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작·스타·창작 약진…4000억원 뮤지컬 시장, 2023년은?

2022. 12. 30. 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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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계 첫 4000억원 돌파
전체 공연 티켓 판매액의 76% 
대작ㆍ스타 ㆍ창작 뮤지컬 약진
2023, 청신호와 적신호의 공존
뮤지컬 ‘웃는 남자’ [이모셔널시어터, EMK뮤지컬컴퍼니 제공]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4년 만에 뮤지컬로 복귀한 박효신의 ‘웃는 남자’, 뮤지컬계 슈퍼스타 김준수의 ‘데스노트’, ‘엘리자벳’,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 홍광호의 ‘지킬 앤 하이드’, ‘데스노트’…. 강력한 티켓 파워의 배우들이 쉴 틈 없이 무대에 오른 올 한 해 뮤지컬 시장은 역대 최고 매출을 기록했다. 코로나19가 당도하며 침체됐던 시장은 빠르게 회복했고, 그간 잠들었던 창작과 관람 욕구가 완전히 폭발했다.

30일 공연예술통합전산망(KOPIS)에 따르면 올 한 해 공연 티켓 판매액은 5452억 원(12월 28일 기준)으로, 이 중 뮤지컬 티켓 판매액은 약 4155억 원에 달했다. 전체 판매액의 76.2%에 해당하는 수치다. 국내 뮤지컬 시장 매출이 4000억 원을 넘은 건 올해가 처음이다.

코로나19가 당도한 지난 2020년 이후 공연계는 힘든 시기를 보냈다. 감염병의 확산 추이에 따라 공연장은 셧다운을 반복했고, 방역 기준에 맞춰 좌석간 띄어앉기로 운영됐다. 공연계에선 “공연을 하면 할수록 손해”라는 토로가 나올 만큼 암흑기를 보냈으나, 올 한 해의 반등은 드라마틱했다. 팬데믹 기간이었던 지난 2020년 뮤지컬 시장은 1435억 원으로 최저점을 기록했고, 2021년엔 2343억 원으로 반등했다. 전문가들은 “뮤지컬 시장의 4000억원 돌파는 기념비적인 일”이라고 입을 모은다.

원종원 순천향대 교수는 “올 한 해 뮤지컬 시장 매출은 브이(V)자 반등을 보였다”며 “엔데믹과 함께 문화산업이 활성화되고 있지만, 공연만큼 극적으로 매출이 오르는 장르는 흔치 않다”고 말했다. 지혜원 경희대학교 경영대학원 문화예술경영학과 교수는 “코로나19 이후 문화소비가 증가 추세를 보였고, 이 안에서도 특정 장르에 대한 선호가 분명하게 드러났다”며 “뮤지컬은 타 장르와 달리 회복 탄력성이 굉장히 높고 대중의 반응이 빨리 일어나는 대중적 장르라는 점이 올 한 해 매출 증가를 통해 확인됐다”고 말했다.

뮤지컬 ‘아이다’ [신시컴퍼니 제공]

■ 대작 스테디셀러·스타 배우·창작 뮤지컬 약진

올 한 해 뮤지컬 시장의 역대 최고 티켓 판매액 기록은 하루 아침에 일어난 ‘기적’이 아니다. 2001년 당도해 한국 뮤지컬의 산업화를 이끈 ‘오페라의 유령’ 이후 20여년간 시기마다 극적 성장의 계기가 마련됐다.

원종원 교수는 “뮤지컬 시장은 경제 위기와 코로나19 팬데믹 등 몇 번의 예측할 수 없던 시기를 제외하면 꾸준한 성장을 이어왔다”며 “4000억원 시장 돌파는 뮤지컬이 잠재적 성장 가능성이 높은 문화산업 장르라를 것을 보여준 것으로, 느닷없는 성과가 아니라 지속적 성장의 결과다”라고 설명했다.

뮤지컬 시장의 확장을 이끈 것은 소위 ‘스테디셀러’로 불리는 대작 뮤지컬들이 ‘스타 배우’들과 함께 몰려왔기 때문이다. ‘지킬 앤 하이드’, ‘데스노트’, ‘킹키부츠’, ‘아이다’, ‘마틸다’,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 등의 해외 라이선스 작품, ‘웃는남자’, ‘엘리자벳’, ‘마타하리’, ‘서편제’, 영웅‘ 등의 창작 뮤지컬이 골고루 사랑받았다. 팬데믹 동안 자주 만날 수 없었던 내한공연도 봇물을 이뤘다. ‘라이온 킹’, ‘블루맨그룹’, ‘태양의 서커스-뉴 알레그리아’, ‘푸에르자 부르타’ 등의 해외 대작들이 줄줄이 관객과 만났다.

올해 뮤지컬 시장에서 나타난 중요한 특징 중 하나는 창작뮤지컬이 대폭 늘었다는 점이다. 올해로 세 번째 시즌을 맞은 EMK뮤지컬컴퍼니의 ‘웃는 남자’를 필두로 ‘엘리자벳’, ‘마타하리’, ‘서편제’ 등의 작품이 시장 회복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대극장 뿐만 아니라, ‘프리다’, ‘쇼맨_어느 독재자의 네 번째 대역배우’, ‘렛미플라이’ 등 중소극장 창작뮤지컬도 약진했다. 흥미로운 현상은 EMK(프리다), 쇼노트(더 테일 에이프릴 풀스)등 대극장 위주의 작품을 선보인 대형 뮤지컬 제작사들이 중소형 창작 뮤지컬에 손대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원종원 교수는 “그간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위축됐던 제작사들이 창작 공연을 올리기 보다는 안전하고 보수적인 선택을 많이 해왔다면, 올해엔 거리두기 제한이 없어지며 지금까지 억제된 새로운 작품에 대한 열정과 욕구가 봇물 터지듯 밀려나오며 시장의 건전성이 만들어졌다”고 말했다.

