려 더 늘리자고 주장했다.
그는 “5개월 동안 158곳 지점과 출장소를 다 돌며 현장의 목소리를 들었다”라며 “하루에 차만 8시간 타는 건 기본이었는데, 가서 같이 밥 먹고 건의사항 해결해주다 보니 현지 직원들도 의지를 가지고 일을 하기 시작했다”고 회상했다.
황 법인장은 소통을 늘리는 동시에 인도네시아에 특화된 한국식 기업문화를 적용했다. 일단 인도네시아만의 독특한 급여 체계를 손질했다. 그는 “한국과 달리 인도네시아는 지역에 따라 급여가 다르다”라며 “똑같이 공부해서 은행에 들어왔어도 시골 출신이라는 이유로 일부 직원은 돈을 적게 받았다”라고 전했다.
이런 상황에서는 직원들에게 동기 부여를 이끌어내기 어려웠다. 황 법인장은 매달 실적을 올리는 직원에게 전례 없던 포상금을 지급하고, 우수지점장을 뽑아 영업본부장에 임명했다. 보상을 주고 권한과 책임을 주니, 자연스레 남들보다 열심히 하려는 직원들이 생겼다.
황 법인장의 주 소통창구는 서류가 아닌 인도네시아 1위 모바일 메신저 왓츠앱(WhatsApp)이다. 각 점포장은 왓츠앱을 통해 그에게 직접 애로사항이나 개선해야 할 부분부터 개선된 실적 등 영업 현황까지 보고한다. 업무사항 외에도 생일 축하 메시지나, 기념일 덕담을 주고받기도 한다. 이러한 노력에 힘입어 우리소다라은행은 천정부지로 치솟던 부실률을 사실상 0%로 줄였다.
우리소다라은행의 목표는 이미 성과를 내고 있는 연금 대출 시장 비중을 늘리는 동시에 모바일뱅킹 등 디지털에 집중해 고객 수를 늘리는 것이다.
황 법인장은 “현재 주력 사업이 연금 대출이다 보니 나이가 많은 고객이 많지만, 디지털화를 통해 젊은 층을 공략하면 고객층이 확장될 것”이라며 “인도네시아도 우리나라처럼 4~5개의 대형 현지 은행이 시장을 꽉 잡고 있는데, 우리소다라은행이 지금처럼 열심히 해 10위 안에 들면 이들과 경쟁할 수 있으리라 본다”고 말했다.
통상 해외에 진출한 금융사들은 현지에 이미 있는 한국계 기업과 교민을 주 고객으로 삼는다. 그러나 우리소다라은행의 기업금융부문에서 현지 기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약 55%로, 절반이 넘는다. 전체 직원은 1500명으로, 모두 현지 직원이다.
우리소다라은행의 인도네시아 내 자산순위는 27위다. 과거 우리은행 인도네시아법인(71위), 소다라은행(63위)보다 높은 성적을 기록했다. 이에 올해 6월엔 현지 경제지인 인베스터가 뽑은 우수 은행에, 8월엔 금융전문지 인포뱅크의 은행평가에서 27년 연속 최우수 은행에 선정되기도 했다.
끼끼 안그레니(Kiki Anggraeni) 우리소다라은행 상품 기획·개발 팀장은 “한국과 인도네시아 간 상품 판매 방식 등에 차이가 있지만 오히려 이로 인해 우리소다라만의 특성 있는 상품을 내놓을 수 있다”며 “올해 8월엔 영업점 네트워크를 활용해 증권계좌를 소개하는 방식의 비즈니스를 실시했는데, 인도네시아 최초로 은행과 증권사가 협업한 사례”라고 말했다.
은행과 더불어 카드 부문도 성과를 내고 있다. 우리카드의 두 번째 해외법인 우리파이낸스 인도네시아는 인도네시아 금융당국(OJK)으로부터 한국계 금융사 중 최단기간 인수 승인을 받아냈다.