'마타하리' 옥주현 [EMK뮤지컬컴퍼니 제공]

■ 청신호와 적신호의 공존…지속 성장 위해선?

이제 뮤지컬 업계는 재정비와 도약을 동시에 준비해야 할 때가 됐다. 유례없는 성장을 기록했으나, 다가올 새해 전망엔 청신호와 적신호가 공존한다. 올해 최고 판매액을 기록한 데에는 여러 요인이 작용하기 때문이다. 코로나19로 억눌렸던 문화 소비 욕구가 뮤지컬로 집중됐고, 대극장 뮤지컬들이 대거 막을 올리며 관객들을 극장으로 끌어들였다. 뿐만 아니라 최고 18만원까지 VIP석 가격이 치솟은 티켓 인상도 판매액 증가에 영향을 미쳤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견해다.

지혜원 교수는 “4000억원대 시장을 유지에는 대극장 뮤지컬의 지속성이 큰 영향을 미친다”며 “2000년, 2010년, 2020년 등 10년 주기로 매출이 커진 것은 새로운 극장이 생긴 이후 대형 작품이 증가해 매출 확대로 이어졌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다가올 2023년의 전망이 좋지 않은 것은 해마다 두 편씩 대형 뮤지컬을 올렸던 예술의전당이 “오페라극장은 향후 대관 대신 오페라, 발레 작품에 집중하겠다”고 선언했기 때문이다. 현재 예술의전당에서 예정된 뮤지컬은 내년 초 개막 예정인 ‘베토벤’ 뿐이다. 한 대형 뮤지컬 제작사 관계자는 “예술의전당 대관을 하지 못한다면, 회당 2000여명의 관객을 확보할 수 있는 극장이 줄어드는 만큼 시장 전체에 미치는 영향도 적진 않다”며 “뿐만 아니라 제작사 간의 대관 경쟁이 심해지고 흥행이 보장되지 않은 창작뮤지컬은 경쟁에서 밀리는 상황도 초래할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뮤지컬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 [쇼노트 제공]

적신호만 있는 것은 아니다. 한국 뮤지컬 시장은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지금의 성과를 이뤘다. 원종원 교수는 “뮤지컬 시장은 장기적 안목에서 정부의 유인책이나 별다른 진작이 없었음에도 시장의 외형을 불려왔다”며 “수익 창출을 위한 육성책을 마련한다면 지속적 성장의 계기가 될 것”이라고 봤다.

다만 업계 안팎의 노력이 필요하다. 다양한 고민을 통해 양질의 콘텐츠를 생산하고, 적절한 시장 유인책으로 성장을 도모해야 한다.

지혜원 교수는 “시장이 커지면 다양성을 확보해야 하는데 한국 뮤지컬 시장은 스타 배우나 스테디셀러 작품 등의 브랜드가 굉장히 중요하게 작용하는 독특한 시장이다”라며 “새로운 작품이나 배우 브랜드에 대한 수용이 보수적인 만큼 업계의 지속가능성을 위해 관객의 편중도를 고민하며 내실을 다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티켓 가격’도 해결해야 할 과제다. 한국 뮤지컬 시장은 소위 N차 관람 문화가 정착, ‘회전문 관객’이 이끌고 있는 만큼 한없이 치솟는 티켓 가격은 진입장벽을 높이는 걸림돌이 된다.

원종원 교수는 “티켓 가격의 상승은 우리나라 경제 구조에서 본다면 뮤지컬을 대중 산업 장르가 아닌 편협한 소비의 장르, 애호가의 장르로 국한하게 될 우려가 있다”며 “인건비와 경제적 상황 등 티켓 가격이 오를 수 밖에 없는 요인을 파악해 제작사, 기획사에 세제 혜택을 주는 진작책을 내놓아 티켓 가격을 조정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제작방식부터 비용까지 판이하게 다른 대극장과 중소극장 뮤지컬이 뒤섞인 시장 상황에 맞는 세심한 정부 지원과 업계 내부의 가이드라인을 만드는 일도 중요하다. 코로나19 이후 꾸준히 논란이 되고 있는 공연 취소 환불 규정, 올 한해 뮤지컬 계의 가장 큰 이슈였던 이른바 ‘옥장판 사건’으로 야기된 캐스팅부터 갑질 논란 등 불필요한 시비를 막기 위해서도 가이드라인의 필요성이 제기된다.

지혜원 교수는 “4000억원 시장 진입을 계기로 우리 뮤지컬 시장에 맞는 체계를 세우고 시장을 진단해야 한다”고 강조하며 “더불어 세심하고 정교한 정책으로 대극장과 중소극장 뮤지컬을 분류해 각각의 시장에 맞는 관객 개발과 확장 전략을 세워야 한다”고 조언했다.

sh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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