우리카드는 2019년 비타비야 프로스페린도 파이낸스(PT Batavia Prosperindo Finance Tbk) 인수 작업에 착수했다. 1994년 설립된 바타비야 프로스페린도 파이낸스는 인도네시아 전역에 72개의 영업망을 가진 중고차 할부금융과 중장비 리스사업을 운영하는 할부금융사다.
우리카드 역시 우리은행과 마찬가지로 코로나19라는 벽에 부딪혔다. 인수 작업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이었다. 그러나 우리카드는 이때를 기회로 삼았다. 코로나19 위기가 지나가면 해외 자본에 대한 OJK의 규제가 더 강화될 것으로 보고, 승인 작업을 미뤄선 안 된다고 판단했다. 김정기 우리카드 사장의 주도 하에 연내 승인을 목표로 2022년 초부터 인수 작업을 재추진했다.
인도네시아 현지에서는 서혁진 우리파이낸스 인도네시아 법인장이 팀을 이끌었다. 그는 인수 작업이 시작된 직후인 2월 초 인도네시아로 입국했다. 과거 2013년 우리카드가 우리은행으로 분사할 당시 금융당국으로부터 인가를 받아냈던 경험이 힘이 됐다. 결국 우리카드는 올해 3월 바타비야 프로스페린도 파이낸스 주요 주주들과 주식매매계약을 체결하고 3개월 만에 OJK로부터 인수 승인을 받아 9월 출범했다.
OJK 승인은 해외 투자자들 사이에서 까다롭기로 유명하다. OJK는 단기 투자자금의 유입을 막기 위해 해외 투자자의 자금 출처와 투자 계획 등을 철저히 파악한다.
서 법인장은 “한국에서 아무리 큰 기업이라고 해도 인도네시아에선 통하지 않는다”라며 “인수 승인 키맨들이 누구인지 파악 후 다양한 경로로 접촉해 우리카드 경영진의 인도네시아 진출 의지를 전달하려 노력했다”고 말했다.
인수 작업이 끝나고서 현지 직원들로부터 가장 큰 호응을 얻은 것은 한국식 사무실 인테리어다. 단순히 한국의 일반적인 회사 모습으로 꾸민 것이 아니라, 인도네시아 사람들의 생활 습관 등에 맞춰 리모델링을 진행했다.
일례로 우리에게 친숙한 탕비실은 인도네시아 직원들에게는 혁신으로 다가왔다. 이들은 비싼 물가와 교통체증으로 주로 도시락을 싸 오는데, 일반적인 인도네시아 회사에는 별도 공간이 없어 밥 먹을 곳이 마땅치 않았기 때문이다.
우리금융의 목표는 현지 금융사들과 경쟁할 수 있는 규모로 성장하는 것이다. 일례로 우리소다라은행은 현지 전자지갑 충전서비스 1, 2위 업체인 고페이(Go-Pay·고젝)와 오보(OVO·그랩) 애플리케이션(앱)과 손잡고 은행 계좌를 통한 페이머니 충전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또 인도네시아 인터넷 쇼핑몰 2위 업체인 쇼피(Shopee)와 제휴해 쇼피머니 충전 서비스도 시작했다. 현지 최대 편의점 업체 인도마렛(Indomaret)과도 연계해 출금 서비스도 제공한다.
우리파이낸스는 자동차 금융을 노린다. 서 법인장은 “코로나 직전까지만 해도 길거리엔 온통 일본 자동차뿐이었는데 최근엔 현대차가 늘어나는 등 인도네시아 내 한국 위상이 달라지고 있음을 체감한다”라며 “인수 후 향상된 자금 조달 능력을 바탕으로 중고차 할부금융뿐만 아니라 사업 포트폴리오를 다변화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빈센티우스 이반 쓰티아디(Vincentius Ivan Setiady) 우리소다라은행 디지털 뱅킹 팀장은 “한류 영향으로 젊은 세대 사이에 한국 기업인 우리금융의 이미지가 제고되고 있다”면서 “현지 친밀도를 높이기 위해 비대면 홍보 채널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고, 내년 1월 중에 리뉴얼된 모바일 뱅킹 플랫폼을 공개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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